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근현대사를 장소로 보다
역사적인 장소는 이제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둘러봐도 단서를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누군가가 여기에 무엇이 있었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려줘야 비로소 주변을 살피면서 상상을 해볼 수 있을 정도이니.
이 책<장소로 보다, 근현대사>은 도슨트가 소개하는 익숙한 장소에 숨겨진 특별한 역사가 담겨있다. 지은이 문재옥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서울역사박물관, 민주화운동기념관(구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 ‘'탁' 치니 억하며 쓰러져 죽는다’ 1987의 그 날,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서울대 언어학과 박종철의 고문이 일어났던 곳)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도슨트는 라틴어로 “가르친다”라는 뜻인데, 굳이 우리 말로 풀자면 지식을 갖춘 안내자, 해설사 뭐 이런 뜻인데, 한글 표기가 미확정이어서, 우선 “자원봉사자”임에 방점이, 미술관, 박물관 등지에서 작품을 안내하거나 한다. 우리 말로 “길라잡이”라는 표현이 그럴 듯 한데 말이다.
책의 부제는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다. 구성은 1863~2025년까지, 인천과 서울을 대상으로 삼았다. 전국 주요현장은 아마도 시리즈로 나올듯하다. 마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처럼, 이 책은 현장을 찾는 나 홀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답사코스와 지도, 사진 자료가 붙어있다.
책은 6장이며, 1장 ‘개항의 현장: 인천, 강화도’에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강화도조약의 프랑스, 미국, 그리고 일본, 열강의 조선 침략의 현장, 신기한 물건이 넘쳐나는 제물포 개항장, 구미 열강의 조선 문호개방요구와 당대의 분위기, 역사적 장소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를 2장 ‘조선 근대화의 현장: 북촌, 정동’에서는 재조관료와 권력층은 경복궁 부근의 북촌에, 한량, 선달 등 별 볼 일 없는 양반들은 남산 밑에 살았다. 이 장에서는 근대화의 노력과 좌절의 현장을 담았다.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을미사변, 정동의 각국의 공사관들, 그리고 대한제국의 흔적, 3장 ‘일제 침략의 현장: 남산, 명동, 남대문’ 남산골 한옥마을 역사의 현장이다. 일본군대의 주둔지였다가 수방사로, 그리고 한옥마을로 변했다. 4장 ‘독립운동의 현장: 북촌, 종로, 효창공원’에서, 3.1운동을 불꽃이 타오른 중앙고 숙직실, 여운형 집터, 만세시위현장, 유해로 돌아온 독립유공자를 모신 효창공원 삼익사 묘역, 효창원과 현충원, 5장 ‘혼란과 격동의 현장: 이화장, 경교장, 서대문형무소, 4.19기념탐’에서 이승만의 이화장, 김구의 경교장,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갇혔던 악명높은 서대문형무소... 6장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창신동, 청계천, 을지로, 청와대,세종대로...
구한말,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해방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오랫동안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라고 명쾌하게 공간과 장소를 정의한 중국계 미국지리학자 이푸투안<공간과 장소>(사이, 2020)의 말처럼 장소를 보다는 선인들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있는 곳이다. 경험과 삶 속에 사건 사고가 있었던 곳에 애착이 녹아들고 묻어날 때 장소가 되니, “장소는 곧 역사의 증언”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장소는 곧 역사의 증인
이 책의 시작은 서구열강의 조선 문회 개방을 요구하면서 벌였던 병인양요, 1866년(고종 3년)에 병인박해를 명분으로 프랑스가 일으킨 전투이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했던 가톨릭 탄압으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사망하자 이를 구실 삼아 천진에 있던 프랑스 극동 사령관 로즈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였다. 강화 이궁과 외규장각 등에서 각종 무기, 수천 권의 서적, 국왕의 인장, 19만 프랑 상당의 은덩이를 약탈했다.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이렇게 강도질해서 가져갔던 보물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시 목적이라서 양국의 친선우호를 전제로 대여형식으로 그렇게 한국 땅에서 우리의 귀중한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온 전시물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들, 우리가 이런 역사를 제대로 알고 본다면 어떤 심경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을 놓치지 않았다. 제물포의 당대 모습 속에서 서구열강의 조선 침략 야욕의 악취를 느끼는 대신에 앞뒤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좋아하고, 이런 서양문물의 수혜대상자라는 특권의식까지...
역사를 알고 장소를 보면 상상이 가능해진다
북촌, 남산, 정동과 일본인만을 위한 공간 남촌과 경제중심지 남대문통이 그러하다. 그때의 현장에 닿는다면... 모습은 변해도 간직한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제대로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그 자리에 옛 모습을 숨긴 채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 "강화도조약"이 조선이 원했고 평등한 조약체결이었다면 연무당 터는 한국의 근대화를 알리는 상징으로 명소가 됐을 듯하다. 바로 이곳에서 체결한 조약 때문에 일본은 조선 침략의 발판을 놓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이곳에서 체결된 강화도조약에 의해 우리나라는 인천, 부산, 원산을 일본에 개항하게 되었다.“라는 연무당 소개 문구를 두고 "조약체결에 따른 개항 자체가 조선이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것(중략)...1876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의 역사는 의미가 없는 셈"이라고, 이는 고쳐 써야 한다고... 글쎄다. 불평등조약에 따른 "개항"이란 이미 침탈당했다는 의미다. 어떻게 고쳐써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말이 없어서 아쉽다.
이렇게 공간과 장소, 장소의 얽힌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 공부가 될 듯하다. 강화도, 서대문형무소, 북촌의 한옥, 남산골 한옥마을, 정동에 즐비했던 공사관, 미국 대사관저, 이승만이 이화장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화장의 벽과 마룻바닥은 알고 있을 터, 경교장 김구를 향해 쏜 육군소위 안두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의 발걸음을 기억하는 마룻바닥, 총알에 담긴 감정은 고스란히 사방 벽들에게...눈으로 보고 주위 둘러보며 눈을 감고 그때 그날로 돌아가서, 장소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