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거장들
박찬국 지음 / 이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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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년만에 읽었다. 원래는 대학교 1학년 2학기 교양수업 때 쓰던 교재였고, 한 번 붙잡은 책은 어떻게든 끝까지 읽어낸다는 내 쓸 데 없는 강박 때문에 꾸역꾸역 다 읽게 되었다. (그땐 수업에서 니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푸코를 다뤘고, 그마저도 진도에 쫓겨서 푸코는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우선 현대철학 입문서로서 그렇게 좋은 책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몇몇 철학자들의 경우에는 저자의 '애정어린' 서술로 인해 비교적 일반적이지 않은 첫인상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 사실 철학 입문서가 그렇게 막 이것저것 골라 읽어야 할 부류의 텍스트도 아니고, 요즘에는 나무위키 정도면 어느 정도의 겉핥기는 가능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철학사가 아닌 이상 근래 '유용한' 입문서들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 다만 서울대 교수 박찬국 씨의 지적 권위를 두고 보았을 때, 그 결과물이 심히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급적 주석을 달지 않았다고는 했으나 그 때문에 구술이 전체적으로 산만해진 감이 있고, 중언부언, 동어반복의 문제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읽어낸 책이다. 나의 대견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맑스,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에 대해 대체로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후술하겠지만 꼭 모든 인물들이 평이하게 서술된 건 아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보다 심원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들이 두 권 씩 소개된다. 소개된 책들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 코가 석 자이기도 하고, 알라딘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e북 '철학-책'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 쪽이 더 마음이 간다.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라고들 하긴 하지만)




우선 맑스의 경우는 맑스 사상의 축을 이루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함께 계급대립, 소외론 등의 개념을 어느 정도 적당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주로 근대 자유주의 체제와의 비교를 통해 사회주의의 강점과 한계를 적어내는 식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마지막 단락에 가서 맑스 이론을 전면 비판하는데 힘을 쓰고 있는데, 이는 이 책에서 행해진 거의 유일한 저자 단위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체주의는 천국을 모방하려는 절망적인 시도다.'라는 콜라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맑스가 실패했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주지했다시피 이는 저자의 주의주장이라는 점에서 굳이 다 수용할 필요는 없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의 경우는 비교적 저자의 목소리가 많이 개입된다. 먼저 키르케고르는, 초반부에 '내가 천재라고 생각한 유일한 철학자가 키르케고르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저자의 아주 주관적이고 '애정어린' 기술이 이어질 것임이 예고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에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듯이 나는 종교적 문제를 다루는 작가이며, 나의 모든 저술 활동은 그리스도교와 연관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라는 그의 저작의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내용들로 드러난다. 분명히 그는 실존철학의 비조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은 철학자임이 분명하지만, 어째 결국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식의 중언부언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완전 예수쟁이로 만들어 버렸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이 비단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그 내용은 키르케고르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다.


니체의 경우는 특히 더 불만스럽다. 니체 자체가 워낙 다의적인 해석을 야기하는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그 아포리즘 문체 특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필요가 있는 인물인데, 그런 부분에서의 인용이 몹시 부족했다. 단지 '신의 죽음'을 시작으로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를 통해 니체가 니힐리즘을 극복하려 했던 철학자라는 걸 일관적으로 주장할 뿐이다. 근데 그러면서도 초인(Übermensch)이라는 단어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을 뿐더러 초기 주저 '비극의 탄생'의 내용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 참으로 일관성에 가려진 비극이다. 더구나 자주 인용되고 있는 '힘에의 의지'는 그의 여동생이 집필한 '위작'인데, 이는 자꾸 서술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하이데거의 경우는 그 어렵다는 존재론에 대한 일반적인 요약-기술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후기 사상에 집중함으로써 하이데거를 거의 자연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 물론 하이데거의 철학이 워낙 포괄적이고 방대한 기조인 것도 있지만, 니체와 마찬가지로 일의적인 서술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감이었다. 



이후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의 경우는 대체로 평이하게 잘 서술했다. (실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도 있다) 하버마스의 경우는 더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저술인데, 이게 찰스 샌더스 퍼스의 실증주의 비판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관심'과 빌헬름 딜타이의 사회과학 연구에서 비롯된 '실천적 관심'을 서술하는 대목에 약간의 비약이 있어서 그렇다. 하버마스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부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푸코의 경우는 나쁘지 않았다. 초기 광기의 역사에서 말과 사물, 중기 감시와 처벌, 후기 성의 역사를 중심으로 평이한 서술이 이어진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전기 '논리-철학 논고'와 후기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평이하게 쓰여졌고, 칼 포퍼 또한 그의 과학철학과 사회철학 두 축을 중심으로 잘 쓰여졌다.



막상 읽을 때는 '뭐 이런 식으로 써 놓았지' 싶을 정도로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밀린 책 다 읽어내는 게 꽤 큰 성취감을 준다. 그게 좋든 나쁘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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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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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텍스트(1974년 초판)인 것을 감안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독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번역도 꽤나 고풍스럽다오늘날과 부합하지 않는 사실관계들을 필터링해야 한다저자는 (당시 상황에서오늘날 문화인류학 연구가 실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학적 문화인류학 대중서'.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사랑의 기술'과 마찬가지로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낡은 텍스트지만그 '메시지'는 충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1장에서 저자는 힌두교의 암소숭배 사상이 서구/근대중심주의적으로 오독되고 있음을 지적한다암소숭배는 인도의 경제를 해치는 주범이 아니라오히려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교리(doctrin)적 시스템이라는 것이다인도인들은 암소를 그 누구보다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이는 서구의 공장식 소 사육체제가 비할 바 못 된다는 것이다서구는 막대한 양의 쇠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곡물을 들이는 데 반해 인도의 암소들은 인간의 식량생산 후에 남은 부산물을 바탕으로 원료제공농기구유지제공가죽제공우육제공 등 최고의 효율을 낸다는 것이다그러면서 페이지 말미에 "여러분이 진짜 숭배받는 암소를 보고 싶다면밖에 나가 여러분의 자가용 승용차를 바라보면 될 것이다."라고 일갈한다현대문명의 이면을 폭로하고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중동 일대를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했던 무슬림들에게는 돼지가 비효율적 자원이었기 때문에 금기되었다반면뉴기니의 마링 족에게는 돼지가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숭배된다고 한다그들은 보통 10년에 걸쳐 돼지를 사육하고카이코라는 축제를 열어 길렀던 돼지를 소비한다이는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축제인데이때 승리 기원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의 영토에 주술적 전투석을 게시한다이윽고 그들이 다시 돼지를 기르기 시작하는 때는 전쟁이 끝나고 승리했을 때다돼지사육-카이코-주술적 전투석-전쟁이러한 사이클을 통해 마링족은 단백질을 보충하며 동시에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다여기서 전쟁은 인구압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그것은 전사자로 인한 인구감소 때문이 아니라(그건 한 세대 정도면 회복된다전쟁이 경작지 회복과 여아사망률 증가에 관여하기 때문이다부족 간 전쟁을 치루고 나면 패배한 쪽의 영토는 농경지로 쓰지 않고 방치해두는데이게 화전이 주업이 되는 뉴기니의 척박한 토양에서의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또한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남성 전사를 길러낸다는 이유로 여아들이 희생된다고 하는데여기서 저자는 남성이 식량소비의 관점에서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신랄하게 깐다남성이란 족속은 일도 안 하고유지비도 많이 드는요컨대 전쟁하는 돼지(...)라는 소리다거기에 대고 남성인구가 늘어나면 유아살해 뿐만이 아니라 여성차별이 빈번해진다고 하는데일례로 남성의 전투력을 고도로 증강시키기 위해 그들의 '성적 욕구'를 박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가장 용맹한 전사에게는 물적 보상 뿐만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보상함으로써 그들의 야만성을 증강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인용하면서도 그걸 유사과학이라고 깐다...ㅎㄷㄷ좌우간 상술한 모든 것들은 원시사회가 전쟁을 위해 남성들을 구태여 유지함으로써 치루는 비용이라고 하겠다대충 초반부의 맥락은 이런 식인데각 장의 말미에는 이렇듯 미개해 보이는 원시사회가 실상 우리가 찬란해 마지않는 서구문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들이 꾸준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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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은 화물신앙에 관한 7장부터다뉴기니에서는 미국일본호주 등 선진국들의 배나 비행기가 원주민에게 화물을 투하해 온 역사가 있다이 화물은 의류통조림군수품콜라위스키 등으로서구문명에서는 흔해빠진 공산품에 지나지 않지만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절대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 문명적 갭이었다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이어졌고결국 화물을 숭배하게 되었다는 것이 화물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그런데 이 화물 숭배는 서양의 선교사들이 뉴기니에 포교를 해 왔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서구열강은 원주민들이 화물의 수혜를 입는 것에 대해서는 하등 관심이 없었으며단지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는 데만 주력했다고 한다하지만 원주민들은 메시아를 화물을 가져다 줄 조상들의 영혼으로 이해했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같은 구절들을 조상들을 숭배하라그러면 너와 네 집이 화물을 얻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해했다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서구 기독교의 기원과 메시아니즘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시작하는데그게 8장부터다저자가 1장부터 꾸준히 고수했던 서구문명비판의 견지를 원시신앙과 기독교와의 유비를 통해 보다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유비는 그 목적 자체로는 그럭저럭 봐 줄만 했지만그것을 '실증'함에 있어서 오히려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 부분들이 있었다.

 

 

8장에서 저자는 메시아니즘이 강대국의 착취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탈취하기 위한 약소국의 저항논리였다고 설명한다민족을 결집하고투쟁전선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유용히 쓰인 교리였다는 것이다또한 8장의 말미에서 그것이 그들로서는 최선의 적응적’ 메커니즘이었다고 덧붙인다하지만 그나마 어쩌다 실재적인 강화물을 얻을 수 있었던 뉴기니 부족에 비해 천 년 전에 세워졌던(그마저도 오래지 않아 망해 없어졌던이스라엘 왕국의 재림 하나만을 보고 전투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는 게 적응적’ 선택이었다면 아귀가 좀 맞지 않는다또한 강화행동(화물숭배)을 하고도 별다른 인명피해를 입지 않았던 화물신앙에 비해 유대민족은 수 세기에 걸친 제노사이드를 겪어야 했다본문에서는 뉴기니와 서구열강들의 구도에 비해 유대민족과 로마제국의 구도가 훨씬 맞서 싸울만한 배경이었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숱하게 죽어나갔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을 죽음으로 내몬 메시아니즘 원리를 폐기하지 않았다따라서 그들이 당시로서 최선의 적응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면그것은 실재적인 환경이나 강화물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종교의 메커니즘 때문일 것이다이로써 저자 마빈 해리스가 그토록 혐오하던 의식화 과정’, 즉 관념론이 한 민족의 적응에 크게 기여했다는 아이러니가 빚어진다그 때문에 유대인들의 신념체계는 실재적인 강화물이 뒤따르지 않았더라도 왜 오랜 시간 구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논증이 요구되는 것이다아울러이 부분은 그 종교의 분파로 태어난 자식들이(기독교이슬람교오늘날에도 지구촌을 크게 뒤흔들고 있는 축이라는 데서 더 설득력을 얻는다마빈 해리스는 자신의 유물론적계보학적 관점으로 메시아니즘을 설명하려다가 역으로 인간의 신념체계에 대한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어쨌든 '의식화라든지 '신화라든지 하는 부분들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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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니즘 논의가 끝나고, 10장과 11장은 마녀사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는데전체적으로 흥미로웠다저자는 마녀사냥의 기원에 대해 언급하며, 17세기에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계기는 그 당시의 종교개혁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한다이어 그것은 민중들을 서로 의심하고 분열케 하는지배계급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복무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요컨대 당시의 기득권(교회)은 자신들에게 향하는 저항의 총부리를 꺾기 위해 마녀사냥을 조장한 것이다이러한 결론만 놓고 보면 워낙에 당연한 얘기라 그냥 넘어갔지만오늘날에도 '분열의 통치'와 의식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더 고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이 기원이 무척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할만하다대단한 점은 저자가 이걸 계보학적으로 하나하나 파헤쳐냈다는 것인데본문을 보면 어느 어느 구절에서 따왔다는 내용들인용한 문헌들이 참 많다역시 아는 게 많아야 교수를 해먹는다고 느꼈다. (...)

 


마지막으로 저자는 12장과 13장에서 당시(1970년대유행했던 히피문화(본문에서는 반문화로 번역되어 있다)를 비판한다그들은 LSD를 복용하고록 음악을 듣고자연주의와 반전을 주장하지만 이것이 정신승리로만 이어질 뿐이고 실상 사회개혁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는 것이다특히 LSD를 투약하는 그들의 행태는 싸리풀의 환각효과를 즐겼던 중세시대 마녀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이는 곧이 시대에 마녀가 복권되었다는 말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는 오늘날 대중들이 의식화 과정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의식화 과정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자는 저자의 주장과는 별개로 오늘날에는 그 당시의 히피문화와 같은 젊은이들의 저항문화라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삶은 더 팍팍해졌고혁명을 외치기는 더 힘들어졌다저자의 주장이 비단 히피를 까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성이 상실된 시대에서 지성을 복권하자는 뜻인 것은 알고 있다. 2001년에 타계한 저자 마빈 해리스에게는 유감이지만 미국은 현재 반지성주의의 심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우리나라가 지성의 상실로 겪고 있는 홍역은 차마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사실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만 하다죽어라 공부해놨는데 대중들은 개소리에 빠져 있고 (...) 엘리트주의를 싫어하긴 하지만 참 이런 고충은 슬픈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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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비판점도 많고주장에 의구심도 많이 들고텍스트도 전체적으로 낡았다새로운 개념을 얻어간다기보다는 기존의 상식을 재확인하고 원론적인 개념들을 좀 더 고찰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무엇보다도 이 책의 강조점은 저자의 메시지다문화인류학은 원시부족들로부터 현대문명에 이르기까지 인류 관습의 기원들을 실제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찬란한 현대문명이랄 것이 실은 원시문명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걸 밝힌다우리네 문명이 발전과 진보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허상을 폭로하는 발언들은 언제든 존중할만 하며오만한 문명우열론자들의 콧대는 몇 번이고 꺾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책의 호불호와는 또 별개로 저자는 굉장한 지적 탐구욕을 가진 사람이며이러한 부분이 특히 잘 드러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구절을 세 개 정도 인용하고자 한다정치학경제학사회학심리학 등을 다루는 대중서의 논지들은 그것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떤 주장에 복무하느냐에 따라 자기계발서가 되기도 하고고전이 되기도 한다나는 저자의 메시지를 근거로 이 책이 충분히 후자에 수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 남성 쇼비니즘적 생활양식이 얼마만큼 빨리 퇴조할 것인가그리고 남녀평등의 궁극적인 전망들은 무엇일 것인가 등은 인습적인 경찰력과 군사력을 얼마만큼 빨리 배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 가능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찰력과 군사력을 배제한다는 의미가육체적인 힘에 의존하는 전투술을 배제하고 보다 개선된 전투술을 개발해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되고경찰력과 군사력 그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희망하자순수한 성혁명(性革命)의 결과가 핵미사일 부대장이나 핵부대 사령관직을 남성 아닌 여성이 장악하는 것이 된다면우리는 원시 야노마모족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 별로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p. 107



원주민들의 값싼 노동력과 원주민들의 땅을 착취하지 않았다면식민지 세력들이 그렇게 부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원주민들이 산업국가의 생산화물을 살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그 생산물들을 소유할 자격이 있었다화물신화는 이 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그들의 설명방식이었다. -p. 147



나는 도덕적 판단기초의 붕괴 없이 객관적 지식을 부인하기란 아주 불가능한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를 합리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알 수 없다면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범인과 피해자부자와 가난한 자착취자와 피착취자 등을 구별할 수 없다면우리는 모든 도덕적 판단에 대한 회의론을 지지해야 하든지아니면 종교재판의 주장에 찬성하여 누군가의 꿈 속에서 한 일까지 어떤 사람에게 그 책임을 부과하든지 해야 한다.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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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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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을 읽고서는 자살의 종용에 맞서는 삶의 논리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이 책을 읽고는 이민의 종용에 대처할 수 있는 잔류의 논리를 고민해야 하는 게 내 몫으로 남았다. 나는 왜 여기에 남아있어야 하는가. (...) 영어공부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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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뇌 - 당신의 뇌가 정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
토르켈 클링베르그 지음, 한태영 옮김, 정갑수 감수 / 윌컴퍼니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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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과 싸움으로써 내가 꽤나 강하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책을 꾸준히 읽자고 노력했으나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를 자극하고 주의력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고. 현대인이 겪는 주의력 결핍이나 과잉행동장애는 실상 정보의 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끌린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과학 대중서적이고, 뇌, 그것도 작업기억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중립적 사실로부터 자의적으로 논지들을 배치했음을 알 수가 있다.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그거였다. 본문에서는 인간이(혹은 침팬지를 비롯한 전반 피험자가) 디지털 매체에 대해 반응했던 예만 다루고 있는데, 내가 알고 싶은 건 아날로그에 대한 반응이었던 거다. GTA를 하는 게 작업기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일면 게임을 잘 하면 책을 잘 읽을 수 있다는 비약으로 이어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고.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이 책은 내가 왜 책에 집중을 못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적어도 통제주의력의 결여라는 관점에서는 설명할 부분이 많은데, 이 책이 주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작업기억'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서의 역할이자 한계는 자잘한 정보의 습득에 있다. 이전에는 몰랐던 두뇌 가소성 개념이라든지 배웠으나 헷갈리던 두뇌의 위치라든지(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두정엽) 하는 것들 말이다.그리고 이 책이 주장하는 덕목이 '꾸준함'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듯 두뇌 역시 한계치에 가깝게 꾸준히 파야 한다고.... 그거 내가 제일 못하는 건데 슬프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스티븐 핑커 계통의 진화심리학을 깔 때랑 명상이 통제주의력에 영향을 준다는 대목이었다. 전자는 내가 답답했던 부분을 사이다처럼 해소시켜주었고, 후자는 그동안 등한시해왔던 개념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역시 괜히 하는 게 아니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대중서의 한계를 지울 수가 없었는데, 결국에는 우리가 플린 효과(시대가 변하면서 평균 아이큐가 증가하는 현상)를 통해 평균 지능이 상승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걸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작업기억 능력을 키울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낙관론과 약팔이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개념을 언급하는데, 이건 뭐 거의 전가의 보도다. 아니 그래서 작업기억을 늘리고 주어진 환경에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잘 바꾸자는 결론인데, 이게 또 약을 팔지 않으면 대중서가 아닌지라... 학자의 딜레마라고 하겠다.



정준이형이랑 대화하면서 '선순환'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다. 예컨대 게임을 만들다가 흥미를 느껴서 피드백을 받고, 실력이 늘어서 다시 게임을 만들고, 흥미를 느끼는 일련 과정들 말이다. 본문에서는 이걸 '양성 피드백'이라고 표현하는데,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효과를 본 사례가 있다고 한다. 나도 좀 받아보고 싶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이 양성 피드백이다. 


그런데 책 진짜 억지로 읽으면 탈난다. 3주 넘게 걸렸다. 별로 그럴만한 책은 아닌데, 어지간히 읽기 싫었나 보다 (...) 사실 나는 그냥 책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아 이거 봐야징ㅎㅎ' 이런 개념인데, 책은 '아.... 이거 읽어야 하는데' 개념으로 시작하니까. 그러다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재밌으면 계속 파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틀렸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나는 '내가 맞았다'는 걸 확인하는 확증편향 강화식의 책읽기보다는 '이건 아니네.' 라고 생각되는 책읽기를 더 선호한다. 후자는 어쨌든 다른 걸 파 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니까. 하, 부담을 좀 떨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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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 야생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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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849년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에세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멕시코 전쟁을 일으키고 노예 제도를 유지/고수하는 등 부당한 일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반항으로 6년 간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하룻밤 동안 감옥에 수감되는데, 이 때의 경험이 이 에세이를 만드는 데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분량은 적지만 보다시피 주옥 같은 띵언으로 점철되어 있어 후세의 마하트마 간디, 영국의 노동 운동가들, 나치 치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우리나라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과연 국가 권력에 대한 개인의, 아니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명저 중의 명저이자 고전(Classic)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작인 것이다. ... 여기까지는 상투적인 수사이고.



'공병기'라고 페친 분이 쓰는 소설이 하나 있다. 얼마 전에 거기에 수록된 비판을 하나 게시하셨는데 대저 이런 거였다.


"그는 대부분 '주장'을 하고 있어 모든 경험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험을 극적으로 판단하고 구성해 그 외 다른 요소는 일절 배제해야 했다. 가령 그는 남성들의 성욕이나 일체감 같은 것을 놀라워하거나 불쾌해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옳은 삶을 고집하는 경향에다 솔직하기까지 해서 군대를 인간에게서 삭제하려는 건지 인간성의 일부를 삭제하자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요컨대 '공병기'는 대략 소설의 형식만을 취했을 뿐, 실상 논설문 자체라는 소리인데, 형식의 투박함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사례와 주장이 전도되는' 이중성을 까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작가의 주장이나 주제의식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은 맞지만 이야기가 주장을 위해 복무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바로 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경우가 그렇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내 페친 같은 분이다. 그는 옳음(good)을 옹호하는 투사다. 아마도 철학을 했다면 대성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순수했고, 인간 세상을 사랑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자연과 사회, 늘 마주하는 이웃사람, 나아가 인류 전반. 어쩌면 그의 본심이 퇴색되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그 pc함의 추구에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다 아는 소릴 왜?' '그래, 잘났다. 재수 없는 새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같은 범인(凡人)이 그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가 선민사상에 경도되어 있다고 볼 것도 없는 게 그는 <월든>에서 보여지듯 홀로 외로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이 점을 한 번만 더 숙고한다면 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물론 그래도 아니 꼬운 사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정의를 추구한다는 게 힘들어진 세상이다. 아니, 정의를 추구한다고 하면 대체 그것이 무엇에 대한 정의인지, 추구한다는 그 자신은 불의로부터 무결한지 쉼 없이 검증받게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할 수 있는 인본적 잣대가 존재할 때,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불의가 존재할 때, 제도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침탈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 그는 끊임 없이 재평가받아야 되는 인물이 아닐까.



참 좋은 말로 마무리 했다. 우리는 결국 한 인간의 '순수함'과 '진심'을 보고 나아가야 하니까. 그 형식은 어쩌면 둘째 문제다. 소로우는 그런 인물이다. 어쩌면 사람사는세상이니 나라다운나라니 좋은 세상에서 잘 살아보자는 인간 심리의 근저에는 크든 작든 순수한 소로우가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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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다른 네 편, 돼지 잡아들이기, 가을의 빛깔들, 한 소나무의 죽음, 계절 속의 삶, 야생 사과까지 다 읽었다. 영문학도스러운 시적표현과 <월든>의 주요 문장으로(이건 고도의 마케팅 수법으로 사료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을 포장한 역자의 말까지. 연보는 대충 읽었다.


소로우는 진짜 시골 아재가 맞는 게 약간 그런 느낌 있지 않나. "마, 니 야생사과 안묵어봤제? 이거 어디가서 묵고싶어도 몬먹는다. 퍼뜩 묵어봐라 쥑인다~!" 마치 아버지가 낚시 다녀 오시고 집에서 회 치면서 내가 잡은 게 제일 맛있고 영양가도 좋다면서 처자식들에게 생색내는 그런 뉘앙스로. 게다가 소로우는 말 그대로 초야에서 홀로 2년을 내리 지낸 진짜 '자연인'아닌가. 우월감 내지 비교하듯 서술하는 투, 이런 걸 선민의식이 아니라 아재감성, 자연인 감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편이 더 자연스럽지.


'가을의 빛깔들'이 정말 읽기 힘들었는데, 이스트 코스트 메사추세스의 자연경관을 네셔널 지오그래픽 HD 다큐멘터리로 보여주어도 졸음을 느낄 판에 삽화 하나 없이 그 번역체의 묘사들을 읽자니 안 그래도 주의집중을 잘 못하는 내 머리는 계속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오늘 무궁화밭에 가서 비닐 멀칭하면서 하루 종일 일 했는데 정말 농촌은 아닌 거 같고 산촌에서 혼자 유유자적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큐멘터리도 보고, '나는 자연인이다'도 봐야지. 내가 그 나무들, 곤충들, 새들, 짐승들을 다 어떻게 알 것이며 ... 정말.


계절 속의 삶은 요즘 나오면 참 욕 많이 먹을 만한 단문인데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감안하자. 그는 자연인이다.


야생사과는... 사과의 내력과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을 두 번에 걸쳐 읽었는데 당최 가물가물하다. 예전에는 잘 기억했었던 거 같은데, 너무 슬프다... 역사라면 자신 있었는데 ... 요튼 하임, 트야씨, 이둔 여신 ... 다시 읽어야지. 몇 번에 걸쳐. 강박을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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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p.24)"1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p.30)"2



"왜 그들 자신은 자기들과 주 정부의 연합 관계를 해체하지 않으며, 자기들 몫의 세금을 주 정부에 바치기를 거부하지 않는가? 그들과 주 정부의 관계는 주 정부와 합중국의 관계와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들이 주 정부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주 정부도 합중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p.34 - 35)"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p.38)"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끼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 (p.41)"



"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단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p.42)"



"돈이 없었더라면 그가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돈은 유보시켜 준다. (...) 이리하여 부자의 도덕적 기반이 발밑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른바 '수단'이란 것이 늘어갈수록 삶의 기회들은 줄어든다. (p.44)"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교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가 가난했을 때 품었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p.44 - 45)"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p.46)"3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p.50-51)"



"나는 참다운 인간들이 군중의 강요를 받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삶이 도대체 어떤 삶이겠는가? (p.51)"



"나는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선령한 이웃이나 친구로 어느 정도나 신뢰할 수 있는가를 보았다. 그들의 우정은 평온한 시절만의 우정이고, 그들은 올바른 일을 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 (p.56)"



"이 세상에서조차도 내가 정부 밑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유롭게 사색하고 자유롭게 공상을 하고 자유롭게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현명치 못한 지배자나 개혁자가 우리를 치명적으로 괴롭힐 수는 없을 것이다. (p.63)"



"진리의 보다 순수한 원천을 모르는 사람들, 즉 그 냇물을 따라 상류로 더듬어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성서와 헌법 옆에 서서 존경과 겸허의 자세로 그곳의 물을 마신다. 그러나 진리의 시냇물이 이 호수 또는 저 연못에 조금씩 흘러들어 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고 그 수원(水源)을 향해 순례를 계속한다. (p.66)"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해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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