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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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창간되어 '작가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우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 "파리 리뷰"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열다섯 명의 작가들에게 "파리 리뷰"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한 단편 소설 중 하나를 고르고 왜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지에 대한 의견을 부탁하여 엮은 책이 바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이다.


원제는 파리 리뷰 답게 <Object Lessons(실물 교육)>이라는데 한국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든다. 사람을 이끄는 흥미를 갖고 있달까. 사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첫번째 수록 작품인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아름다운 문장이었지만 실제 소설은 사고가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주인공 '나' 그리고 마약 중독으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가득해 이 사람은 미친 것 같다, 란 묘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었다. 나는 단편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에 수록된 열다섯편의 단편들은 묘한 울렁거림을 선사했다.


어딘지 모르게 몽롱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매우 현실적이며 그 끝을 짐작하게 하면서도 온점을 찍지는 않은 단편 소설들과 의미없이 떠돌던 단어들을 이어 붙이듯 설명하는 이 소설들을 고른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가끔은 이 소설에서 그런 '의미'를 찾아 설명하는 것들을 읽을 때 꼭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서 의미를 곱씹어 나와 벽을 만드는 비평가들의 내용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짧막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아직 말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단편 소설을 고르고 이에 대한 설명을 쓴 열다섯명의 자각들도 잘 모르고 이 책에 수록된 열 다섯 편의 단편 소설 작가들의 이름조차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들인지 잘 모른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은 꽤나 큰 충격과 인상을 준다. 왜 이 열다섯편의 단편 소설을 골랐는지 이해가 된달까. 물론 소설보다 그 소설을 선택한 작가의 리뷰가 더 와닿는다. 문장 하나 하나에 대한 이야기에, 내가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했는지,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앞서 말했다시피 벽을 만드는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보는 느낌도 들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문장을 곱씹게 하고 실제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들의 리뷰라서 그런지 좀 더 문장의 매력을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생각해보면 단편 소설은 그 이야기의 흐름보다 문장의 매력이 더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지 않은가.


다 마음에 들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에이미 헴펠이 고른 버나드 쿠퍼의 <늙은 새들>이었다. 다짜고짜 전화해서 장례식 예약에 관해 물어보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건축가로 새장같은 노인들을 위한 집을 설계하고 있고,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는 아버지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알게하고, 초조함과 두려움,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나는 아버지의 위치를 알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와 나는 끊임없이 소리를 높여 대화-혹은 고함지르기 시합-을 하지만 아버지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전화가 끊긴다.


나이가 들면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람들, 아니 죽음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중한 이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상실감과 두려움, 그리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늙은 새들>에 담겨져 있었다. 몇 페이지 안 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 많은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인지 혹은 실종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죽음보다 실종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아버지를 부를 것이다. 수많은 감정이 대화 속에 고였다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은 단편 소설을 잘 모르고 어색해하던 이들에게 단편 소설을 읽는 재미와 호기심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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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하면 상처받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들에게
오수향 지음 / 페이퍼버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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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다보면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 것마냥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기본적인 선을 넘나들며 곤란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내가 A행동을 하고 있는데 다짜고짜 그건 잘못되었으니 B행동을 하라며 강요한다. 내가 A를 하든 B를 하든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그 행동이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면 나 또한 바꿔야겠지만 그냥 나의 습관이고,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 행동인데도 선을 넘으면서 충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행해지는 수많은, 충고의 탈을 쓴 말의 칼은 꽤나 크고 오래 가는 상처를 남긴다.


이는 잘 모르는 관계뿐만 아니라 이미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한 사이에서도 제법 많이 발생한다. 직장동료, 친구, 가족 등 관계의 깊이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수도없이 상처를 주는 말이 흘러넘친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무뎌졌고 말이 주는 상처에 깊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서 오래 가지는 않는 편이지만 상처는 오랫동안 남아 있다. 그 상처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점점 관계가 좁아지고 멀어진다. 아니, 관계가 좁아지고 친했던 사람과 멀어지는 것은 괜찮다.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도대체 그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인간 관계는 어떤 식으로 가지고 가야 내가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까. 아프지 않고 인간 관계를 갖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이 늘어나는 요즘, <가까이하면 상처받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들에게>를 만났다.


<가까이하면 상처받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들에게>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에게든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잊으려 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그때 그 말", "살면서 온기가 필요한 순간은 온다." 그리고 각 장마다 상황별로 정리되어 있고 짧은 호흡으로 끊어 읽을 수 있고 이어지지 않아서 내 상황에 알 맞는 내용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각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읽기 전에 상황에 대한 짤막한 묘사를 보여주는 4컷 만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슴도치 캐릭터가 놓인 상황은 우리들이 언제나 겪는 이야기들이라서 안쓰럽기도 하고, 이 캐릭터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갈지 궁금해서 계속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1장이 제일 눈에 들어오는데 '감정 쓰레기통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그게 너의 인생 최대 업적이니?'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게 너의 인생 최대 업적이니?'는 내 현재 상황과 맞물려서 엄청 공감하면서 읽었다.


뭐만 하면 과거의 영광에 빠져서 모든 대화를 할 때 과거의 상황을 바탕으로 답변하는 사람이 있다. 쉽게 관계를 끊어낼 수도 없는 관계라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지만 매번 어쩜 모든 걸 다 과거에 맞출까 싶다. 그러다가도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의 것을 가져다 쓰기에 돈이나 시간이 너무 많이 들면 그건 과거고 지금은 현재고 이러면서 선을 긋는다. 자존감이 높아보이지만 엄청 낮아서 대꾸할 때도 조심스럽다. 이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고민이 많이 되는 데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한결 쉬워졌다.


물론 모르던 사실이 이 책에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 등에 대한 에세이 형태의 책을 많이 읽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다 알고 있는 내용이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색다른 내용은 생각보다 없는데 이를 어떤 식으로 풀어내고 설명해주느냐가 강권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작가의 능력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지는 데 <가까이하면 상처받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들에게>은 흥미를 이끌면서도 사람을 차분하게 해준다. 이럴 땐 이런 식으로 행동해봐야지, 내 상황과 책이 보여주는 상황을 교차해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SNS나 ZOOM 등으로 만나면서 인간 관계는 더욱 어려워진다. ZOOM 처럼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SNS나 메신저를 통해 얼굴이 아닌 "글"로 관계를 유지해가면 상대의 상태를 알기가 어려워진다. 대화를 하며 긴밀하게 표정을 살피고 사람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던 나의 반응이 지금은 전혀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상처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이야기가 흘러 가는 경우가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건 무척 행복하지만 반대로 외로움도 많아진다. 대화를 해도 대화를 하는 것 같지 않아져서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더욱 이런 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까이하면 상처받고 멀어지면 외로운 고슴도치들에게>은 좀 더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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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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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SF물일까. 제목과 표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제목과 표지만으로 상상하게 만들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책들은 많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한껏 올라간 기대치를 만족하지 못할 염려때문이다. 처음 <화성의 시간>을 받고 나서 바로 책을 펼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서, 겨우 상상해낸 이야기가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오랜 고민 끝에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내 예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 여자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실종을 당하다니. 그리고 등장한 주인공 성환이 민간조사원이란다. 미스터리 소설이었나. 그 때부터 점점 더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쯔음 가서야 제목이 뜻하는 바를 알아 차리고 아, 소리내서 감탄해버렸다. 마지막에 "지구로 귀환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는 문장까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지만 그 얼얼함은 상당히 흥미롭다.


<화성의 시간>은 전체적으로 추리 소설의 형태를 띈다. 주인공 성환이 민간조사원으로써 문창수의 의뢰를 받고 6년 전에 실종된, 문창수의 동생 문미옥을 찾게 되면서 시작한다. 독자는 대체로 주인공 성환의 시점을 따라가지만 '실종'과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은 실종된 문미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은 문미옥의 시선에서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독자는 미묘하게 벽을 느낀다. 제목 <화성의 시간>에 대한 의미는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데, 조금 별개의 내용이지만 은근슬쩍 쳐둔 벽 또한 우리와 다른 삶을 살게 된 문미옥의 이야기가, 지구가 아닌 화성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추리 소설 형태를 띄고 전체적으로 미스터리에 가깝지만 사건이 촘촘한가? 하는 물음에는 답하기 어렵다. 일단 민간조사원인 성환은 생각보다 너무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 장애물이 없는데다가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여기저기 이야기를 한다. 신뢰를 얻기 위한 수단일 때는 이해가 가지만 가끔은 "살인"이 얽혀 있을 수도 있는데 너무 안일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간에 그를 도와주는 소년이나, 그에게 정보를 준 이여정 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뒤에서는 완전히 잊혀지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까지 다룬다면 너무 내용이 많아져서 생략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6년 전 실종 사건인데다가 민간조사원인 탓에 증거를 모으는 행위가 대체로 대화를 통해 증언을 꺼내는 형태라서 엄청 미스테리하다, 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반에 실종 사건의 범인과 사건의 비밀은 쉽게 드러나고 중간 중간 주인공은 깨닫지 못했지만 독자는 문장을 읽자마자 그런 사정이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는-성환의 상황에선 바로 연결되기 어렵지만 글로 읽고 있는 독자로써는 바로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후반에 성환이 깨닫는 장면이 나올 때, 너무 늦다, 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선이 가득해서 흥미를 자아내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흡입력이 있다. 반전이라고 할 것도 그다지 없는데도, 이미 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건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사연에 몰입하게 된달까. 모든 등장인물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놈도 중간 중간 쎄한데도 결국 마지막엔 제발 행복했으면ㅡ, 하는 마음이 든다. 전체적으로 "사랑"이 기반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의 성선설이 바탕이랄까. 성환의 개인사가 등장할 때 울컥하면서도 결국 서서히 시간을 들여 슬픔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게되는 과정 속에 성환이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따스함이 남는다.


주인공 성환의 성격과 신분 그리고 나이 등의 여러 요소 때문에 긴박함이 맴돌지만 전개는 매우 느리다. 주변 사람들과 나는 초조한데 성환은 어떻게든 자신의 페이스로 사건을 마주하고, 그 뚝심에 감탄도 한다. 중간 중간 등장인물 등을 보면 나름 시리즈 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민간조사원에 대한 편견이 너무 강해서 아무래도 사람들의 선함에 기대어 정를 모을 수가 없어서 사건을 다양하게 하기에는 아직 아쉬움이 있는데, <화성의 시간>에 다양한 조력자들이 등장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지 않을까?도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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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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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의 작품을 쓴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 <마음의 심연>은 미완성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2004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사망 이후 발견된 원고를 그녀의 아들이 십여 년간 다듬어 출간한 작품이며, 시나리오로 각색된 원고와 메모로 가득한 원본를 토대로 다듬었다. 미완성 소설이지만 열린 결말같은 느낌을 주며 끝을 맺어 사강 특유의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가 여전히 돋보이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마음의 심연>의 주인공 뤼도빅 크레송은 이 년 전 겪은 자동차 사고의 영향으로 정신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아버지 앙리 크레송의 저택 '라 크레소나드'에 돌아왔는데 약의 후유증인지 사고의 후유증인지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뤼도빅의 아내 마리로르는 권태기에 빠져 뤼도빅과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상태. 이 때 앙리 크레송은 자신의 아들이 제정신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공표하기 위한 성대한 파티를 열기로 결심하고 몸이 불편한 자신의 아내(두번째 아내다) 상드라 크레송 대신 뤼도빅이 요양원에 있을 때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며 아파해준 마리로르의 모친, 파니 크롤리를 초대해 파티를 주관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라 크레소나드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음의 심연>은 뤼도빅이 라 크레소나드에 돌아와 파니가 파티를 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까지 그린 소설이다. 파티가 열리기 직전 책은 끝을 맺는다. 이후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대충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 짐작 가능하게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 끝맺고 싶어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이미 터지는 순간 이 가족이 산산조각날 것임은 명확하다. 아무리 순수한 사랑으로 껍데기를 씌워도 불륜은 불륜이고, 혼자 멋대로 착각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고 끝을 향해 내달리는 것을 읽는 재미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간질간질하면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사실 막장 드라마를 뺨치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나마 파니 크롤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중반부터는 산산조각이 난다. 제정신인 인간은 집사인 마르탱뿐일까나. 마르탱도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일단 라 크레소나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말이다. 어쩌면 등장하는 강아지가 제일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듯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무척 높아서 읽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든다. 욕 하면서 읽게 만든달까.


그리고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와 캐릭터의 성격을 고작 몇 마디로 각인시키는 등 문장을 읽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상황을 풍자하고 유머러스함까지 갖추어져 있어서 확실히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는 막장 불륜이나 너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랑 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생각보다 시큰둥하게 읽기는 했지만 프랑스 문학이 읽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는 작품이었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명확하여 헷갈릴 일이 없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게 아니라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이건 그냥 덧붙이는 말인데, 책의 제목을 정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는 김남주 번역가의 후기를 봤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엄청 고심해서 정한 것 같은데 사실 기본 스토리만 보면 너무 멋드러진 제목을 정한 기분도 든다. 수많은 감정이 터져나오는 책이라서 제목이 어울리는 것 같다가도 어차피 막장 불륜이라는 점을 떠올리다보면 그걸 "심연"이란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튼 참 신기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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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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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으로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전자 시대의 아리아>로 당선되어 데뷔한 신종원 작가의 <고스트 프리퀀시>가 그 일환으로 아홉번째로 출간되었으며 단편 소설집이다.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고스트 프리퀀시" 그리고 "에세이 운명의 수렴" 총 네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상당히 신비로운 소설이다. "마그눔 오푸스"를 읽었을 때는 주술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전체적으로 과학적으로 살갖 아래의 움직임을 묘사하며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조작하며 낯선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 들어 흥미로우나 머리가 어지럽고, 모르는 용어가 주는 이질감에 오랫동안 혼미해졌다가도 결말쯤에서 현실로 토해지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알딸딸하고 무엇을 읽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말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 채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현실로 내동댕이쳐져서 묘한 기분도 들고, 그렇다고 형이상학적인 말로 내 머리를 두들긴 것도 아니라서 읽는 내내 미묘하다.


"마그눔 오푸스"는 양계진 씨가 거북이의 말을 무시하고 황금 잉어를 훔쳐 달아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손자의 태몽으로 이후 꿈을 꿀 때마다 황금 잉어의 주인 용왕에게서 훔쳐간 것을 돌려달라고 종용받으나 양계진 씨는 이를 무시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치매가 생긴 양계진 씨는 점차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꿈에서 도망치기가 힘들어진다. 망각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손자를 돌려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던 양계진 씨는 꿈을 통해 아버지와 상봉하면서 자신의 태몽을 듣게 되고 용왕을 만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꿈과 현실이라는 기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양계진 씨의 머릿속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부수어졌다가 붙여졌다가, 지워졌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오랫동안 외면하며 발버둥쳤던 현실이 꿈과 연결되면서 양계진 씨는 결국 단절된 기억(아버지와의 상봉)을 통해 외면해왔던 선택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사실 결말은 하나 뿐이라 배회하듯 읽었으나 종착점이 명확한 느낌이었다.


"아나톨리아의 눈"은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면서 시작하는데 열개의 면을 가진 주사위 값에 의해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 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쇼팽, 문장부호, 멸망한 왕조 등 통일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가 끝을 맺는다. 다양한 세계가 창조되었다가 끝나가는 과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통일성은 전무하나 세계를 만들었다 사라지는 과정은 명확하게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내용보다는 구성이 더 눈에 잘 들어온 작품이고, 특히 문장부호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기억에 남는다. 등장하는 '나'와 '학생' 모두 잘못한 것은 없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통일성이 가져다 주는 절망이 느껴진다. 우리네의 창의성없는 인재들을 배출해나가는 교육관과 별반 다르지 않달까.


"고스트 프리퀀시"는 한 주택에서 열린 낭독 공연에 참여한 뒤 이상한 소리를 듣는 '박지일'과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지일'은 시를 통해서 이상한 소리와 기이한 현상을 봉인한다. 한편, '나'는 에디슨이 나오는 유투브 영상을 보다가 에디슨의 유령 목소리와 조우한다. 그리고 에디슨과 이야기하면서 소설을 씀으로써 에디슨의 목소리를 봉인하고자 한다. 현실이 소설이 되면 그 안에서 살아 숨쉬게 된다. '나'와 '박지일'은 현실에서 겪은 것들을 글로 옮겨 적으며 그것들을 기록하고 현실에서 봉인시킨 것이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소명임을 말한다. 약간의 공포 장르의 느낌이 담긴 소설이긴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미는 상당히 명확하다. 그 명확한 이야기를 위해 유영하는 과정은 오히려 미묘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에세이 운명의 수렴"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므로 딱히 느낀점을 적지는 않을 예정인데 에세이의 분위기 또한 위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다. 다만 계속해서 이야기하다시피 이야기의 끝은 상당히 명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다 읽고 나서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곤혹스러운 느낌이었다. 작가는 흔들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셈이니 내가 작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힘들지만 여운이 느껴지고 수많은 단어가 폭발하다가 꺼지는 느낌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미묘하게 나를 붙잡는다. 어찌되었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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