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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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SF물일까. 제목과 표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제목과 표지만으로 상상하게 만들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책들은 많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한껏 올라간 기대치를 만족하지 못할 염려때문이다. 처음 <화성의 시간>을 받고 나서 바로 책을 펼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서, 겨우 상상해낸 이야기가 취향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오랜 고민 끝에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내 예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 여자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실종을 당하다니. 그리고 등장한 주인공 성환이 민간조사원이란다. 미스터리 소설이었나. 그 때부터 점점 더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쯔음 가서야 제목이 뜻하는 바를 알아 차리고 아, 소리내서 감탄해버렸다. 마지막에 "지구로 귀환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는 문장까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지만 그 얼얼함은 상당히 흥미롭다.


<화성의 시간>은 전체적으로 추리 소설의 형태를 띈다. 주인공 성환이 민간조사원으로써 문창수의 의뢰를 받고 6년 전에 실종된, 문창수의 동생 문미옥을 찾게 되면서 시작한다. 독자는 대체로 주인공 성환의 시점을 따라가지만 '실종'과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은 실종된 문미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은 문미옥의 시선에서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독자는 미묘하게 벽을 느낀다. 제목 <화성의 시간>에 대한 의미는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데, 조금 별개의 내용이지만 은근슬쩍 쳐둔 벽 또한 우리와 다른 삶을 살게 된 문미옥의 이야기가, 지구가 아닌 화성의 이야기인 것처럼 들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추리 소설 형태를 띄고 전체적으로 미스터리에 가깝지만 사건이 촘촘한가? 하는 물음에는 답하기 어렵다. 일단 민간조사원인 성환은 생각보다 너무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는데 있어 장애물이 없는데다가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여기저기 이야기를 한다. 신뢰를 얻기 위한 수단일 때는 이해가 가지만 가끔은 "살인"이 얽혀 있을 수도 있는데 너무 안일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간에 그를 도와주는 소년이나, 그에게 정보를 준 이여정 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뒤에서는 완전히 잊혀지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까지 다룬다면 너무 내용이 많아져서 생략했을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6년 전 실종 사건인데다가 민간조사원인 탓에 증거를 모으는 행위가 대체로 대화를 통해 증언을 꺼내는 형태라서 엄청 미스테리하다, 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초반에 실종 사건의 범인과 사건의 비밀은 쉽게 드러나고 중간 중간 주인공은 깨닫지 못했지만 독자는 문장을 읽자마자 그런 사정이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는-성환의 상황에선 바로 연결되기 어렵지만 글로 읽고 있는 독자로써는 바로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후반에 성환이 깨닫는 장면이 나올 때, 너무 늦다, 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선이 가득해서 흥미를 자아내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흡입력이 있다. 반전이라고 할 것도 그다지 없는데도, 이미 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건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사연에 몰입하게 된달까. 모든 등장인물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놈도 중간 중간 쎄한데도 결국 마지막엔 제발 행복했으면ㅡ, 하는 마음이 든다. 전체적으로 "사랑"이 기반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의 성선설이 바탕이랄까. 성환의 개인사가 등장할 때 울컥하면서도 결국 서서히 시간을 들여 슬픔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게되는 과정 속에 성환이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따스함이 남는다.


주인공 성환의 성격과 신분 그리고 나이 등의 여러 요소 때문에 긴박함이 맴돌지만 전개는 매우 느리다. 주변 사람들과 나는 초조한데 성환은 어떻게든 자신의 페이스로 사건을 마주하고, 그 뚝심에 감탄도 한다. 중간 중간 등장인물 등을 보면 나름 시리즈 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민간조사원에 대한 편견이 너무 강해서 아무래도 사람들의 선함에 기대어 정를 모을 수가 없어서 사건을 다양하게 하기에는 아직 아쉬움이 있는데, <화성의 시간>에 다양한 조력자들이 등장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지 않을까?도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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