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 야생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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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849년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에세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멕시코 전쟁을 일으키고 노예 제도를 유지/고수하는 등 부당한 일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반항으로 6년 간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하룻밤 동안 감옥에 수감되는데, 이 때의 경험이 이 에세이를 만드는 데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분량은 적지만 보다시피 주옥 같은 띵언으로 점철되어 있어 후세의 마하트마 간디, 영국의 노동 운동가들, 나치 치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우리나라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과연 국가 권력에 대한 개인의, 아니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명저 중의 명저이자 고전(Classic)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작인 것이다. ... 여기까지는 상투적인 수사이고.



'공병기'라고 페친 분이 쓰는 소설이 하나 있다. 얼마 전에 거기에 수록된 비판을 하나 게시하셨는데 대저 이런 거였다.


"그는 대부분 '주장'을 하고 있어 모든 경험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험을 극적으로 판단하고 구성해 그 외 다른 요소는 일절 배제해야 했다. 가령 그는 남성들의 성욕이나 일체감 같은 것을 놀라워하거나 불쾌해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옳은 삶을 고집하는 경향에다 솔직하기까지 해서 군대를 인간에게서 삭제하려는 건지 인간성의 일부를 삭제하자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요컨대 '공병기'는 대략 소설의 형식만을 취했을 뿐, 실상 논설문 자체라는 소리인데, 형식의 투박함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사례와 주장이 전도되는' 이중성을 까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작가의 주장이나 주제의식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은 맞지만 이야기가 주장을 위해 복무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바로 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경우가 그렇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내 페친 같은 분이다. 그는 옳음(good)을 옹호하는 투사다. 아마도 철학을 했다면 대성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순수했고, 인간 세상을 사랑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자연과 사회, 늘 마주하는 이웃사람, 나아가 인류 전반. 어쩌면 그의 본심이 퇴색되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그 pc함의 추구에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다 아는 소릴 왜?' '그래, 잘났다. 재수 없는 새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같은 범인(凡人)이 그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가 선민사상에 경도되어 있다고 볼 것도 없는 게 그는 <월든>에서 보여지듯 홀로 외로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이 점을 한 번만 더 숙고한다면 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물론 그래도 아니 꼬운 사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정의를 추구한다는 게 힘들어진 세상이다. 아니, 정의를 추구한다고 하면 대체 그것이 무엇에 대한 정의인지, 추구한다는 그 자신은 불의로부터 무결한지 쉼 없이 검증받게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할 수 있는 인본적 잣대가 존재할 때,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불의가 존재할 때, 제도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침탈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 그는 끊임 없이 재평가받아야 되는 인물이 아닐까.



참 좋은 말로 마무리 했다. 우리는 결국 한 인간의 '순수함'과 '진심'을 보고 나아가야 하니까. 그 형식은 어쩌면 둘째 문제다. 소로우는 그런 인물이다. 어쩌면 사람사는세상이니 나라다운나라니 좋은 세상에서 잘 살아보자는 인간 심리의 근저에는 크든 작든 순수한 소로우가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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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다른 네 편, 돼지 잡아들이기, 가을의 빛깔들, 한 소나무의 죽음, 계절 속의 삶, 야생 사과까지 다 읽었다. 영문학도스러운 시적표현과 <월든>의 주요 문장으로(이건 고도의 마케팅 수법으로 사료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을 포장한 역자의 말까지. 연보는 대충 읽었다.


소로우는 진짜 시골 아재가 맞는 게 약간 그런 느낌 있지 않나. "마, 니 야생사과 안묵어봤제? 이거 어디가서 묵고싶어도 몬먹는다. 퍼뜩 묵어봐라 쥑인다~!" 마치 아버지가 낚시 다녀 오시고 집에서 회 치면서 내가 잡은 게 제일 맛있고 영양가도 좋다면서 처자식들에게 생색내는 그런 뉘앙스로. 게다가 소로우는 말 그대로 초야에서 홀로 2년을 내리 지낸 진짜 '자연인'아닌가. 우월감 내지 비교하듯 서술하는 투, 이런 걸 선민의식이 아니라 아재감성, 자연인 감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편이 더 자연스럽지.


'가을의 빛깔들'이 정말 읽기 힘들었는데, 이스트 코스트 메사추세스의 자연경관을 네셔널 지오그래픽 HD 다큐멘터리로 보여주어도 졸음을 느낄 판에 삽화 하나 없이 그 번역체의 묘사들을 읽자니 안 그래도 주의집중을 잘 못하는 내 머리는 계속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오늘 무궁화밭에 가서 비닐 멀칭하면서 하루 종일 일 했는데 정말 농촌은 아닌 거 같고 산촌에서 혼자 유유자적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큐멘터리도 보고, '나는 자연인이다'도 봐야지. 내가 그 나무들, 곤충들, 새들, 짐승들을 다 어떻게 알 것이며 ... 정말.


계절 속의 삶은 요즘 나오면 참 욕 많이 먹을 만한 단문인데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감안하자. 그는 자연인이다.


야생사과는... 사과의 내력과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을 두 번에 걸쳐 읽었는데 당최 가물가물하다. 예전에는 잘 기억했었던 거 같은데, 너무 슬프다... 역사라면 자신 있었는데 ... 요튼 하임, 트야씨, 이둔 여신 ... 다시 읽어야지. 몇 번에 걸쳐. 강박을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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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p.24)"1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p.30)"2



"왜 그들 자신은 자기들과 주 정부의 연합 관계를 해체하지 않으며, 자기들 몫의 세금을 주 정부에 바치기를 거부하지 않는가? 그들과 주 정부의 관계는 주 정부와 합중국의 관계와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들이 주 정부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주 정부도 합중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p.34 - 35)"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p.38)"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끼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 (p.41)"



"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단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p.42)"



"돈이 없었더라면 그가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돈은 유보시켜 준다. (...) 이리하여 부자의 도덕적 기반이 발밑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른바 '수단'이란 것이 늘어갈수록 삶의 기회들은 줄어든다. (p.44)"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교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가 가난했을 때 품었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p.44 - 45)"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p.46)"3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p.50-51)"



"나는 참다운 인간들이 군중의 강요를 받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삶이 도대체 어떤 삶이겠는가? (p.51)"



"나는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선령한 이웃이나 친구로 어느 정도나 신뢰할 수 있는가를 보았다. 그들의 우정은 평온한 시절만의 우정이고, 그들은 올바른 일을 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 (p.56)"



"이 세상에서조차도 내가 정부 밑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유롭게 사색하고 자유롭게 공상을 하고 자유롭게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현명치 못한 지배자나 개혁자가 우리를 치명적으로 괴롭힐 수는 없을 것이다. (p.63)"



"진리의 보다 순수한 원천을 모르는 사람들, 즉 그 냇물을 따라 상류로 더듬어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성서와 헌법 옆에 서서 존경과 겸허의 자세로 그곳의 물을 마신다. 그러나 진리의 시냇물이 이 호수 또는 저 연못에 조금씩 흘러들어 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고 그 수원(水源)을 향해 순례를 계속한다. (p.66)"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해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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