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 문제다 - 대한민국 99%의 내일을 위한 전략
김윤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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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거 진작에 썼어야 하는데, 글쓰기를 강박으로 밀어붙이는 게 이렇게나 해롭다. 독후감이 '꼭 써야만 하는' 글쓰기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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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전엔 나름대로 훌륭한 글을 써제끼곤 했었다. 소위 엉덩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노가다'를 통해서. 지금 돌아보면 내가 써온 글의 태반은 노가다의 산물이다. 퇴고, 퇴고, 퇴고, 또 퇴고, 줄이고, 퇴고 (...) 한 편의 훌륭한 글을 만들어내는 힘든 작업이었지. 사실 모든 글이 꼭 네모반듯 정제될 필요는 없는 데 말야. 날것에 대한 매력이 또 있는데 말이지....... 그런 느낌을 다소 잃어버린 거 같아. 그래서 이번 글은 좀 날려 보려고 해.



저자는 나와 동향에 중/고등학교 동문이야. 지역이기주의가 적폐청산의 과제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이 시기에 그런 게 뭐 언급할 거리가 되나 싶을 테지만, 그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거든. 지역 신문 문화란에서 '지역 출신 아무개가 책을 냈다'라는 소식을 접한 탓이지. 저자는 16년도에 더민당 후보로 우리 지역 총선에 출마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낙마의 고배를 마셨어. 이 동네가'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기존에 있는 사람 밀어주는 관행이 워낙 확고해야 말이지. (하핳)


근데 이분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학자의 마인드에 가까워. 학자가 정치인이 되면 너무 정직을 추구해서서 망하는 경우를 우린 숱하게 보아 왔잖아? 대표적인 예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있는데, 이분이 실상 언플로 망했거든. 관련 부처 공무원인 울아부지 증언에 따르면 학자, 행정가로는 상당히 훌륭한 분이었다고 해. 대중 일반에 이런 부분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무척 안타까운 사실이야. 하여간 정치를 하려면 다소간 꾼 기질이 있어야 하는데 저자 김윤태씨 역시 그런 건 갖고 있지 않아 보여.



아무튼 이 책의 핵심 의제는 '보편적 복지 국가'야. 우리 사회에서 보통 복지를 얘기 할 때면 그건 '선별적 복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면 '아니 거 xx 다 퍼주면 국가 재정은 어떻게 하냐고!' 내지 '공산주의 빨갱이' 라는 식의 비생산적인 오명을 듣기 십상이지. 그래서 이 책의 두번째 핵심 주제가 바로 '공정한 증세'야.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고, 철저히 공정하고 효용적인 세제가 필요하다 이거지. 그래 맞아.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세제가 주로 부자들의 편의에 영합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이 부분은 거의 다들 동의하리라 생각해. 요컨대 공정한 증세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 국가가 답이라는 거야.



이 책의 주요한 특징은 하나 더 있어. 바로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얘기한다는 거야.  대표적으로 능력주의, 엘리트주의, 낙수경제학, 개인주의 심리학 등을 말하는데 이걸 보면 여하한 정파적인 편향은 취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 보통 베츙이들이 진보인사들을 노빠라고 낙인찍고 졸라게 까잖아. 근데 이분은 학자적 스탠스에서 참여정부를 가차 없이 까고 있어. 참여정부가 실상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였다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지.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표방했지만 경제 씽크탱크에 주류 기득권 경제학자들이 앉아 있던 게 문제라면서 경제 개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야.



맞아. 이 책의 핵심은 결국 '경제개혁'이야. 그게 이 책에서 제기하는 '불평등'을 타개할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지. 하지만 불평등이라는 명제가 그리 귀에 안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의 폐해를 주장해. (이 부분은 책에 나온 내용은 아닌데) 가령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보면 미국 3억 인구중에 5천만이 의료보험이 없다고 해. 그 사람들은 아프고 병이 나면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무당을 찾아가. 이건 미친 짓이야. 사회적 완충재가 전무하다는 건 국가의 폭력에 다름 없는 거지. 여하간 사회적 불평등을 타개하는 것이 보다 건강하고 효능적인 사회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이야.



복지국가는 소득 분배의 평등보다 사회적 평등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사회적 평등에 관한 이론적 작업을 시도한 학자는 런던정경대학 사회학 교수였던 토머스 마셜T.H.Marshall이다. 1950년대에 출간한 <시민권과 사회계급Citizenship and Social Class>이 대표적인데, 이 책은 마셜의 관점에 따라 현대적 의미의 평등을 주로 '사회적 평등'의 관점에서 사용한다. (...) 마셜은 이 시기에 등장한 '시민권citizenship'의 개념에 주목했다. 시민권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가지는 지위'를 의미하며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셜은 사회권이 '절대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리고 말하며 '그 위에 불평등의 구조가 만들 수 있는 평등의 토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p.200) 

저자는 또한 사회적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을 언급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야.



흥미롭게도 한국의 제헌헌법(1948)과 현행 헌법(1987)도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제헌헌법의 초안을 만든 유진오는 <헌법해의>에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민주국가와 같이 정치적, 법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실질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적었다. 2002년에 헌법재판소도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원리로 설명했다. "사회국가란 한 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p.222)


그런데 나는 이 사회학자의 진단을 포장할 수 있는 더 세련된 수사rhetoric가 필요한 것 같아. 이 지점에서 나는 저자가 트렌드를 좀 읽을 필요가 있었어야 한다고 보고. '불평등이 문제다' 보다는 '보편적 복지가 왜 나쁜가?' 정도의 제목만으로도 적당히 핫했을 거야. '아프지 않는 사회' 같은 느낌으로. 물론 이 책이 약팔이에 그칠 요량이 아니라면 수사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사회적 평등 이데올로기를 탄탄하게 뒷받침할 정치철학이겠지. 이 지점을 고민해야 할 때야.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자유시장경제의 인간소외가 정점을 찍어가고 있는 이때 국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어. 이를 선도할 정책의 핵심이 보편적 복지 국가, 소득 주도 성장, 사회적 평등, 공정한 세제라는 것은 자명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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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랑일랑 2018-02-0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든 대충 포장하긴 했는데 사실 그렇게 막 친절한 책은 아니다...ㅋㅋ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곰의 눈 푼크툼 1
니콜라스 쿡 지음, 장호연 옮김 / 곰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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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래의 클래식 꼰대주의를 비판하며 음악비평의 새로운 물결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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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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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기자 출신으로 이제는 명실상부 MBC의 사장이 된 최승호씨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용마 기자는 그저 이름 없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 분이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때 '타성에 젖은 386세대의 그저그런 안일한 담론이 또 한 편 나왔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보자고 한 건 아이러니다. 이번 달은 정치/사회 분야 도서를 읽기로 했는데 후보로 나온 책들이 별로 시의성이 없어 보여서 제시했던 거였다. (최근에 나온 관련 도서들 중에는 지역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었던 탓도 크다)


처음에는 내 시니컬한 생각이 적중한 듯 했다. '아 예, 그래서 존나게 잘난 시절을 보내셨군요.' 하다가 계속 읽다 보니 이사람 역시 나와 같은 반골기질, 비타협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지표현이고, 결국 이 책은 그러한 삶의 증언이다.


사실 '적폐청산'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의제가 맞다. 가장 대표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일개 세력가들이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하려 드는 관행이다. 우리 지역만 해도 공무원들이 적당주의에 빠지는 건 다반사고,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걸 보면 근대국가는 허상이고 조선은 아직도 망하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적폐청산이라는 건 정치적인 개혁만으로 바뀌지는 않을 거다. 제도개혁이 이루어지면 공무원들도 그에 발맞추어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이건 보여지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실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다 오랜 기간 싸워 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노사간 불평등, 군대문화, 기득권의 부패, 연고주의, 적당주의 등 이 사회에 뿌리 박힌 관행을 모두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그 어려운 일을 이런 사람들이 자꾸만 해내려 드는 것 또한 맞다. 슬픈 일은 이런 일이 작금의 청년 의제와는 시의성이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거다. 역시 우리는 경제성장이 더 중요한 의제랄까.


노통은 여기서도 까인다. 노통에 대한 신화화를 이제는 버릴 때다. 아마 10년 정도가 지나면 노통은 우리나라 리버럴의 흑역사 내지 볼드모트 정도로 취급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런데 참 그것도 기구한 운명이다. 리버럴의 선두주자였는데 결코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운명이라는 게. 기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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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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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고 싶어서 읽었던 책보다는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책들이 많다. 또는 사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아까워서 읽었던 것들. 글자는 눈에 들어올 리 없었고, 때문에 사고와 행동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음 역시 자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를 쓰고 걸렀던 장르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계발서'였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이 평범한 심리학 도서인 줄 알았다. 외우기 힘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이름과 함께 '몰입flow'은 어디서든 인용되는 개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평범한 심리학 도서가 아니었다. 바로 과학적 자기계발서였다. (...)


과학적 자기계발서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바로 '과학적 낙관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낙관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은 어차피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있으므로 희망을 갖고 살아라. 네가 하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입장이니까.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를 곧바로 사회의 진보로 못박을 수가 있는가? 이는 과학이 인간의 가치판단에 개입할 수 있다는 비약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요컨대 과학의 진보를 종교적 믿음처럼 수용하기 이전에 우리는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맹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서 성공, 긍정, 열정 같은 류의 주장을 원색적으로 경멸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소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알려주는 충고를 보고 저자가 주장하는 개념은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주로 과업 수행중에 나타난다. 잠을 자거나 세수를 하며 몰입하는 사람은 없다. 일중독자의 삶이 가치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행복'을 쉽게 얘기하곤 한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수사는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행복은 수반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몰입하는 삶'을 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한다. 이렇듯 행복을 수반개념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내 견해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지점도 있다. 궁극적인 목적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충고는 데일 카네기 이래로 미국발 자기계발서가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저자는 좋은 인간관계가 성공한 인생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는 식으로 조각가 니나 홀턴의 말을 인용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가지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동료 예술가로부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런 질문도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종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단 소리다. 죽어라고 한 자리에 붙어있는다고 해서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가서 자기를 드러내야 할 때는 연고라는 것도 있어야 한다. 화랑 사람들도 알아야 하고 내 분야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거기에 속하고 싶건 속하고 싶지 않건 간에 어떤 동질적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p.128)
심지어는 '바보'가 혼자 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idiot라며 극딜을 넣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정말 왜 혼자 있지 않아야 하지?


또한 의문이다. 왜 나는 그토록 자기계발을 혐오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조차 하나의 핍진한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자기계발에만 몰두하게 되면 개혁이나 혁명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 경계하는 느낌으로. 그런데, 개혁과 혁명을 논의하기 이전에 인간은 진정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었나. 오히려 자유로운 자아상은 몇몇 소수만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상담심리학의 모토가 그것 아닌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 결핍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지식사회의 위계가 자기계발논리를 수용한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지식인의 구도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자가 미들브로우, 지적 중산층이라면 후자는 엘리트로서. 아무래도 전자는 의식의 반전을 겪은 경우가 많을 테니 자기계발논리에 보다 친화적일 테다. 후자는 어쨌든 그게 '잘못 되었으니까' 까내리는 데 주력할 것이고. 강준만이 지적했듯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하는 건 괜찮고 남이 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식의 태도는 필견 잘못된 것일 터이니.

이 책은 소위 말하는 '꿀팁'에 가깝다. 그러나 꿀팁만으로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자아상에 대한 성찰에서 얻어갈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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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 THAAD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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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역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됐다. 아마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평생 읽지 않고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 소중한 인연들, 책 한 권. 고마운 마음이다.





 김진명은 한국 문학이 망해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꾸준히 베스트셀러 일변도를 걷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지난 2016년에도 김진명의 ‘글자전쟁’과 ‘싸드 Thaad’는 서울시민들이 가장 많이 대출한 책으로(각각 1위, 4위) 기록된 바 있다. (뉴시스. 지난해 서울시민이 가장 많이 빌려간 책은?. 2017.01.01) 고로 대중성을 척도로 본다면 김진명은 대단히 공신력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각종 시사 이슈들에 대한 코멘트를 던지는 데서 그가 대중에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시사문학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줄거리는 전체적으로 김성모나 박인권 같은 극화작가들의 그것과 흡사한 느낌이다. 소위  ‘아재 냄새’가 난다. 자신의 오너캐(해당 인물의 아바타나 페르소나 등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캐릭터. 오너 캐릭터Owner character의 줄임말)가 등장하고, 충북 제천(그의 작품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이라는 지명이 나오며, 개연성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경도되어 있는 서술 또한 특징이다. 굉장히 술술 읽히면서도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달리 말하면 줄거리와 인물관계는 결국 자신의 주장에 복무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 그야말로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리고 김진명은 작품에서 사드 배치=전쟁이라는 등식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상 서론에 집약되어 있다. 달러가 꾸준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오늘날, 미국은 그들의 본토가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언제든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그 시점은 바로 한반도에 사드(언제부터인가 Thaad의 표기는 '싸드'보다는 '사드'가 일반화된 관계로 '사드'로 표기한다)가 배치된 이후부터일 것이라고. 작품의 주인공 ‘최어민’(작가의 오너캐로 사료된다)과 그의 조력자 ‘김윤후’는 각각 사드배치반대론과 찬성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주인공 최어민은 사드배치를 막지 않으면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라는 엄청난 진실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개인들을 대변한다. 그야말로 미국은 신(Deus)이고, 개인들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사로잡힌 듯 보인다. 반면 김윤후는 “중국은 나라가 아니다”라며, 중국의 반反인권적 현실에 분노하는, 그리고 미국의 패권주의가 이를 타개할 수단이라고 판단하는 지식인으로 상징된다. 그들의 견해야 어쨌든, 줄거리를 따라가노라면 한반도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여진다. 통탄할 일이긴 하지만 2017년 현재, 동북아 정세는 어떠한가. 그리고 사드의 현안은 어디로 가고 있나.






 김진명이 지적한 대로 전쟁은 달러의 약세가 그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달러의 약세’라는 것은 지극히 필연적인 현상이다. 달러는 국제 거래의 기준이 되는 통화, 즉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는 돈보다 밖으로 나가는 돈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다시 말해 태생적으로 무역 적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는 미국이 고도로 발달된 금융업과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그 많은 무역 적자를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안정적인 체제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빚으로 순환하는 딜레마를 떠안은 국가이기도 하다. 돈이 부족할 때마다 돈을 찍어내어 유지되는 체제는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빚을 탕감할 만한 유일한 방책으로 전쟁이 지목되는 것이 바로 작금의 문제의식이다. 미국 국방예산은 심각한 수지 불균형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결코 감축되지 않고, 오히려 매년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전쟁을 통해 유지되는 국가라는 점은 비단 책의 서론에 언급된 폴 크루그먼 뿐만이 아니라 노엄 촘스키, 슬라보예 지젝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석학들이라면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다. 소위 불량국가,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그들의 엄청난 군비증강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런데 미국이 망하면 그 막대한 혼란은 어떻게 떠맡을 것인가.




 중국은 얼핏 미국의 아성을 넘볼만 한 신흥 패권국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이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 1)안정된 체제를 가져야 하고, 2)자본시장을 더 개방해야 한다. 중국이 아무리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 개방된 도시들에 한해서일 뿐이며, 시진핑 일당 독재체제의 공포정치와 불안정은 미국 금융 체제의 불안정에 비해 결코 나을 것이 없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극복되기 요원한 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한 수 멀었다. 김윤후가 일갈했듯 지금의 중국은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다.




 작품 중간마다 ‘태프트 리포트’라는 막간이 나와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태프트라는 익명의 유력자가 2010년대 한국의 권력실세들을 분석, 정세를 전망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태프트 리포트는 딱 두 챕터, 즉 채동욱과 안철수까지만 그나마 납득할 만하다. 태프트는 아주 결정적인 변수를 간과함으로써 그 모든 논의들을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박근혜의 비선실세다. (...) 이 엄청난 변수 때문에 새누리당을 위시한 보수 여당 세력은 하루아침에 폭삭 망해버렸고, 10년 만에 민주당 세력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그리고 정권을 획득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에게 불편한 지도자일 것이라는 태프트의 예상과는 반대로 자신들의 우방으로서 전략적인 기조를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사드 배치는 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언급한 바 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허완. 2017. 09.19) 문 대통령은 8일 ‘입장문’ 형태로 밝힌 글에서 “우리의 안보 상황이 과거 어느때보다 엄중해졌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또한 문 대통령은 "거듭된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한 북한의 도발을 언급하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방어능력을 최대한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임 박근혜가 사드배치에 대해 이도저도 아닌 입장으로 불안정한 태도를 취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과 중국 중에서 확실하게 미국을 위시한 외교라고 볼 수 있겠다.






 냉전 이후 한반도는 세계3차대전이 일어나기 유력한 전장戰場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그것은 오랜 기간 기우에 지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그야말로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북한의 도발이나 핵실험 등은 지금도 다수 민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더라도 전쟁에 대한 불안을 피해갈 수 없도록 하는 주지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다. 역사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고, 때문에 반공-군부독재 정권이 오랜 기간 권력의 정점에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본질적인 요인은 북한 자체보다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이다. 이렇게 보면 ‘휴전국’이란, 비단 38선 너머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정황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리라.






 따라서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느 쪽 기로에 서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따져 보아야 하는 것이다. 국군은 ‘우리의 주적이 북한’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장하지만, 그것은 다른 북한 외 다른 강대국들과는 대적이 안 되는 국군의 한계를 드러내는 말일 뿐, 사실상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위협적인 존재인 것이 더욱 적절한 현실이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 제일의 패권국으로 군림했고, 우리나라가 현재까지도 이들 군사력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에 미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나라 같지도 않은” 중국과 천덕꾸러기 북한 사이에서 최선이 아니라 그나마 차악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과 사드의 현 주소다. 국제, 외교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라는 현실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싸드”가 대중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의의와 한계는 몹시 분명해진다. 지금이야 사드가 시사상식용어가 된지 오래지만 이 책이 초판된 2014년 당시만 해도 사드는 지극히 알려져 있지 않은 주제였다. 만약 이 소설이 대중 일반에 사드의 존재와 그 의의를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면 김진명은 충분히 이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7년 현재, 김진명이 지적한 바가 과연 타당한가는 또다른 문제이다. 선술한 대로, 그는 전문성을 갖추었다기 보다는 다만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작가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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