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거장들
박찬국 지음 / 이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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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년만에 읽었다. 원래는 대학교 1학년 2학기 교양수업 때 쓰던 교재였고, 한 번 붙잡은 책은 어떻게든 끝까지 읽어낸다는 내 쓸 데 없는 강박 때문에 꾸역꾸역 다 읽게 되었다. (그땐 수업에서 니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푸코를 다뤘고, 그마저도 진도에 쫓겨서 푸코는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우선 현대철학 입문서로서 그렇게 좋은 책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몇몇 철학자들의 경우에는 저자의 '애정어린' 서술로 인해 비교적 일반적이지 않은 첫인상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 사실 철학 입문서가 그렇게 막 이것저것 골라 읽어야 할 부류의 텍스트도 아니고, 요즘에는 나무위키 정도면 어느 정도의 겉핥기는 가능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철학사가 아닌 이상 근래 '유용한' 입문서들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 다만 서울대 교수 박찬국 씨의 지적 권위를 두고 보았을 때, 그 결과물이 심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급적 주석을 달지 않았다고는 했으나 그 때문에 구술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진 감이 있고, 중언부언, 동어반복의 문제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읽어낸 책이다. 나의 대견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맑스,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에 대해 대체로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후술하겠지만 꼭 모든 인물들이 평이하게 서술된 건 아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보다 심원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들이 두 권 씩 소개된다. 소개된 책들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 코가 석 자이기도 하고, 알라딘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e북 '철학-책'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쪽이 더 마음이 간다.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라고들 하긴 하지만)




우선 맑스의 경우는 맑스 사상의 축을 이루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함께 계급대립, 소외론 등의 개념을 어느 정도 적당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주로 근대 자유주의 체제와의 비교를 통해 사회주의의 강점과 한계를 적어내는 식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마지막 단락에 가서 맑스 이론을 전면 비판하는데 힘을 쓰고 있는데, 이는 이 책에서 행해진 거의 유일한 저자 단위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체주의는 천국을 모방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다.'라는 콜라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맑스가 실패했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주지했다시피 이는 저자의 주의주장이라는 점에서 굳이 다 수용할 필요는 없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의 경우는 비교적 저자의 목소리가 많이 개입된다. 먼저 키르케고르는, 초반부에 '내가 천재라고 생각한 유일한 철학자가 키르케고르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저자의 아주 주관적이고 '애정어린' 기술이 이어질 것임이 예고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듯이 나는 종교적 문제를 다루는 작가이며, 나의 모든 저술 활동은 그리스도교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라는 그의 저작의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내용들로 드러난다. 분명히 그는 실존철학의 비조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은 철학자임이 분명하지만, 어째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식의 중언부언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완전 예수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이 비단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그 내용은 키르케고르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다.


니체의 경우는 특히 더 불만스럽다. 니체 자체가 워낙 다의적인 해석을 야기하는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그 아포리즘 문체 특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필요가 있는 인물인데, 그런 부분에서의 인용이 몹시 부족했다. 단지 '신의 죽음'을 시작으로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를 통해 니체가 니힐리즘을 극복하려 했던 철학자라는 걸 일관적으로 주장할 뿐이다. 근데 그러면서도 초인(Übermensch)이라는 단어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더러 초기 주저 '비극의 탄생'의 내용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 참으로 일관성에 가려진 비극이다. 더구나 자주 인용되고 있는 '힘에의 의지'는 그의 여동생이 집필한 '위작'인데, 이는 자꾸 서술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하이데거의 경우는 그 어렵다는 존재론에 대한 일반적인 요약-기술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후기 사상에 집중함으로써 하이데거를 거의 자연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 물론 하이데거의 철학이 워낙 포괄적이고 방대한 기조인 것도 있지만, 니체와 마찬가지로 일의적인 서술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감이었다. 



이후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의 경우는 대체로 평이하게 잘 서술했다. (실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다) 하버마스의 경우는 더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저술인데, 이게 찰스 샌더스 퍼스의 실증주의 비판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관심'과 빌헬름 딜타이의 사회과학 연구에서 비롯된 '실천적 관심'을 서술하는 대목에 약간의 비약이 있어서 그렇다. 하버마스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푸코의 경우는 나쁘지 않았다. 초기 광기의 역사에서 말과 사물, 중기 감시와 처벌, 후기 성의 역사를 중심으로 평이한 서술이 이어진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전기 '논리-철학 논고'와 후기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평이하게 쓰여졌고, 칼 포퍼 또한 그의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두 축을 중심으로 잘 쓰여졌다.



막상 읽을 때는 '뭐 이런 식으로 써 놓았지' 싶을 정도로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밀린 책 다 읽어내는 게 꽤 큰 성취감을 준다.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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