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답사 0번지 영암 - 월출산의 신령스런 기운이 가득한 고장
송일준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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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PD수첩의 피디 송일준의 영암 톺아보기


MBC 간판격 시사저널 <PD수첩>의 피디 송일준, 정권에 밉보여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다가 MBC 광주시장을 끝으로 현장을 떠났지만, PD 유전자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는지, 그가 태어난 영암, 초, 중학교에 다녔던 ‘나주’ 그리고 서울... 하지만, 그는 늘 ‘나주’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이번 책은 좋게 보면 PD 눈으로 살펴본 영험한 땅 “영암” 왕인박사가 천자문을 들고 영산강 줄기를 타고 도일(渡日), 지금은 일본 땅에 학문을 전해 준 “와니하카세(왕인 박사)”로 추앙받는 땅 곳곳을 둘러보는 사회문화연구나 인문지리학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영암 홍보대사로서 밥값을 해야 하기에 내놓은 보고서일 수도 있다. 그의 첫 인문지리학적 에세이는 <제주 한 달 살기>에 이어 <송일준의 나주 수첩 1, 2> 그리고 이 책<남도답사 0번지 영암>이다. 


이 책은 4장 60개 이야기가 실려있다. 1장 ‘신령스러운 바위’에서는 영암, 왜 신령스러운 바위일까, 지명의 유래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반 년 동안 지냈던 융성도서관, 카페, 떡국, 달뜬 콩국수, 갈낙탕, 영암 어란과 참빗 등 영암의 명물을 소개한다. 2장 ‘큰 바위 얼굴’에서는 기찬랜드 한국트로트가요센터를 비롯하여 월출산, 큰 바위 얼굴, 800살 노거수 엄길리 느티나무 등 19개의 이야기를, 3장 ‘영암 사람들’에서는 영보정 마을, 주암마을, 하정웅 미술관, 죽림정, 도림사 장군당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4장 ‘지독한 사랑’에서는 마한 시대 고분들과 마한문화공원, 왕인박사 유적, 도선국사 전설, 호랑이 장군 김완, 선비 최경창의 사랑 이야기 등이... 


영암 사람들도 제대로 모르는 지역과 장소,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이 한 편의 여행기이면서 역사인물전, 자연과 관광지 등이 한대 어우러진 “인문지리학”과 "사회문화연구"의 중간 어디쯤에 자리한 인문지리학적 에세이 혹은 기행문이라 해두자. 




왜 영암이라 부를까? 작은 금강산


해가 뜨는 산이 이면 일출산, 달이 뜨면 산이면 ‘월출산’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영암의 드넓은 들판 위에 불현듯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산 그 위에 떠 오른 둥근 보름달. 이렇게 그려보면 ‘월출산’이 멋들어짐을... 애초 월출산이란 산은 신비한 기운이 있어 중국 사람들은 조선 땅에 큰 인물이 날 것을 우려해 해코지했다고, 옛날 월출산 꼭대기에는 동석(움직이는 바위)이 세 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밀어 떨어뜨렸는데, 그중 하나가 스스로 굴러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해서 “영암(靈巖)‘ 즉 영험한 바위라 불렀다고, 통일신라 시대까지는 월나군(月奈郡), 월출산은 월나악(月奈岳)으로 불렀다고, 월나는 본디 얼나라는 우리말의 한자식 표기이고, 얼은 올에서 나왔으며 올은 모든 사물의 근본, 시작, 핵을 뜻한다. 


이렇게 하나둘씩, 건물과 장소에 얽힌 사연과 그 유래를 톺아보는 한편, 잔잔하고 고즈넉한 영암 시골 마을에 정다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움. 도시민들에게 전하는 시골 풍경도 담았다. 


융성도서관에 얽힌 사연


영암과 일본의 문화와 사연을 담았다.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박사의 고향에 일본인의 동상이?, 융성(隆盛=다카나리), 일본식 이름에 자주 쓰인다. 도서관을 세운 이는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간 전규택의 일본 이름이 오야마다카나리(大山隆成))이다. 한자는 다르지만, 융성하라는 의미로 도서관을 지었다. 전규택은 고향의 어린 후배들을 위해 융성장학재단을 만들기도, 이곳에 있는 니노미야킨지로의 석상은 일본의 근검절약 형설지공의 표본이다. 무조건 일본을 배척하거나 숭앙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는 달리 세계시민이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인간의 보편성이랄까?





영산강의 마한 문화, "마한역사문화센터" 건설, 개발이 능사는 아닐진대,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이 부른 성급함도


나주 반남의 고분군, 왕비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영산강이 흐르는 곳에 가까운 곳 물길로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곳에 영암 시종이 있다. 이른바 ”마한 문화권“이다. 관광콘텐츠가 적어,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어찌 보면 그래서 더 잘 보존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부터 마한역사문화센터 공사를 시작한다. 자연스러움보다는 인공으로 원형이 어디까지 보존될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앞선다.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문화재는 국립 나주 박물관에 전시됐는데, 좁은 지역, 영산강변의 마한문화권에 나주 박물관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역 공동화, 인구감소, 지역소멸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고육지책으로 생활인구나 유동인구를 늘려보겠는 게 마한역사문화센터 건립추진 동인이 되지 않았을까... 근시안보다는 심모원려가 필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곳은 자연스레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자연상태에서 보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영암을 주제로 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 중에 고르고 골랐을 60가지 이야기의 끝은 월출산 자락의 도갑사가 주제다. ‘늦가을 도갑사’ 영암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봄이면 도갑사 길로 접어드는 국도 양쪽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왕벚꽃의 자생지라고도 불리는 영암, 도갑사의 현판이 달린 일주문에서 해탈문으로 가는 길 왼쪽에 커다란 비석 ’국중제일 선종대찰 월출산 도갑사 사적비명‘이라고, 






지은이 송일준도 영암의 신비한 기운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월나의 월은 올이고 올은 옳다, 사물의 근본, 핵이니 말이다. 그래서 PD수첩에서 딱 부러지게 정부를 비판하다가, 이리저리 쫓겨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시간 속에 켜켜히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 역사적 인물에서 독특한 자유인에 이르기까지...


영암의 민속씨름단이 전국을 제패했다는 소식 뒤에는 재정난 등 때문에 존립 위기에 몰려...존속이 불투명하다고도, 가수 하춘화가 고생고생해서 번 돈으로 지은 학산면 소재 낭주고등학교도, 조선 시대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어란도, 참빗도, 오늘도 영산강은 흐르건만 그때 그 시절 영암 사람들의 사연은 강변에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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