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위대한 개츠비
고전이 된 소설을 쓴 F. S 피츠 제럴드의 책은 국내에서 김욱동, 송관식, 김의승 등과 이 책의 번역자 유혜경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이 번역을 했다. 번역자의 손끝에서 미묘하게 결이 달라진다. 이 책의 작품해설과 번역의 어려움을 적은 역자 후기 또한 읽어볼 만한 대목이다.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다. 번역의 어려움과 이를 대하는 태도를 책 서문에 무려 90여 쪽을 실었던 박홍규의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트, 교보문고, 2015)도 꼭 읽어봐야 한다.
일본의 유명작가로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인구에 회자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가에 길에 들어서 영어로 쓰인 소설을 필사했던 책이 바로 피츠 제럴드 작품들이었다. 하루키는 영어로 생각하고 썼다. 다시 일본어로 바꿔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훈련을 거듭해왔다. 언어의 섬세함과 표현, 결국 보편성과 예술성을 어떻게 함께 녹여낼 것인가가 그의 목적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김석희의 초월 번역에 돋보였다는 평가(이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반론도 적지 않지만) 시오노 나나미(그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고) 역사에세이 이른바 로마사 연의(삼국지연의처럼)를 일본어로 번역할 때, 완전히 새로 쓰는 느낌이었다고, <위대한 개츠비>를 원작으로 읽어보기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위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어로도 아주 흥미로웠고, 한국어 번역본이 오히려 결이 다름을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짧게 "위대한 개츠비 "속으로 들어가보자
미국의 중서부에서 대학을 졸업한 닉은 1차 대전이 끝난 후 초라한 변두리처럼 변한 중서부를 떠나 동부로 이주해 증권업을 배우기로 했다. 그는 뉴욕 교외에 있는 웨스트에그에 작은 집 한 채를 빌려 살게 되었다. 그 이웃에 개츠비란 사람이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개츠비는 거의 매일 같이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데이지란 대단한 미모를 지닌 여자와 사랑하던 사이였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개츠비는 유럽의 전쟁터로 가게 되었다. 그사이 데이지는 톰 뷰캐넌이라는 부자와 결혼을 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개츠비는 데이지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되지만 데이지가 톰과 결혼한 것은 단순히 돈 때문이며 그들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고 믿는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돈을 버는 데 몰두한다. 데이지를 사로잡은 것이 돈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돈을 벌게 되자 데이지의 저택과 강 하나를 사이에 마주하고 있는 저택을 사들인다. 그리고 매일 밤 파티를 열어서 데이지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개츠비는 이제 돈이 그녀와의 사랑을 되돌려 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데이지와의 사랑에 집착하고 있으므로 그때까지 독신이었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육촌인 닉의 주선으로 데이지와 재회한다. 순진한 개츠비는 데이지의 태도를 보고 그녀의 사랑을 되찾았다고 마음대로 믿어 버린다. 닉이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해 주어도 과거와 똑같이 만들어 보겠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개츠비와 데이지가 뉴욕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데이지가 운전한 차에 어떤 여자가 뛰어들었는데 미처 피하지 못하고 치고 만 것이다. 차에 뛰어들었던 여자는 데이지 남편 탐의 정부(情婦)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탐은 데이지에게 입단속을 시키고는 여자의 남편인 윌슨에게 사고를 낸 차의 주인이 개츠비라고 알린다. 결국, 개츠비는 자기 집 수영장에서 윌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개츠비의 장례식 날, 데이지는 남편 탐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장례식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다. 닉은 이들의 허망한 사랑과 동부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인 중서부로 돌아간다.
왜 지금 위대한 개츠비가 인기가 있을까, 지금 소환한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부를 축적하면서 세계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던 1920년대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게 위대한 개츠비였다면 30년대의 노동소외를 블랙 코미디로 보여준 것이 찰리 채플린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모던 타임스>였다. 문학작품이 당대의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건 상식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변화의 부침이 심할 때일수록 “고전” 읽기의 열기는 높아지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이런 문화 현상 자체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쓰고 남을 것이다. 아마도 불안, 패배감을 떨쳐내고 일어서려는 안간힘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개츠비는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있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빈손으로 부를 일굴 수 있는 시대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였다. 이상적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면서 장애를 뛰어넘고, 신은 죽었다고 외친 프리드리히 니체“위버멘쉬(초울, 극복)”의 실천행을 보는 듯하다.
사회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놓인 개츠비는“돈”을 벌면 그의 모든 희망, 사랑한 여인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풍요로웠던 미국의 시대를 살았던 미국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가 독신으로 지낼 만큼 평생 그리워했던 옛사랑 “데이지”는 미국 사회 가치 변화 그 자체였으니, 결론은 비극적일 수밖에... 조정래의 소설“황금종이” 즉 돈만 있으면 세상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는데, 당대 황금만능에 젖어있던 젊은이들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신기루를 좇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편, 인간에게 소중한 것들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열심히 그리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결코 좌절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위버멘쉬)는 사랑과 꿈이다. 왜 개츠비는 위대했을까?, 바로 이점 때문이다. 꺾이지 않는 의지, 좌절하지 않고 이루려는 사랑과 꿈은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을 정한다는 강렬한 메시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위대하다는 수식이 붙는다.
1920년대부터 미국은 떠오르는 신천지였다. 아메리칸 드림, 하지만 지나친 물질문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지적처럼 고정된 가치관도 질서도 아름다운 풍속과 문화도 모두 흔들리는 “유동 시대”로 접어들었다. 꿈도 사랑도 흔들리는 그런 시대, 유동 시대의 인간상은 데이지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