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 - 계절마다 피는 평범한 꽃들로 엮어낸 찬란한 인간의 역사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4
캐시어 바디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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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에 대해 정말 몰랐다


만만치 않은 책이다. 꽃과 인문학을 배울 수 있는 진한 향을 머금은 책이다.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라는 제목은 좀 조악하고 재미없다. 아무래도 내 직업이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눈을 가리려고 해도 원제가 눈을 찌른다. Blooming Flowers:  A Seasonal History of Plants and People 이 얼마나 낭만스러운가. 만개하는 꽃: 사계절에 피는 식물과 사람 이야기. 


캐시어 바디는 영문학자답게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책을 하나의 문집처럼 집필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편으로 나누어 태초이래 인류가 얼마나 집요하게 꽃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투영해 왔는지 고증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한 중심에 꽃으로 군중을 사로잡는데 거의 모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바디의 해박한 영문학, 미술학, 사회학적 관점을 빌려 내가 이 꽃들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그녀와 함께 꽃밭을 걷는 호사스러움을 만끽하게 도운 책이다. 



역사 책은 아니다


앞서 밝힌 데로 나는 우리말 번역 제목에 불만을 토했다.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는 역사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먼저 문학 안에서 다루어진 꽃 이야기가 만발하며, 특히, 영국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로렌스의 문장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월든을 쓴 데이비드 소로의 삶과 그가 숲에서 인간다움을 찾는 과정도 빈번히 소개하고 있다. 곳곳에 등장하는 정물화 속 꽃은 가장 좋은 소재이며, 각 꽃이 상징하는 바를 세계인의 관점에서 가능한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는 데 책을 읽을 때마다 강렬한 꽃내음이 나는 듯 이선주 번역가의 글에서도 묻어 나왔다. 



적어도 책을 좀 읽어 본 분이 읽기를 권한다


요즘 들어 책을 좀 더 읽는 편이므로 스스로를 다독가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그래도 지천명을 앞둔 나이다 보니 어디서 주워들은 건 좀 있는 편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대학생이라도 이 책은 살짝 입문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진다. 먼저, 미술사, 문학사, 사회 격변사, 종교사를 통사라도 한 번쯤 훑고 지난 경험이 있어야  책 속 꽃밭을 사뿐히 즈려 밝을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잡초는 고사하고 가시밭길이 따로 없을 듯. 예를 들어 수태고지라는 성서의 중심 주제가 되는 그림이나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다면 충분히 이 책에서 밝히는 비유와 상징을 뚜렷하게 이해하기 힘들다. 



수태고지란 영어로 the annunciation이라는 뜻으로 "임신했음을 알린다"라는 뜻이다. 마리아가 남자를 경험하지 않고 성령으로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을 가브리엘 천사에게 듣는다는 얘기다. 


시간이 되신다면 the annunciation이라는 검색어로 구글링 하시면 좋겠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다양한 프레스코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작가 바디는 사회 운동의 한 획을 긋는 운동 속 사용된 꽃을 말하며 생소한 미학에 대한 분석을 소개하는데 이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정말 여러 정보가 범람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책에 음악사는 넣지 않았다. 사실 역사라는 게 미술사, 음악사, 문학사, 과학사가 따로 움직이는 게 하니라 하나의 사조로 흐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 관련 없는 게 없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사도 곁들였다면 음악을 들으며 꽃밭을 거니는 상상도 가능했을 텐데 아쉽긴 하다. 



가장 흥미로운 꽃 카네이션


"집으로 초대받았을 때 카네이션 꽃다발을 선물해도 좋을까요? 절대 아니죠!"라고 패션 잡지 『보그』의 편집자 수지 멘케스는 말했다.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에서 소개한 꽃 중 카네이션이 가장 흥미롭다. 5월은 카네이션 매출이 급증하는 시기라 더 관심이 쓰였는데, 제우스 신에게 바치던 꽃 카네이션의 지위가 추락한 이유에 대한 재미난 역사와 시절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의 카네이션에 대한 고찰이 책에 만발한다. 



영어권 문학과 사회 현상을 더욱 밀도 있게 이해하도록 돕는 책


만일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영문학을 전공하거나 영어 관련 직업을 삼을 예정이라면 한 번쯤 이 책 읽기를 권장한다. 내가 3독이상 한 책 중에 한 권이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이다. 소설 속에 데이지라는 여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이름이 꽃에서 따온 거라는 건 가능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피츠제럴드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데이지라고 붙인 이유를 설명한다. 모든 문학 작품에 꽃이 등장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 한국 소설에도 이처럼 꽃이 효과적으로 상징과 비유를 내재하는지 알 수가 없으나 영미권 문화에는 꽃이 장식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꽃을 통해 인문학의 정수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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