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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 사실과 당위에 관한 철학적 인간학
로레인 대스턴 지음, 이지혜.홍성욱 옮김 / 김영사 / 2022년 11월
평점 :
커뮤질을 자주 하는 편이라, 정치적 진영논리에 기반한 키보드배틀부터 사회적 사건사고들에 관한 장삼이사들의 이런저런 촌평까지, 한국어 화자들이 구사하는 어떤 보편적 세계관을 다양한 양태로 많이 접하곤 한다. 웬만하면 킬링타임용으로, 흐린 눈을 하고서 말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두고 당위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지껄이는 얘기 만큼은 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편이다. 얼마 전엔 54세 노총각이라는 인간이 썼다는 유튜브 덧글에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은 반듯이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맞춤법의 오표기는 원문 반영) 운운하는 개소리를 접하고 한동안 머리를 맞은 듯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꽤 호소력 있는 개소리였고, 적어도 덧글 작성자 본인의 실존적 고통을 증언하는 수사적 효과로서는 의의가 있는 듯했다. 그는 덧글에서 몇년 전 모친이 사망한 후로 평생 느껴보지 못한 정서적 고립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술하며, 자기 가정을 이루지 못한 이들은 겪어보지 못한 지옥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덧글 작성자의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계급적 층위(오토바이 사고로 어깨를 다쳤다는 증언으로 보아 배달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를 감안할 필요가 있겠지만, 요점은 그가 자기서사의 불행한 일면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지 못했음에서 찾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자연주의의 오류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자기 삶의 고통을 절절하게 호소하며, 그것을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 데 있는 것으로 귀인하고, 이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데 따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결론짓는 것은 하나의 그럴듯하고 완결적인 서사 같은 효과를 야기한다. 그리고 이 서사는 사회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서 무릇 인간이라면 일정 나이에 이르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데 도덕적 당위를 부여한다. 문제는 이 도덕적 당위가 바로 ‘자연의 섭리’에서 도출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자연의 섭리는 또다른 자연의 섭리로 반박될 수 있을 것 같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자연의 거의 모든 종에서 90% 이상의 수컷들은 암컷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늘그막의 독수공방은 오히려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무언가 우리는 자연에서 도덕과 당위를 도출해내는 일반화된 경향이 있는 것 같고, 로레인 대스턴의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는 이에 대해 상당히 명쾌한,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꽤 통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역자 해설에 의하면 저자는 한국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상당히 영향력 있는 과학사가이고, 이 책은 분량은 짧지만 자연과 규범에 관한 그녀 연구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내용들의 깊이 있는 압축적 판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자연에서 도덕을 찾아내는 경향은 ‘일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칸트적 의미에서 ‘보편적’이다. 인간의 모든 규범은 일종의 패턴화할 수 있는 질서를 필요로 하는데, 이 질서에 대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다양하면서 근본적인 표본을 제시하는 시원은 자연이다. 따라서 규범성 그 자체는 자연과 매우 강한 상관을 갖는다고 할 수 있으며, 결코 특정 개별 규범이 특정 자연적 현상과 상관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선술했듯 자연은 근본적으로 보이는 만큼 다채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서 도출된 하나의 당위는 자연에서 도출된 또다른 당위로 반박할 수 있다. 이로써 자연의 법칙을 유비하여 당위를 이끌어내는 논증은 그 자체로 취약성을 갖는다. 여기에 더해 인간은 인간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성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칸트가 경고했듯, 신학의 혐의가 있다. 저자의 결론은 도덕을 자연이 아니라 인간 몸의 이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지며, 책은 “만약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간 이성의 능력을 탐구한다면, 우리는 글자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칸트를 따를 수 있다”(93쪽)는 서술로 마무리된다.
칸트의 인간학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의 주장을 비추어봤을 때, 인간에게는 아무튼 어떤 당위적 속성을 갖거나 규범화된 영역으로 여겨지는 행위들에 대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다시 말해 자연화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자연과 규범의 상관성에 대한 설명을 일종의 ‘인식론적 전환’으로 해결한 것처럼 생각된다. 문제의 관점을 바꾸는 이런 식의 전략은 명쾌한 느낌을 주지만 약간은 시원찮은 뒷맛을 남기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주의의 오류가 소위 인간의 본성이라면, 다시 말해 우리가 거기에 얽매여 있다는 말 아닌가? 서두에 언급했던 유튜브 덧글 작성자의 경우처럼 자기 고통의 사회구성적 원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연이 최종 심급으로 소환되는 현상은 개소리지만 어떤 ‘본래적인’ 설득력을 갖는 듯한 면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책에서는 이것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고, 거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나타난다고 쓰여있다). 그러나 아무튼 이 책은 도덕을 자연화(naturalization)하는 경향이 명백한 개소리라는 걸 확실히 논증하고 있고, 책의 논의와는 벗어나지만 인간 몸의 이성에 기반한 당위 내지 도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초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