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안이한 사유와 시어들로 부리는 듯 했으나, 3부에 수록된 작품들로 하여금 이 책을 하나의 사회학 텍스트로 읽도록 하는 전거가 마련되고 있다. 나는 이 시집에서 예술이라는 자위 내지 자족에 매달리는 신자유주의 청년들의 자화상을 보며, 아름다움을 자아의 것으로 한계짓(게 되)는 심미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세계적 현실을 본다. 시인이 시도한, 어쨌든 시도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이 컨셉아트적 기획은 젊은 예술적 자아의 포부라는 형식과 그것의 태생적 위태로움이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척된 채로우리에겐 우리들만의 승리가 있다그러니 모든 길과 광장은 더러워져도 좋으리술병과 전단지와 색종이 토사물로 뒤덮여도 좋으리창가의 먼지 쌓인 석고상은 녹아버려라거추장스러운 외투와 속옷은 강물에 던져버려라우리에겐 우리들만의 승리가 있다배척된 채로배척된 채로 - P97
11월 다음엔 왜 12월이어야 할까? 나는 젊은 채 죽을 것인데……꼬꼬야, 요즘 사람들은 옛날이야기를 믿지 않지코끼리들의 무덤이 산이 됐다거나거대한 코끼리들이 산을 삼켰다거나 하는 이야기남자가 아니면 왜 여자여야 할까? 꼬꼬야, 나는 모른 채 죽을 것인데…… -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