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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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억울하다... 지난 달에 정독했는데, 바로 개정판이 나와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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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 - 철학은 답을 알고 있다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김현정 옮김 / 예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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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항지식, 어용지식과 구별되는 실천지식을 제공한다. 철학자의 경구는 아주 제한적으로 인용되고, 서구식 텍스트 특유의 '사례들'의 서술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분석하는 데만 힘써왔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다.' 라는 마르크스의 테제를 다시금 곱씹는다. 하지만 그 실천의 강조로 인해 이 책은 얼핏 '자기계발서'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좋은 말 투성이인데, 좋은 말이 계속되면 잔소리처럼 들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말을 듣고, 그 가치가 소진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을 장려하며, 그래도 위기감을 갖지는 말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말 평생에 걸친 연습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왜 책읽기나 글쓰기는 내가 억지로 해야만 하는 행동이 되어야 하는가. 이게 아주 몸에 배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될 수는 없는가. 그러니까 나는 능수능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고 싶어하면서도, 그에 도달하는 과정은 무시하려 했던 거다. 분별력있고 지성을 갖춘 주체가 되는 것은 결코 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게 되고 싶다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노력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고 그저 꾸준히 완벽한 모습들만 보여주려 애쓴다. 백조는 우아하기 위해 쉴 새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노력을 얘기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는 탓이다.

오늘날 개인을 개발하기 위한 논리는 국가, 제도 단위에서 개인을 착취하는 데 쓰이고 있다. 좋은 사회제도를 구축하는 대신 그 편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력'이나 '열정', '희망'이 개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인데도, 그것은 불신으로 가득찬 언어가 되어버렸다. 참담한 일이다. 그리고 마음수련이나 철학실천은 우리가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을 때 필요해지는 개념이 맞다. 당장 궁핍한, 그리고 갈수록 더 궁핍해지는 현실에서는 노력이니 열정이니 하는 것들이 희박한 관념이라는 소리다. 따라서 개인을 구원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양자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지식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느꼈다. 이른바 자기계발, 노력, 열정, 희망 등의 재의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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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라는 말을 되새긴다. 나는 주체적 인간이 되자면서 너무 많은 선택에 놓여있었다. 이제 나는 선택하지 않는 법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 정확히는, 좋은 선택을 하는 법이겠다. 너무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페북이 빈곤한 공간이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 생각에 대한 확증을 더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다시금 인정한다. 공부란, 하나의 관점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수한 무의미 속에서 더 분명하게 의미들을 분별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석과 실천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느껴진다. 새가 죄우의 날개로 나는 것처럼 말이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는 칸트의 말마따나 지식은 우선 내 행동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주는 쪽으로 개발될 필요가 있겠다. 나는 한꺼번에 다양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건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문성을 담지해야 하는 것이다. 얼치기 말고 혼모노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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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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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건 페친(페북 끊었지만ㅜ) W의 포스팅 때문이다. 그는 '쉬운 글쓰기'를 모토로 강의를 연다는 '모'의 포스팅을 공유하며 글쓰기에 대한 자각도 없는 작자라고 비난했었다. 그에 따르면, 글에는 저자의 치열한 고뇌와 무게감이 담겨 있는 것이고 무턱대고 쉬운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주체성의 상실을 담보하는 짓거리에 해당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모의 강연이 약팔이라고 느껴지긴 했지만, '자신을 버리는'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점은 동의하고 있었는지라 그냥 모의 유명 에세이를 한 권 읽기로 했다. 최소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진정성(sincerity)의 승리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의 서문에는 본 저서가 암울한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적혀 있다. 물론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온전히 다 기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해야겠지만, 오늘날 대학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발빠르게 적응한 비인간적, 몰인간적 기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학문과 지성의 총체라는 수사는 허울 뿐이고 실상은 그를 구실로 한 착취와 열악한 근무환경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1부 '대학원생의 시간'은 참 암울하기 그지없는 내용들 투성이지만, 전공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쩌면 책에 나왔던 것보다 훨씬 더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영어입시강사 이명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삼 3월 무렵에 이명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모토로 수험생들의 공부를 닥달했는데, 그것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지치는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서 대학에 가라는 맥락이었다.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막막하고 팍팍한 현실을 살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기록하며 매순간 거대한 신자유주의 구조라는 괴물을 직시하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득달같이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과업을 달성하는 것보다는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에 더 어울리는 말이라고 느껴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대학원 생활 초기에는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울화를 주변 동료나 교수에게 투사했다고 하지만, 지방시를 연재하면서부터는 모두가 구조의 피해자들이고, 그들을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사회복무요원 일을 하면서 병역의 의무라는 이름 하에 가해지는 부조리를 명증히 직시하는 대신에 종종 짜증을 내고 같은 직장의 구성원들에게 그 감정을 투사하곤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그들 역시 구조의 피해자라는 점을 돌아보게 되는 건 항상 짜증을 내고 난 다음의 일이다. 관리국가가 무서운 점은 구성원들을 분열시켜서 자신들에게 대항할 연대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한다. 팍팍하고 암울한 삶 너머에는 인간을 좀먹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거대구조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다.


 

2부 '시간강사의 시간'은 1부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부는 '부조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이라는 주제였지만, 2부의 그것은 주로 '노동하는 삶에서 찾아나가는 행복'이었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배운 인문학, 좋은 강의자로서의 덕목, 주변의 사회문제로부터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통찰하는 태도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에 담긴 함의를 분석한 건 무릎을 탁 칠 만큼 기억에 남는데, 신자유주의 체제가 노동자를 외화(外化)하는 한편, "갑≥갑의 소유물>을"이라는 도식을 공고히했다는 근거라는 것이다. 이를 보고 나는 정말이지 페북의 말로만 떠들어대는 딜레땅뜨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가 무식하다고 치부하는 문법과 신조어에는 비난할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탓이었다. 그래서 책을 보다 보면 그가 왜 '쉬운 글쓰기'를 고집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구조에 맞서는 '저항적 지식'의 담론을 키우려는 데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삶의 궤적을 보노라면 그는 오랜 기간 땅 속에서 지내다가 볕을 보게 된 매미처럼 시간제 강사라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의미와 행복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노력'이 그렇게 훈훈할 수가 없었다. 그래, 우리는 결국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이구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더 괴롭겠지만 내가 찾아나가는 행복들은 많은 의미들로 다가오겠지...라고 느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냥 어디어디에 연재되는 '지방시'라는 글이 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그마저도 그렇게 호의적인 시선이 뒤따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 제목이 '어디어디 학교의 강사'가 아닌 것도, 저자가 익명인 것도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위계에 저항하기 위함이라는데, 과연 사람들은 저자의 약력과 지위만 보고 그것을 까내리는 데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저자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에게는 다른 냉소적인 지식인들에게서 보여지지 않는 어떤 '진심'이라는 게 있음이 느껴진다. 지방시는 2년 전에 나온 책이고, 예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긴 했지만 갓 헬조선 담론이 불거지기 시작하던 때 쓰인 글이라 그런지 문제의식은 더욱 명증하다. 에필로그에는 사회학자 오찬호씨의 '진격의 대학교'가 인용되고 있었는데, 더불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과학 관련 도서는 무서운 속도로 신간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아무렴 구조적인 문제의식에 접근하는 건데 상관이 있으려나 싶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을 보면서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있다. 나중에 내가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이 됐을 때, 누가 나에게 어떻게 방황을 멈추게 됐나,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어떻게 만들었나 라고 물어보면 나는 대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인데, 나 역시도 나의 방황과 고생을 한낱 젊은 날의 미담 정도로 퉁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느꼈다. 고난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사유하는 인간이 된다. 어쩌면 축복이라면 축복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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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의 거장들
박찬국 지음 / 이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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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년만에 읽었다. 원래는 대학교 1학년 2학기 교양수업 때 쓰던 교재였고, 한 번 붙잡은 책은 어떻게든 끝까지 읽어낸다는 내 쓸 데 없는 강박 때문에 꾸역꾸역 다 읽게 되었다. (그땐 수업에서 니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푸코를 다뤘고, 그마저도 진도에 쫓겨서 푸코는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우선 현대철학 입문서로서 그렇게 좋은 책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몇몇 철학자들의 경우에는 저자의 '애정어린' 서술로 인해 비교적 일반적이지 않은 첫인상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 사실 철학 입문서가 그렇게 막 이것저것 골라 읽어야 할 부류의 텍스트도 아니고, 요즘에는 나무위키 정도면 어느 정도의 겉핥기는 가능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철학사가 아닌 이상 근래 '유용한' 입문서들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 다만 서울대 교수 박찬국 씨의 지적 권위를 두고 보았을 때, 그 결과물이 심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급적 주석을 달지 않았다고는 했으나 그 때문에 구술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진 감이 있고, 중언부언, 동어반복의 문제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읽어낸 책이다. 나의 대견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맑스,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에 대해 대체로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후술하겠지만 꼭 모든 인물들이 평이하게 서술된 건 아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보다 심원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들이 두 권 씩 소개된다. 소개된 책들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 코가 석 자이기도 하고, 알라딘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e북 '철학-책'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쪽이 더 마음이 간다.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라고들 하긴 하지만)




우선 맑스의 경우는 맑스 사상의 축을 이루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함께 계급대립, 소외론 등의 개념을 어느 정도 적당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주로 근대 자유주의 체제와의 비교를 통해 사회주의의 강점과 한계를 적어내는 식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마지막 단락에 가서 맑스 이론을 전면 비판하는데 힘을 쓰고 있는데, 이는 이 책에서 행해진 거의 유일한 저자 단위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체주의는 천국을 모방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다.'라는 콜라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맑스가 실패했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주지했다시피 이는 저자의 주의주장이라는 점에서 굳이 다 수용할 필요는 없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의 경우는 비교적 저자의 목소리가 많이 개입된다. 먼저 키르케고르는, 초반부에 '내가 천재라고 생각한 유일한 철학자가 키르케고르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저자의 아주 주관적이고 '애정어린' 기술이 이어질 것임이 예고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듯이 나는 종교적 문제를 다루는 작가이며, 나의 모든 저술 활동은 그리스도교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라는 그의 저작의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내용들로 드러난다. 분명히 그는 실존철학의 비조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은 철학자임이 분명하지만, 어째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식의 중언부언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완전 예수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이 비단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그 내용은 키르케고르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다.


니체의 경우는 특히 더 불만스럽다. 니체 자체가 워낙 다의적인 해석을 야기하는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그 아포리즘 문체 특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필요가 있는 인물인데, 그런 부분에서의 인용이 몹시 부족했다. 단지 '신의 죽음'을 시작으로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를 통해 니체가 니힐리즘을 극복하려 했던 철학자라는 걸 일관적으로 주장할 뿐이다. 근데 그러면서도 초인(Übermensch)이라는 단어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더러 초기 주저 '비극의 탄생'의 내용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 참으로 일관성에 가려진 비극이다. 더구나 자주 인용되고 있는 '힘에의 의지'는 그의 여동생이 집필한 '위작'인데, 이는 자꾸 서술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하이데거의 경우는 그 어렵다는 존재론에 대한 일반적인 요약-기술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후기 사상에 집중함으로써 하이데거를 거의 자연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 물론 하이데거의 철학이 워낙 포괄적이고 방대한 기조인 것도 있지만, 니체와 마찬가지로 일의적인 서술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감이었다. 



이후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의 경우는 대체로 평이하게 잘 서술했다. (실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다) 하버마스의 경우는 더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저술인데, 이게 찰스 샌더스 퍼스의 실증주의 비판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관심'과 빌헬름 딜타이의 사회과학 연구에서 비롯된 '실천적 관심'을 서술하는 대목에 약간의 비약이 있어서 그렇다. 하버마스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푸코의 경우는 나쁘지 않았다. 초기 광기의 역사에서 말과 사물, 중기 감시와 처벌, 후기 성의 역사를 중심으로 평이한 서술이 이어진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전기 '논리-철학 논고'와 후기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평이하게 쓰여졌고, 칼 포퍼 또한 그의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두 축을 중심으로 잘 쓰여졌다.



막상 읽을 때는 '뭐 이런 식으로 써 놓았지' 싶을 정도로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밀린 책 다 읽어내는 게 꽤 큰 성취감을 준다.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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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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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텍스트(1974년 초판)인 것을 감안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독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번역도 꽤나 고풍스럽다오늘날과 부합하지 않는 사실관계들을 필터링해야 한다저자는 (당시 상황에서오늘날 문화인류학 연구가 실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학적 문화인류학 대중서'.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사랑의 기술'과 마찬가지로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낡은 텍스트지만그 '메시지'는 충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1장에서 저자는 힌두교의 암소숭배 사상이 서구/근대중심주의적으로 오독되고 있음을 지적한다암소숭배는 인도의 경제를 해치는 주범이 아니라오히려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교리(doctrin)적 시스템이라는 것이다인도인들은 암소를 그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이는 서구의 공장식 소 사육체제가 비할 바 못 된다는 것이다서구는 막대한 양의 쇠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곡물을 들이는 데 반해 인도의 암소들은 인간의 식량생산 후에 남은 부산물을 바탕으로 원료제공농기구유지제공가죽제공우육제공 등 최고의 효율을 낸다는 것이다그러면서 페이지 말미에 "여러분이 진짜 숭배받는 암소를 보고 싶다면밖에 나가 여러분의 자가용 승용차를 바라보면 될 것이다."라고 일갈한다현대문명의 이면을 폭로하고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중동 일대를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했던 무슬림들에게는 돼지가 비효율적 자원이었기 때문에 금기되었다반면뉴기니의 마링 족에게는 돼지가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숭배된다고 한다그들은 보통 10년에 걸쳐 돼지를 사육하고카이코라는 축제를 열어 길렀던 돼지를 소비한다이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축제인데이때 승리 기원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의 영토에 주술적 전투석을 게시한다이윽고 그들이 다시 돼지를 기르기 시작하는 때는 전쟁이 끝나고 승리했을 때다돼지사육-카이코-주술적 전투석-전쟁이러한 사이클을 통해 마링족은 단백질을 보충하며 동시에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다여기서 전쟁은 인구압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그것은 전사자로 인한 인구감소 때문이 아니라(그건 한 세대 정도면 회복된다전쟁이 경작지 회복과 여아사망률 증가에 관여하기 때문이다부족 간 전쟁을 치루고 나면 패배한 쪽의 영토는 농경지로 쓰지 않고 방치해두는데이게 화전이 주업이 되는 뉴기니의 척박한 토양에서의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또한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남성 전사를 길러낸다는 이유로 여아들이 희생된다고 하는데여기서 저자는 남성이 식량소비의 관점에서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신랄하게 깐다남성이란 족속은 일도 안 하고유지비도 많이 드는요컨대 전쟁하는 돼지(...)라는 소리다거기에 대고 남성인구가 늘어나면 유아살해 뿐만이 아니라 여성차별이 빈번해진다고 하는데일례로 남성의 전투력을 고도로 증강시키기 위해 그들의 '성적 욕구'를 박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가장 용맹한 전사에게는 물적 보상 뿐만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보상함으로써 그들의 야만성을 증강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인용하면서도 그걸 유사과학이라고 깐다...ㅎㄷㄷ좌우간 상술한 모든 것들은 원시사회가 전쟁을 위해 남성들을 구태여 유지함으로써 치루는 비용이라고 하겠다대충 초반부의 맥락은 이런 식인데각 장의 말미에는 이렇듯 미개해 보이는 원시사회가 실상 우리가 찬란해 마지않는 서구문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들이 꾸준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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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은 화물신앙에 관한 7장부터다뉴기니에서는 미국일본호주 등 선진국들의 배나 비행기가 원주민에게 화물을 투하해 온 역사가 있다이 화물은 의류통조림군수품콜라위스키 등으로서구문명에서는 흔해빠진 공산품에 지나지 않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절대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 문명적 갭이었다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이어졌고결국 화물을 숭배하게 되었다는 것이 화물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그런데 이 화물 숭배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뉴기니에 포교를 해 왔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서구열강은 원주민들이 화물의 수혜를 입는 것에 대해서는 하등 관심이 없었으며단지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는 데만 주력했다고 한다하지만 원주민들은 메시아를 화물을 가져다 줄 조상들의 영혼으로 이해했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같은 구절들을 조상들을 숭배하라그러면 너와 네 집이 화물을 얻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했다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서구 기독교의 기원과 메시아니즘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시작하는데그게 8장부터다저자가 1장부터 꾸준히 고수했던 서구문명비판의 견지를 원시신앙과 기독교와의 유비를 통해 보다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유비는 그 목적 자체로는 그럭저럭 봐 줄만 했지만그것을 '실증'함에 있어서 오히려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 부분들이 있었다.

 

 

8장에서 저자는 메시아니즘이 강대국의 착취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탈취하기 위한 약소국의 저항논리였다고 설명한다민족을 결집하고투쟁전선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유용히 쓰인 교리였다는 것이다또한 8장의 말미에서 그것이 그들로서는 최선의 적응적’ 메커니즘이었다고 덧붙인다하지만 그나마 어쩌다 실재적인 강화물을 얻을 수 있었던 뉴기니 부족에 비해 천 년 전에 세워졌던(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망해 없어졌던이스라엘 왕국의 재림 하나만을 보고 전투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는 게 적응적’ 선택이었다면 아귀가 좀 맞지 않는다또한 강화행동(화물숭배)을 하고도 별다른 인명피해를 입지 않았던 화물신앙에 비해 유대민족은 수 세기에 걸친 제노사이드를 겪어야 했다본문에서는 뉴기니와 서구열강들의 구도에 비해 유대민족과 로마제국의 구도가 훨씬 맞서 싸울만한 배경이었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숱하게 죽어나갔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을 죽음으로 내몬 메시아니즘 원리를 폐기하지 않았다따라서 그들이 당시로서 최선의 적응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면그것은 실재적인 환경이나 강화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종교의 메커니즘 때문일 것이다이로써 저자 마빈 해리스가 그토록 혐오하던 의식화 과정’, 즉 관념론이 한 민족의 적응에 크게 기여했다는 아이러니가 빚어진다그 때문에 유대인들의 신념체계는 실재적인 강화물이 뒤따르지 않았더라도 왜 오랜 시간 구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증이 요구되는 것이다아울러이 부분은 그 종교의 분파로 태어난 자식들이(기독교이슬람교오늘날에도 지구촌을 크게 뒤흔들고 있는 축이라는 데서 더 설득력을 얻는다마빈 해리스는 자신의 유물론적계보학적 관점으로 메시아니즘을 설명하려다가 역으로 인간의 신념체계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어쨌든 '의식화라든지 '신화라든지 하는 부분들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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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니즘 논의가 끝나고, 10장과 11장은 마녀사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는데전체적으로 흥미로웠다저자는 마녀사냥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며, 17세기에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계기는 그 당시의 종교개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한다이어 그것은 민중들을 서로 의심하고 분열케 하는지배계급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복무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요컨대 당시의 기득권(교회)은 자신들에게 향하는 저항의 총부리를 꺾기 위해 마녀사냥을 조장한 것이다이러한 결론만 놓고 보면 워낙에 당연한 얘기라 그냥 넘어갔지만오늘날에도 '분열의 통치'와 의식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더 고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이 기원이 무척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할만하다대단한 점은 저자가 이걸 계보학적으로 하나하나 파헤쳐냈다는 것인데본문을 보면 어느 어느 구절에서 따왔다는 내용들인용한 문헌들이 참 많다역시 아는 게 많아야 교수를 해먹는다고 느꼈다. (...)

 


마지막으로 저자는 12장과 13장에서 당시(1970년대유행했던 히피문화(본문에서는 반문화로 번역되어 있다)를 비판한다그들은 LSD를 복용하고록 음악을 듣고자연주의와 반전을 주장하지만 이것이 정신승리로만 이어질 뿐이고 실상 사회개혁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는 것이다특히 LSD를 투약하는 그들의 행태는 싸리풀의 환각효과를 즐겼던 중세시대 마녀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이는 곧이 시대에 마녀가 복권되었다는 말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는 오늘날 대중들이 의식화 과정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의식화 과정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자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오늘날에는 그 당시의 히피문화와 같은 젊은이들의 저항문화라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삶은 더 팍팍해졌고혁명을 외치기는 더 힘들어졌다저자의 주장이 비단 히피를 까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성이 상실된 시대에서 지성을 복권하자는 뜻인 것은 알고 있다. 2001년에 타계한 저자 마빈 해리스에게는 유감이지만 미국은 현재 반지성주의의 심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우리나라가 지성의 상실로 겪고 있는 홍역은 차마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사실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만 하다죽어라 공부해놨는데 대중들은 개소리에 빠져 있고 (...) 엘리트주의를 싫어하긴 하지만 참 이런 고충은 슬픈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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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비판점도 많고주장에 의구심도 많이 들고텍스트도 전체적으로 낡았다새로운 개념을 얻어간다기보다는 기존의 상식을 재확인하고 원론적인 개념들을 좀 더 고찰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무엇보다도 이 책의 강조점은 저자의 메시지다문화인류학은 원시부족들로부터 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인류 관습의 기원들을 실제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찬란한 현대문명이랄 것이 실은 원시문명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걸 밝힌다우리네 문명이 발전과 진보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허상을 폭로하는 발언들은 언제든 존중할만 하며오만한 문명우열론자들의 콧대는 몇 번이고 꺾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책의 호불호와는 또 별개로 저자는 굉장한 지적 탐구욕을 가진 사람이며이러한 부분이 특히 잘 드러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구절을 세 개 정도 인용하고자 한다정치학경제학사회학심리학 등을 다루는 대중서의 논지들은 그것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떤 주장에 복무하느냐에 따라 자기계발서가 되기도 하고고전이 되기도 한다나는 저자의 메시지를 근거로 이 책이 충분히 후자에 수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 남성 쇼비니즘적 생활양식이 얼마만큼 빨리 퇴조할 것인가그리고 남녀평등의 궁극적인 전망들은 무엇일 것인가 등은 인습적인 경찰력과 군사력을 얼마만큼 빨리 배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 가능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찰력과 군사력을 배제한다는 의미가육체적인 힘에 의존하는 전투술을 배제하고 보다 개선된 전투술을 개발해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되고경찰력과 군사력 그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희망하자순수한 성혁명(性革命)의 결과가 핵미사일 부대장이나 핵부대 사령관직을 남성 아닌 여성이 장악하는 것이 된다면우리는 원시 야노마모족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 별로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p. 107



원주민들의 값싼 노동력과 원주민들의 땅을 착취하지 않았다면식민지 세력들이 그렇게 부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원주민들이 산업국가의 생산화물을 살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그 생산물들을 소유할 자격이 있었다화물신화는 이 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그들의 설명방식이었다. -p. 147



나는 도덕적 판단기초의 붕괴 없이 객관적 지식을 부인하기란 아주 불가능한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합리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알 수 없다면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범인과 피해자부자와 가난한 자착취자와 피착취자 등을 구별할 수 없다면우리는 모든 도덕적 판단에 대한 회의론을 지지해야 하든지아니면 종교재판의 주장에 찬성하여 누군가의 꿈 속에서 한 일까지 어떤 사람에게 그 책임을 부과하든지 해야 한다.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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