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심연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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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의 작품을 쓴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미발표 유작 <마음의 심연>은 미완성 소설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2004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사망 이후 발견된 원고를 그녀의 아들이 십여 년간 다듬어 출간한 작품이며, 시나리오로 각색된 원고와 메모로 가득한 원본를 토대로 다듬었다. 미완성 소설이지만 열린 결말같은 느낌을 주며 끝을 맺어 사강 특유의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가 여전히 돋보이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마음의 심연>의 주인공 뤼도빅 크레송은 이 년 전 겪은 자동차 사고의 영향으로 정신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 아버지 앙리 크레송의 저택 '라 크레소나드'에 돌아왔는데 약의 후유증인지 사고의 후유증인지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뤼도빅의 아내 마리로르는 권태기에 빠져 뤼도빅과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상태. 이 때 앙리 크레송은 자신의 아들이 제정신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공표하기 위한 성대한 파티를 열기로 결심하고 몸이 불편한 자신의 아내(두번째 아내다) 상드라 크레송 대신 뤼도빅이 요양원에 있을 때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며 아파해준 마리로르의 모친, 파니 크롤리를 초대해 파티를 주관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라 크레소나드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음의 심연>은 뤼도빅이 라 크레소나드에 돌아와 파니가 파티를 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까지 그린 소설이다. 파티가 열리기 직전 책은 끝을 맺는다. 이후의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대충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 짐작 가능하게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 끝맺고 싶어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이미 터지는 순간 이 가족이 산산조각날 것임은 명확하다. 아무리 순수한 사랑으로 껍데기를 씌워도 불륜은 불륜이고, 혼자 멋대로 착각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고 끝을 향해 내달리는 것을 읽는 재미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간질간질하면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사실 막장 드라마를 뺨치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채였다.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나마 파니 크롤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중반부터는 산산조각이 난다. 제정신인 인간은 집사인 마르탱뿐일까나. 마르탱도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일단 라 크레소나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이지 못한 느낌이다' 말이다. 어쩌면 등장하는 강아지가 제일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듯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무척 높아서 읽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든다. 욕 하면서 읽게 만든달까.


그리고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와 캐릭터의 성격을 고작 몇 마디로 각인시키는 등 문장을 읽는 재미가 있고 다양한 상황을 풍자하고 유머러스함까지 갖추어져 있어서 확실히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는 막장 불륜이나 너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랑 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생각보다 시큰둥하게 읽기는 했지만 프랑스 문학이 읽기 힘들다는 편견을 깨는 작품이었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명확하여 헷갈릴 일이 없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게 아니라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이건 그냥 덧붙이는 말인데, 책의 제목을 정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는 김남주 번역가의 후기를 봤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엄청 고심해서 정한 것 같은데 사실 기본 스토리만 보면 너무 멋드러진 제목을 정한 기분도 든다. 수많은 감정이 터져나오는 책이라서 제목이 어울리는 것 같다가도 어차피 막장 불륜이라는 점을 떠올리다보면 그걸 "심연"이란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튼 참 신기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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