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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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는 죽음의 역설인가,


삶과 죽음은 쌍둥이처럼 동전의 양면이나 명암과도 같이 늘 함께 움직인다. 다만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을 뿐, 어느 날 갑작스레 죽음이 다가왔다는 문학적 표현이 바로 그 느낌이다. 어제까지 내일을 생각하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 퀴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를 밟아간다는 건 일반적인 이야기다. 


아무런 준비도 생각도 못 한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면... 실은 죽음이란 자체를 무의식 속에서 애써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날을 맞이한다는 게, 불안하기에 기억 저편 어두운 곳에 묻어버렸을 뿐이다. 인지 편향을 유도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뇌가 이런 걸 귀찮게 여겨서일까?, 어쨌든 죽음은 불안하다. 제아무리 준비해둔다고 해도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 장자는 아내의 장례를 치르면서 북을 치고 춤을 췄다고, 이 험한 세상에서 고생하다 이제 해방되어 편한 곳으로 갔다며 기뻐했다는 것인데 이는 “생사관” 죽음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것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철학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데, 이 역시 삶과 죽음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유성호 역시, 죽음은 준비하는 것이라고, 귀천 구분 없이 평등하게 찾아오는 노화와 죽음, 단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래서 그는 “죽음을 떠 올릴 때 삶은 선명해진다”라는 표현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무소유의 법정대선사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늘 주변을 단출하게, 꼭 필요한 것만, 소유욕이 생기면 번민이 생기고, 죽음과 삶의 자연 섭리 또한 바꿔보려는 과욕을 부리게 되니, 내일 죽더라도 오늘 정리를 깔끔히 해두었으니, 편히 갈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옛 한국인에게 죽음은 삶의 완성이었다는 점 또한 잊지 않아야 한다.


책 구성은 세 개의 노트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노트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다’ 죽음은 섭리이며, 노년의 불가역임을, 죽음을 접하는 세 가지 관점이라는 인식, 2인칭 죽음에 필요한 대처, 죽음의 준비와 유한한 삶, 좋은 죽음 없이 좋은 삶은 없다는 명언을 남긴다. 두 번째 노트는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준비’ 생사관, 죽을 권리, 딜레마, 마지막 선택, 존엄사 1과 2, 그리고 전환을 말한다. 세 번째 노트는 ‘삶을 기록하는 작업’에서는 유언, 명사의 말, 기록, 나의 장례식, 작별, 인생의 의미, 젊은 그대에게, 삶의 지침서다. 지침서는 오늘의 유언이 삶을 향한 다짐이 되는 것이다. 죽어서 남기는 후회와 바람이 유언이 아니라 앞으로 죽음에 이르는 그 날까지 나는 어떻게 살겠다는 자기 다짐이다. 

아무튼 이 책의 핵심은 “죽을 떠올릴 때 삶은 선명해진다.”라는 문장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읽는 이의 몫이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나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힘껏 살아가기 위한 동력이 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더 잘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역설이 아니라 참이다. 


죽음을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마주하라.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유언을 쓴다 


지은이는 후회 없는 삶을 원한다면 죽음과 대면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한 해에 한 번씩 유언을 쓴다고 했다. 즉, 내 삶을 향한 다짐이랄까, 자기 성찰이기도 하다. 지난 세월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를 돌이켜 볼 여유가 없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돌이켜 볼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니라 실은 두려워서다. 내가 내 모습을 자신 있게, 또 용기를 내서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일 뿐이다. 되돌아보면서 반성하기보다는 변명을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노라고. 죽음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은 정신건강이다. 제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금 여기에서 죽는다는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하라고 하면, 어떤 말을 담을 것인가, 바로 이 대목이 전환이다. 앞으로는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든가 하는 따위의 말은 나올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렇게 살겠노라, 예전에도 이렇게 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노라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의 욕심도, 인색한 사랑도, 무한정 솟아나는 애정으로 그렇게 자중자애는 물론 주변을 사랑할 것이다. 배려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은이가 말했던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유언을 쓴다”라는 것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자신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세 개의 노트는 “죽음에 관한 입문”으로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독자의 연령층은 관계없을 듯하다. 보편적인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에 말이다. 


죽음의 역설일까, 죽어야 산다는 말과도 같다. 지금에 있는 나를 죽이고 내일의 나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후회없는 삶을 위한 삶의 지침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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