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건 페친(페북 끊었지만ㅜ) W의 포스팅 때문이다. 그는 '쉬운 글쓰기'를 모토로 강의를 연다는 '모'의 포스팅을 공유하며 글쓰기에 대한 자각도 없는 작자라고 비난했었다. 그에 따르면, 글에는 저자의 치열한 고뇌와 무게감이 담겨 있는 것이고 무턱대고 쉬운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주체성의 상실을 담보하는 짓거리에 해당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모의 강연이 약팔이라고 느껴지긴 했지만, '자신을 버리는'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점은 동의하고 있었는지라 그냥 모의 유명 에세이를 한 권 읽기로 했다. 최소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진정성(sincerity)의 승리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의 서문에는 본 저서가 암울한 현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적혀 있다. 물론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온전히 다 기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해야겠지만, 오늘날 대학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발빠르게 적응한 비인간적, 몰인간적 기관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학문과 지성의 총체라는 수사는 허울 뿐이고 실상은 그를 구실로 한 착취와 열악한 근무환경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1부 '대학원생의 시간'은 참 암울하기 그지없는 내용들 투성이지만, 전공을 살리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쩌면 책에 나왔던 것보다 훨씬 더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문득 영어입시강사 이명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삼 3월 무렵에 이명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모토로 수험생들의 공부를 닥달했는데, 그것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지치는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서 대학에 가라는 맥락이었다.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막막하고 팍팍한 현실을 살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기록하며 매순간 거대한 신자유주의 구조라는 괴물을 직시하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득달같이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과업을 달성하는 것보다는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에 더 어울리는 말이라고 느껴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대학원 생활 초기에는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울화를 주변 동료나 교수에게 투사했다고 하지만, 지방시를 연재하면서부터는 모두가 구조의 피해자들이고, 그들을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사회복무요원 일을 하면서 병역의 의무라는 이름 하에 가해지는 부조리를 명증히 직시하는 대신에 종종 짜증을 내고 같은 직장의 구성원들에게 그 감정을 투사하곤 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그들 역시 구조의 피해자라는 점을 돌아보게 되는 건 항상 짜증을 내고 난 다음의 일이다. 관리국가가 무서운 점은 구성원들을 분열시켜서 자신들에게 대항할 연대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한다. 팍팍하고 암울한 삶 너머에는 인간을 좀먹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거대구조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다.


 

2부 '시간강사의 시간'은 1부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부는 '부조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이라는 주제였지만, 2부의 그것은 주로 '노동하는 삶에서 찾아나가는 행복'이었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배운 인문학, 좋은 강의자로서의 덕목, 주변의 사회문제로부터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통찰하는 태도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말에 담긴 함의를 분석한 건 무릎을 탁 칠 만큼 기억에 남는데, 신자유주의 체제가 노동자를 외화(外化)하는 한편, "갑≥갑의 소유물>을"이라는 도식을 공고히했다는 근거라는 것이다. 이를 보고 나는 정말이지 페북의 말로만 떠들어대는 딜레땅뜨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가 무식하다고 치부하는 문법과 신조어에는 비난할 수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는 탓이었다. 그래서 책을 보다 보면 그가 왜 '쉬운 글쓰기'를 고집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구조에 맞서는 '저항적 지식'의 담론을 키우려는 데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세상이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삶의 궤적을 보노라면 그는 오랜 기간 땅 속에서 지내다가 볕을 보게 된 매미처럼 시간제 강사라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의미와 행복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노력'이 그렇게 훈훈할 수가 없었다. 그래, 우리는 결국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이구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더 괴롭겠지만 내가 찾아나가는 행복들은 많은 의미들로 다가오겠지...라고 느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냥 어디어디에 연재되는 '지방시'라는 글이 있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그마저도 그렇게 호의적인 시선이 뒤따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 제목이 '어디어디 학교의 강사'가 아닌 것도, 저자가 익명인 것도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위계에 저항하기 위함이라는데, 과연 사람들은 저자의 약력과 지위만 보고 그것을 까내리는 데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저자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에게는 다른 냉소적인 지식인들에게서 보여지지 않는 어떤 '진심'이라는 게 있음이 느껴진다. 지방시는 2년 전에 나온 책이고, 예전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긴 했지만 갓 헬조선 담론이 불거지기 시작하던 때 쓰인 글이라 그런지 문제의식은 더욱 명증하다. 에필로그에는 사회학자 오찬호씨의 '진격의 대학교'가 인용되고 있었는데, 더불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과학 관련 도서는 무서운 속도로 신간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아무렴 구조적인 문제의식에 접근하는 건데 상관이 있으려나 싶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을 보면서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있다. 나중에 내가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이 됐을 때, 누가 나에게 어떻게 방황을 멈추게 됐나, 자기만의 바운더리를 어떻게 만들었나 라고 물어보면 나는 대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인데, 나 역시도 나의 방황과 고생을 한낱 젊은 날의 미담 정도로 퉁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느꼈다. 고난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사유하는 인간이 된다. 어쩌면 축복이라면 축복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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