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읽고 싶어서 읽었던 책보다는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책들이 많다. 또는 사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아까워서 읽었던 것들. 글자는 눈에 들어올 리 없었고, 때문에 사고와 행동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음 역시 자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를 쓰고 걸렀던 장르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계발서'였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이 평범한 심리학 도서인 줄 알았다. 외우기 힘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이름과 함께 '몰입flow'은 어디서든 인용되는 개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평범한 심리학 도서가 아니었다. 바로 과학적 자기계발서였다. (...)


과학적 자기계발서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바로 '과학적 낙관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낙관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은 어차피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있으므로 희망을 갖고 살아라. 네가 하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입장이니까.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를 곧바로 사회의 진보로 못박을 수가 있는가? 이는 과학이 인간의 가치판단에 개입할 수 있다는 비약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요컨대 과학의 진보를 종교적 믿음처럼 수용하기 이전에 우리는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맹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서 성공, 긍정, 열정 같은 류의 주장을 원색적으로 경멸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소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알려주는 충고를 보고 저자가 주장하는 개념은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주로 과업 수행중에 나타난다. 잠을 자거나 세수를 하며 몰입하는 사람은 없다. 일중독자의 삶이 가치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행복'을 쉽게 얘기하곤 한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수사는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행복은 수반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몰입하는 삶'을 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한다. 이렇듯 행복을 수반개념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내 견해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지점도 있다. 궁극적인 목적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충고는 데일 카네기 이래로 미국발 자기계발서가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저자는 좋은 인간관계가 성공한 인생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는 식으로 조각가 니나 홀턴의 말을 인용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가지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동료 예술가로부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런 질문도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종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단 소리다. 죽어라고 한 자리에 붙어있는다고 해서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가서 자기를 드러내야 할 때는 연고라는 것도 있어야 한다. 화랑 사람들도 알아야 하고 내 분야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거기에 속하고 싶건 속하고 싶지 않건 간에 어떤 동질적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p.128)
심지어는 '바보'가 혼자 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idiot라며 극딜을 넣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정말 왜 혼자 있지 않아야 하지?


또한 의문이다. 왜 나는 그토록 자기계발을 혐오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조차 하나의 핍진한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자기계발에만 몰두하게 되면 개혁이나 혁명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 경계하는 느낌으로. 그런데, 개혁과 혁명을 논의하기 이전에 인간은 진정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었나. 오히려 자유로운 자아상은 몇몇 소수만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상담심리학의 모토가 그것 아닌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 결핍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지식사회의 위계가 자기계발논리를 수용한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지식인의 구도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자가 미들브로우, 지적 중산층이라면 후자는 엘리트로서. 아무래도 전자는 의식의 반전을 겪은 경우가 많을 테니 자기계발논리에 보다 친화적일 테다. 후자는 어쨌든 그게 '잘못 되었으니까' 까내리는 데 주력할 것이고. 강준만이 지적했듯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하는 건 괜찮고 남이 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식의 태도는 필견 잘못된 것일 터이니.

이 책은 소위 말하는 '꿀팁'에 가깝다. 그러나 꿀팁만으로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자아상에 대한 성찰에서 얻어갈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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