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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쓸쓸한 영혼 여성 작가들 - 숙명 같은 삶을 딛고 전설이 된 15명의 여성 작가들
김대유 지음 / 시간여행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야기는 햇빛에 비추면 “역사”, 달빛에 비추면 “신화”
지은이 김대유는 열다섯 명의 여성 작가의 에세이를 이 책에 담았다. 이야기는 햇빛에 비추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비추면 신화가 된다. 참으로 촌철살인이다. 세상에 드러내면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는 여성의 눈에 비친 일상이 밤에 남몰래 홀로 숨어서 읽는 이야기는 신화가 될 수밖에, 모든 시대 2등 인류로 살았던 여성들의 그리움은 무슨 빛깔이었을까?, 달빛에 바랜 진실을 찾는 일, 그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지 않았을까? 이 책<높고 쓸쓸한 영혼 여성 작가들>, 숙명 같은 삶을 딛고 전설이 된 여성들이라는 지은이의 평가,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실존철학자 시몬느 드 보부와르의 1949년 책<제2의 성>(을유문화사, 2021)에서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한정되고 달라지지만, 남성은 여성에게 그렇지 않다. 여성은 우발적 존재이다. 여성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비본질적이다. 남성은 주체이다. 남성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여성은 타자이다. 비본질로서의 여성이 본질로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힘으로 그러한 반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23쪽)
이 책 속에 담긴 열 다섯 명의 작가는 활동했던 시기도 제각각이지만, 여성은 2등 인류라는 점을 인식, 그 벽을 넘어서 보려 했던 이들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물론 페미니스트인 작가도 있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완서, 미우라 아야코는 일본의 박완서 같은 존재일 듯, 그가 1964년에 쓴 <빙점>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귀족 출신 작가로 평민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준 버지니아 울프, 허난설헌, 에쿠니 가오리,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 일본의 잔혹성인 동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모더니즘의 시를 연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 에밀리 디킨슨, 릴케, 니체와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높고 쓸쓸한 영혼 <토지>의 박경리, 복잡성의 페미니즘, 실비아 플라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욕먹는 여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제2의 성>으로 무신론적, 여성주의적 실존주의를 탐색한 시몬느 드 보부와르,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 엄마를 부탁해 작가 신경숙까지
욕먹는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에 쏟아진 비난, “기획출판”의 의도
그의 연작<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었던 만큼, “욕먹는”이란 지은이의 표현에 눈길이 간다. 왜? 라는 의문과 함께,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평가는 일본다움으로 로마사를 재조명하여 매우 성공한 작가라고, 지은이는 인터넷상에서 그의 글쓰기에 관한 시비로 비난을 많이 받는 작가라는 것인데, 그만큼 다양한 논점이었나, “로마인 이야기”가 뭘 기준으로 써야 하는가?, 정사 삼국지보다는 나관중의<삼국지연의>를 정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지은이는 시오노 나나미를 향한 비난의 몇 가지로 정리해서 싣고 있다. 흥미로운 지적이다. <로마인 이야기>가 한국 내에서 400만 부가 팔렸으니, “시오노 나나미” 현상이 일어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수입소설은 기획출판으로 인기를 만들어 내는 마케팅?,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이 왜 한국에서 인기가 높고 책이 많이 팔렸는지 의아스럽다. 기획출판이 어떻게 국내 독자들은 유인하는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강의 책도 3, 4백만 부가 팔렸는데, 노벨상 수상 이후에 그렇다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의 세계화가 일으킨 결과다.
“시대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어낸 작가들, 활동했던 시대가 달랐지만, “공통점”이다
지은이의 탁월한 분석이 돋보인다. 2024년 노벨문학상의 트렌드 기준이 미래를 여는 ‘비폭력이성주의’에 있었기 때문이고 <채색주의자>가 이런 기준에 맞았기에 작가 한강의 수상이 가능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수긍할 만한 견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숲>은 군부독재가 끝나고 대통령 직선제가, 젊은이들의 뜨거운 사랑과 갈망의 욕구와도 관계가 있었다. 과학적 사고가 트렌드였던 88 올림픽 이후 분위기에 나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가...
신경숙의 이야기, 질박하고 깊은 사유가 담긴 작품들
신경숙의 사유, 가난했던 작가는 전두환의 과외 금지령으로 기회를 얻었다. 술집 여주인의 외동아들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입주 과외를 하게 된다. 입주한 외딴방 옆에는 기생 술집 ‘다정’과 YWCA 야학이었다. 작가와 같은 또래의 여성들이 한쪽에서는 젓가락을 두들기며 웃음을 팔고, 또 한쪽에서는 낮에는 공장 생활을 하고 밤에는 야학에 나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곳, 작가는 야학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그녀들과 비교할 처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1980년대를 지나는 내 이십 대의 청춘 역시 불우했다고... 저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처럼 오직 가전 것은 자신이 처한 ‘내 인생뿐’이었다고, 물론 신경숙을 이야기할 때면, 박완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색깔이 다른 이들, 미우라의 빙점도 눈여겨 봐야!
이렇게 펼쳐지는 열 다섯 명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신경숙이 그렇고, 박완서, 박경리, 허난설헌, 일본 가정에 한 두 권쯤 놓여있는 소설책 중에 아마도 <빙점>은 적지 않을 듯, 고서방 서가에 꽂혀있는 소설군 속에 빙점은 늘 몇 권씩은 있었으니. 미우라 아야코는 그만큼 힘 있는 작가였다. 그 힘의 원천은 ‘반성’이다. 1922년생이었던 미우라는 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천황 군국주의를 교육한 자신의 부끄러움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그녀는 그 죗값으로 평생 자신이 결핵 등 온갖 중병에 시달리는 것이 잘 된 것이라고 성찰하여 일본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휴머니즘이 그의 작품의 키워드였다. <빙점>에서 일본인의 심리구조 혼네와 다테마에(본심과 겉이 다르다는)를 끄집어 들고 해부하고 끝장을 보여줬다.
지은이의 작품을 보는 각도, 접근하는 태도... 이 책은 세계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들의 작품을 읽어볼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