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조민영 옮김 / 도도서가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반유대인 정서와 시온주의의 반아랍 정서 ”혐오는 전염된다“
이 책<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은 지은이 비비안 포레스터가 2004년에 내놓았다. 그는 프랑스 국적의 유대인, 작가이자 비평가로 20세기 21세기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임 없는 갈등의 기원을 좇는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싸움은 결국 승자 없는 제로섬게임으로 이 두 국가의 싸움을 때로는 부추기고, 때로는 방관하는 서구의 강대국들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다.
시온주의에 관해서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공개된 내용을 가지고 비판한다. 정작 시온주의자들은 억압
받고 차별과 배제됐던 역사적 분노를 팔레스타인을 향해 폭발하고 있으며 이는 식민주의자들의 식민지지배방식과 다를 게 없음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유대인의 고난사와 같은 유대인이면서 이들의 참혹한 고난을 비난하는 이들, 그리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못 본 척했던 강대국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온주의도 비겁함과 식민지 제국주의와 다를 것 없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우리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다시 살펴볼 수 있도록 끌어주고 있다.
책 구성은 2부다. 1부 ‘비극의 서막’에서는 20세기 초 반유대 정서가 팽배했던 유럽,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유대인도 같은 사람이요 시민이라는 생각들이 점차로 유대인 배타주의 ‘반유대인정서’로 1차 세계대전 이후 1933년부터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우슈비츠로 상징된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방관하고 외면하면 짐짓 모른 체하는 강대국, 보편적 인권보다는 자신들의 국익 챙기기에 바빴었는데, 지은이는 이들의 행태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다(만약 강연이었다면 말이다).
2부‘시온주의’에서는 테오도르 헤르첼, 시온주의를 주창자의 삶과 그의 생각을 다루는데, 헤르첼은 기자로 1894년 프랑스에서 육군대위 드레피쉬 간첩 사건 재판을 취재했는데,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반유대 인의 정서와 흐름을, “유대인 게 죄다”라는 것처럼,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유대인 수용시설에서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과는 선을 그었다. 반유대세계에서 탈출하자, 나라를 건설할 곳으로, 독일 나치 정권 아래서 죽어간 유대인들의 죽음 방식과 항거하지 못함을 비난하면서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대목까지, 우리가 아닌 시온주의가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보여주고, 이후, 팔레스타인 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영국의 태도 등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유럽인들이 무섭게 여기는 것은 ‘유대인의 학살’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이 두렵게 여겼던 현실은 “유대인 남성과 여성 및 아이들이 몰살당하고 고문당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이 풀려나 자국 영토로 밀고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상황이었다.”(책 44쪽) “우리나라에는 안 돼! 우리나라에는 안 돼!,” 1943년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앤서니 이든이 한 이 말은 유행어나 후렴구처럼 널리 퍼졌다.
미국은 어떠했을까? 1933년 국무부 법률 고문은 “어떤 유대인이 독일에서 추방되었거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기를 희망한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는, 독일 당국에 서류를 요청할 수 있는 합리적 가능성이 있다고 할 때, 해당 문서 제출을 면제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즉, 독일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독일에서 당신은 우리가 핍박할 대상이며, 즉시 국외로 나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모를 정도다. 이후 1941~1945, 3년 반 동안 미국이 참전했던 동안 유대인 난민은 2만 1,000명으로 할당량의 10퍼센트에 불과, 비자 취득 또한 까탈스러웠다. 33년에 국무부의 견해가 답습된 형태다. 당시에는 이미 나치에게 가진 것을 다 빼앗겨 돈도 집도 절도 없어서 미국으로 옮겨가려는 이들에게 이민 신청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를 증명하라면, 오지 말라는 것과도 같았다. 친척이 있더라도 이민의 부양 의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도주의” 태도는 애초부터 없었다. 이것이 철저하게 자국에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는 강대국의 본디 얼굴이자 본질이다.
시온주의에 관한 생각, 그들 역시도 반유대인정서에 전염된 반아랍 혐오증 환자들이었다
헤르첼은 반유대인 정서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들만의 국가를 만드는 걸 생각한다. 1896년 “유대인의 국가”라는 팸플릿을 만들어 로스차일드 등에 보냈다. 그는 반유대인 분위기를 수용, 이를 지렛대 삼아 우리가 나아갈 길은 유럽이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이라고, 유대인을 향한 차별과 배제에 항거한 것이 아니었다고 비비안은 분명하게 지적한다. 인도주의, 인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온주의라고, 영국 등의 당대 강대국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보자. ‘유대인에게 유럽의 땅을 내주어 나를 세우라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지만, 서구인이 다른 서구인에게 다수의 원주민이 사는 아랍 땅을 주어 주권 국가를 세우게 하는 것은 그래도 되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이는 헝가리 출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아서 쾨슬러의 논평이다. “한 국가가 제3국과의 영토를 제2 국가에 공식적으로 약속했다”라고, 이들에게 아랍 땅, 팔레스타인은, 제 맘대로 주물럭거려도 되는 그 정도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바로 이 대목인 것이다.
1942년 12월 팔레스타인 중부 도시 나블루스의 술레이만 투칸은 “어떻게 팔레스타인이 전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유대인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고, 본래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라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만 피난처를 찾아야 할 정도로 지구 전체의 땅이 줄어들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한 민족을 위해 다른 민족을 죽이는 것이 정의롭고 공정한 일입니까?
시온주의는 이렇게 폭력적으로 팔레스타인을 나눠가지게 됐고, 지금은 아예 말려죽이려고 작정한 듯하다. 강대국이 쥐락펴락하는 유엔에서 회의를 열고 발언권도 없었던 팔레스타인의 절반을 유대인에게 준다고 결정한 것은, 마치 대한독립을 청원하려 했던 헤이그 특사가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를 일본의 땅이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딱 일제강점기의 한국과 같은 처지가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