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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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소개하는 기획으로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전자 시대의 아리아>로 당선되어 데뷔한 신종원 작가의 <고스트 프리퀀시>가 그 일환으로 아홉번째로 출간되었으며 단편 소설집이다.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고스트 프리퀀시" 그리고 "에세이 운명의 수렴" 총 네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상당히 신비로운 소설이다. "마그눔 오푸스"를 읽었을 때는 주술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전체적으로 과학적으로 살갖 아래의 움직임을 묘사하며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조작하며 낯선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읽다 보면 소설 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 들어 흥미로우나 머리가 어지럽고, 모르는 용어가 주는 이질감에 오랫동안 혼미해졌다가도 결말쯤에서 현실로 토해지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알딸딸하고 무엇을 읽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말의 반도 따라가지 못한 채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현실로 내동댕이쳐져서 묘한 기분도 들고, 그렇다고 형이상학적인 말로 내 머리를 두들긴 것도 아니라서 읽는 내내 미묘하다.


"마그눔 오푸스"는 양계진 씨가 거북이의 말을 무시하고 황금 잉어를 훔쳐 달아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손자의 태몽으로 이후 꿈을 꿀 때마다 황금 잉어의 주인 용왕에게서 훔쳐간 것을 돌려달라고 종용받으나 양계진 씨는 이를 무시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치매가 생긴 양계진 씨는 점차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꿈에서 도망치기가 힘들어진다. 망각을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손자를 돌려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던 양계진 씨는 꿈을 통해 아버지와 상봉하면서 자신의 태몽을 듣게 되고 용왕을 만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꿈과 현실이라는 기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양계진 씨의 머릿속은 꿈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부수어졌다가 붙여졌다가, 지워졌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오랫동안 외면하며 발버둥쳤던 현실이 꿈과 연결되면서 양계진 씨는 결국 단절된 기억(아버지와의 상봉)을 통해 외면해왔던 선택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사실 결말은 하나 뿐이라 배회하듯 읽었으나 종착점이 명확한 느낌이었다.


"아나톨리아의 눈"은 게임의 규칙을 설명하면서 시작하는데 열개의 면을 가진 주사위 값에 의해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 열 개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쇼팽, 문장부호, 멸망한 왕조 등 통일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가 끝을 맺는다. 다양한 세계가 창조되었다가 끝나가는 과정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통일성은 전무하나 세계를 만들었다 사라지는 과정은 명확하게 보여진다. 개인적으로 내용보다는 구성이 더 눈에 잘 들어온 작품이고, 특히 문장부호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기억에 남는다. 등장하는 '나'와 '학생' 모두 잘못한 것은 없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통일성이 가져다 주는 절망이 느껴진다. 우리네의 창의성없는 인재들을 배출해나가는 교육관과 별반 다르지 않달까.


"고스트 프리퀀시"는 한 주택에서 열린 낭독 공연에 참여한 뒤 이상한 소리를 듣는 '박지일'과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지일'은 시를 통해서 이상한 소리와 기이한 현상을 봉인한다. 한편, '나'는 에디슨이 나오는 유투브 영상을 보다가 에디슨의 유령 목소리와 조우한다. 그리고 에디슨과 이야기하면서 소설을 씀으로써 에디슨의 목소리를 봉인하고자 한다. 현실이 소설이 되면 그 안에서 살아 숨쉬게 된다. '나'와 '박지일'은 현실에서 겪은 것들을 글로 옮겨 적으며 그것들을 기록하고 현실에서 봉인시킨 것이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소명임을 말한다. 약간의 공포 장르의 느낌이 담긴 소설이긴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미는 상당히 명확하다. 그 명확한 이야기를 위해 유영하는 과정은 오히려 미묘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에세이 운명의 수렴"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므로 딱히 느낀점을 적지는 않을 예정인데 에세이의 분위기 또한 위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다. 다만 계속해서 이야기하다시피 이야기의 끝은 상당히 명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머리가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다 읽고 나서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내내 곤혹스러운 느낌이었다. 작가는 흔들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셈이니 내가 작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색다른 느낌의 소설이다. 힘들지만 여운이 느껴지고 수많은 단어가 폭발하다가 꺼지는 느낌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미묘하게 나를 붙잡는다. 어찌되었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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