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 텍스트(1974년 초판)인 것을 감안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독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번역도 꽤나 고풍스럽다오늘날과 부합하지 않는 사실관계들을 필터링해야 한다저자는 (당시 상황에서오늘날 문화인류학 연구가 실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학적 문화인류학 대중서'.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사랑의 기술'과 마찬가지로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낡은 텍스트지만그 '메시지'는 충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1장에서 저자는 힌두교의 암소숭배 사상이 서구/근대중심주의적으로 오독되고 있음을 지적한다암소숭배는 인도의 경제를 해치는 주범이 아니라오히려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교리(doctrin)적 시스템이라는 것이다인도인들은 암소를 그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이는 서구의 공장식 소 사육체제가 비할 바 못 된다는 것이다서구는 막대한 양의 쇠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곡물을 들이는 데 반해 인도의 암소들은 인간의 식량생산 후에 남은 부산물을 바탕으로 원료제공농기구유지제공가죽제공우육제공 등 최고의 효율을 낸다는 것이다그러면서 페이지 말미에 "여러분이 진짜 숭배받는 암소를 보고 싶다면밖에 나가 여러분의 자가용 승용차를 바라보면 될 것이다."라고 일갈한다현대문명의 이면을 폭로하고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중동 일대를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했던 무슬림들에게는 돼지가 비효율적 자원이었기 때문에 금기되었다반면뉴기니의 마링 족에게는 돼지가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숭배된다고 한다그들은 보통 10년에 걸쳐 돼지를 사육하고카이코라는 축제를 열어 길렀던 돼지를 소비한다이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축제인데이때 승리 기원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의 영토에 주술적 전투석을 게시한다이윽고 그들이 다시 돼지를 기르기 시작하는 때는 전쟁이 끝나고 승리했을 때다돼지사육-카이코-주술적 전투석-전쟁이러한 사이클을 통해 마링족은 단백질을 보충하며 동시에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다여기서 전쟁은 인구압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그것은 전사자로 인한 인구감소 때문이 아니라(그건 한 세대 정도면 회복된다전쟁이 경작지 회복과 여아사망률 증가에 관여하기 때문이다부족 간 전쟁을 치루고 나면 패배한 쪽의 영토는 농경지로 쓰지 않고 방치해두는데이게 화전이 주업이 되는 뉴기니의 척박한 토양에서의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또한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남성 전사를 길러낸다는 이유로 여아들이 희생된다고 하는데여기서 저자는 남성이 식량소비의 관점에서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신랄하게 깐다남성이란 족속은 일도 안 하고유지비도 많이 드는요컨대 전쟁하는 돼지(...)라는 소리다거기에 대고 남성인구가 늘어나면 유아살해 뿐만이 아니라 여성차별이 빈번해진다고 하는데일례로 남성의 전투력을 고도로 증강시키기 위해 그들의 '성적 욕구'를 박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가장 용맹한 전사에게는 물적 보상 뿐만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보상함으로써 그들의 야만성을 증강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인용하면서도 그걸 유사과학이라고 깐다...ㅎㄷㄷ좌우간 상술한 모든 것들은 원시사회가 전쟁을 위해 남성들을 구태여 유지함으로써 치루는 비용이라고 하겠다대충 초반부의 맥락은 이런 식인데각 장의 말미에는 이렇듯 미개해 보이는 원시사회가 실상 우리가 찬란해 마지않는 서구문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들이 꾸준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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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은 화물신앙에 관한 7장부터다뉴기니에서는 미국일본호주 등 선진국들의 배나 비행기가 원주민에게 화물을 투하해 온 역사가 있다이 화물은 의류통조림군수품콜라위스키 등으로서구문명에서는 흔해빠진 공산품에 지나지 않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절대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 문명적 갭이었다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이어졌고결국 화물을 숭배하게 되었다는 것이 화물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그런데 이 화물 숭배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뉴기니에 포교를 해 왔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서구열강은 원주민들이 화물의 수혜를 입는 것에 대해서는 하등 관심이 없었으며단지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는 데만 주력했다고 한다하지만 원주민들은 메시아를 화물을 가져다 줄 조상들의 영혼으로 이해했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같은 구절들을 조상들을 숭배하라그러면 너와 네 집이 화물을 얻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했다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서구 기독교의 기원과 메시아니즘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시작하는데그게 8장부터다저자가 1장부터 꾸준히 고수했던 서구문명비판의 견지를 원시신앙과 기독교와의 유비를 통해 보다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유비는 그 목적 자체로는 그럭저럭 봐 줄만 했지만그것을 '실증'함에 있어서 오히려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 부분들이 있었다.

 

 

8장에서 저자는 메시아니즘이 강대국의 착취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탈취하기 위한 약소국의 저항논리였다고 설명한다민족을 결집하고투쟁전선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유용히 쓰인 교리였다는 것이다또한 8장의 말미에서 그것이 그들로서는 최선의 적응적’ 메커니즘이었다고 덧붙인다하지만 그나마 어쩌다 실재적인 강화물을 얻을 수 있었던 뉴기니 부족에 비해 천 년 전에 세워졌던(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망해 없어졌던이스라엘 왕국의 재림 하나만을 보고 전투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는 게 적응적’ 선택이었다면 아귀가 좀 맞지 않는다또한 강화행동(화물숭배)을 하고도 별다른 인명피해를 입지 않았던 화물신앙에 비해 유대민족은 수 세기에 걸친 제노사이드를 겪어야 했다본문에서는 뉴기니와 서구열강들의 구도에 비해 유대민족과 로마제국의 구도가 훨씬 맞서 싸울만한 배경이었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숱하게 죽어나갔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을 죽음으로 내몬 메시아니즘 원리를 폐기하지 않았다따라서 그들이 당시로서 최선의 적응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면그것은 실재적인 환경이나 강화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종교의 메커니즘 때문일 것이다이로써 저자 마빈 해리스가 그토록 혐오하던 의식화 과정’, 즉 관념론이 한 민족의 적응에 크게 기여했다는 아이러니가 빚어진다그 때문에 유대인들의 신념체계는 실재적인 강화물이 뒤따르지 않았더라도 왜 오랜 시간 구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증이 요구되는 것이다아울러이 부분은 그 종교의 분파로 태어난 자식들이(기독교이슬람교오늘날에도 지구촌을 크게 뒤흔들고 있는 축이라는 데서 더 설득력을 얻는다마빈 해리스는 자신의 유물론적계보학적 관점으로 메시아니즘을 설명하려다가 역으로 인간의 신념체계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어쨌든 '의식화라든지 '신화라든지 하는 부분들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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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니즘 논의가 끝나고, 10장과 11장은 마녀사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는데전체적으로 흥미로웠다저자는 마녀사냥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며, 17세기에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계기는 그 당시의 종교개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한다이어 그것은 민중들을 서로 의심하고 분열케 하는지배계급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복무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요컨대 당시의 기득권(교회)은 자신들에게 향하는 저항의 총부리를 꺾기 위해 마녀사냥을 조장한 것이다이러한 결론만 놓고 보면 워낙에 당연한 얘기라 그냥 넘어갔지만오늘날에도 '분열의 통치'와 의식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더 고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이 기원이 무척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할만하다대단한 점은 저자가 이걸 계보학적으로 하나하나 파헤쳐냈다는 것인데본문을 보면 어느 어느 구절에서 따왔다는 내용들인용한 문헌들이 참 많다역시 아는 게 많아야 교수를 해먹는다고 느꼈다. (...)

 


마지막으로 저자는 12장과 13장에서 당시(1970년대유행했던 히피문화(본문에서는 반문화로 번역되어 있다)를 비판한다그들은 LSD를 복용하고록 음악을 듣고자연주의와 반전을 주장하지만 이것이 정신승리로만 이어질 뿐이고 실상 사회개혁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는 것이다특히 LSD를 투약하는 그들의 행태는 싸리풀의 환각효과를 즐겼던 중세시대 마녀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이는 곧이 시대에 마녀가 복권되었다는 말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는 오늘날 대중들이 의식화 과정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의식화 과정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자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오늘날에는 그 당시의 히피문화와 같은 젊은이들의 저항문화라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삶은 더 팍팍해졌고혁명을 외치기는 더 힘들어졌다저자의 주장이 비단 히피를 까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성이 상실된 시대에서 지성을 복권하자는 뜻인 것은 알고 있다. 2001년에 타계한 저자 마빈 해리스에게는 유감이지만 미국은 현재 반지성주의의 심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우리나라가 지성의 상실로 겪고 있는 홍역은 차마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사실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만 하다죽어라 공부해놨는데 대중들은 개소리에 빠져 있고 (...) 엘리트주의를 싫어하긴 하지만 참 이런 고충은 슬픈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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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비판점도 많고주장에 의구심도 많이 들고텍스트도 전체적으로 낡았다새로운 개념을 얻어간다기보다는 기존의 상식을 재확인하고 원론적인 개념들을 좀 더 고찰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무엇보다도 이 책의 강조점은 저자의 메시지다문화인류학은 원시부족들로부터 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인류 관습의 기원들을 실제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찬란한 현대문명이랄 것이 실은 원시문명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걸 밝힌다우리네 문명이 발전과 진보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허상을 폭로하는 발언들은 언제든 존중할만 하며오만한 문명우열론자들의 콧대는 몇 번이고 꺾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책의 호불호와는 또 별개로 저자는 굉장한 지적 탐구욕을 가진 사람이며이러한 부분이 특히 잘 드러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구절을 세 개 정도 인용하고자 한다정치학경제학사회학심리학 등을 다루는 대중서의 논지들은 그것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떤 주장에 복무하느냐에 따라 자기계발서가 되기도 하고고전이 되기도 한다나는 저자의 메시지를 근거로 이 책이 충분히 후자에 수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 남성 쇼비니즘적 생활양식이 얼마만큼 빨리 퇴조할 것인가그리고 남녀평등의 궁극적인 전망들은 무엇일 것인가 등은 인습적인 경찰력과 군사력을 얼마만큼 빨리 배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 가능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찰력과 군사력을 배제한다는 의미가육체적인 힘에 의존하는 전투술을 배제하고 보다 개선된 전투술을 개발해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되고경찰력과 군사력 그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희망하자순수한 성혁명(性革命)의 결과가 핵미사일 부대장이나 핵부대 사령관직을 남성 아닌 여성이 장악하는 것이 된다면우리는 원시 야노마모족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 별로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p. 107



원주민들의 값싼 노동력과 원주민들의 땅을 착취하지 않았다면식민지 세력들이 그렇게 부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원주민들이 산업국가의 생산화물을 살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그 생산물들을 소유할 자격이 있었다화물신화는 이 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그들의 설명방식이었다. -p. 147



나는 도덕적 판단기초의 붕괴 없이 객관적 지식을 부인하기란 아주 불가능한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합리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알 수 없다면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범인과 피해자부자와 가난한 자착취자와 피착취자 등을 구별할 수 없다면우리는 모든 도덕적 판단에 대한 회의론을 지지해야 하든지아니면 종교재판의 주장에 찬성하여 누군가의 꿈 속에서 한 일까지 어떤 사람에게 그 책임을 부과하든지 해야 한다.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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