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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적과 동침에서 살아남는 법, 꽤 긴박한 표현이다. 지은이 엘렌 스퇴켄 달은 성병을 연구하는 전문의다. 그는 말한다. 성병은 도덕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병에 걸렸다는 사실로 우리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아니다. 성병은 섹스하니까 생기는 것이니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의학계의 “성병은 의학계의 공포소설로 불릴 만하다.”라고 말한다.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질병을 진료할 때는 아주 적은 것으로 엄청난 것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성병 환자들은 가끔 고립감을 느끼고 고통을 혼자서 삭인다. 많은 사람이 감염과정을 부끄러워하고 병을 옮길까 두려워한다. 위에서처럼 도덕성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사회통념이 가만두질 않는다. 난잡, 함부로 놀린다는 따위의 네거티브 여기서도 남녀의 인식 태도가 확연히 구분되는데, 수치심을 왜 여자가 더 많이 느껴야 하는지?, 이는 뭐 별론으로 한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내용과는 또 다른 영역이니,
성병에 관한 인식개선이 이 책의 메시지다. 구성은 11장이며, 1장 ‘대홍수의 해’에서는 임질에 관한 약간의 지식이, 2장 헤르페스, 3장 생식기의 사마귀, 4장, 매독, 5장, 질편모충염, 6장 클라미디아의 땅 노르웨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7장 사면발니, 8장 HPV 관련 자궁경부암, 9장 미코플라스마, 10장 옴, 11장 HIV와 AIDS 순으로 이른바 “약간의 지식”을 배워보자는 것이다. 성병은 곧 수치심이라는 왜곡은 인제 그만, 감기나 설사와 뭐가 다른지?,
임질과 성적 흥분, 임질과 매독이 혼동되던 고대 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의사였던 갈레노스는 2,000년 전에 임질이나 매독 등에 관한 정확한 증상이나 기록은 없지만, 남자의 음경에서 액체가 뚝뚝 떨어져 스며드는 병이 곧 임질이라 했고, 그의 동료인 카파도키아의 아레테우스는 임질을 통증 없이 정액이 계속 분출한다고 묘사했다. 그는 여성들도 같은 병을 앓을 수 있지만 <그들의 정액은 성기 부위의 자극과 쾌락, 남성과 관계하고 싶은 부도덕한 욕망 때문에 분비된다>고.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아있단다. 성적 흥분과 임질의 구별도 못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로부터 한참이 흘러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외과 의사 존 헌터는 임질과 매독을 같은 질병이라 확신했다. 자신의 몸에 실험했던 헌터, 임질걸린 사람의 성기에서 고름을 빼낸 칼(세모날이라는 의료용 칼)로 자신의 성기에 찔렀다. 약간의 고름으로 매독에 걸린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훗날 헌터가 심혈관 질환으로 죽자, 많은 이는 매독이 혈관과 심장에 자리 잡아 순환계를 막을 수 있으므로 실제 그가 매독에 걸렸음을 증명했다고 믿었다.
헤르페스와 수치심
헤르페스 단순 포진 바이러스 감염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흔하다. 이 질병은 거의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런데 헤르페스 수치심은 다른 성병과 비교하면 더 크다. 물집보다 더 큰 게 수치심인데 이상한 점은 새로운 감정이라는 것인데, 과학기술 발달로 1960년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구별할 수 있게 되면서 2형 생식기에 생기는 헤르페스가 탄생(본디 있었던 것이지만), 이는 성적 자유를 억압하려는 보수 세력에 의해 헤르페스 수치심이 완전히 과장됐다.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자궁경부암
성적으로 활발한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HPV에 걸린다. 이는 피부 세포를 변화시키지만, 대부분은 저절로 교정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데, 수년에 걸쳐(평균 15년 이상) 자궁 경부의 감염된 세포는 일반 세포에서 암세포로 변한다. 매년 300명 이상의 노르웨이 여성이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70~90명이 이 병으로 죽는다. HPV 예방 백신과 헨리에타 랙스의 암세포는 다른 사람의 암세포와 달리 몸 밖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많은 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셈이다. 인체 세포에 46개의 염색체가 있음을, 암 치료제와 소아마비 치료제의 개발도, 헬라 세포의 유전물질에서 HPV -18 바이러스 DNA가 발견됐고, 암과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백신으로 이어지게 됐다.
'천형' 매독에 코가 없어지는데, 플라밍의 페니실린이 없었더라면,
매독 이야기는 일본의 TV 드라마 “진”에서 근대일본 메이지기의 료마가 활동하던 때를 배경으로 타임슬립이 이루어진다. 현대와 19세 말로, 여기서 현대에서 옮겨간 의사가 패니실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매독’의 공포가 재현되는데. 프랑스 병, 1494년 샤를 8세가 벌인 이탈리아 나폴리점령과정에서 일어난 질병이 매독이었다. 성적 접촉으로 샤를 8세는 물론 순식간에 수천 명이 죽었다. 치료에 수은을 사용했다. 수은이 타액과 땀 생성을 증가시켜 체액 병리학의 접근 방식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성병의 기원까지는 아니지만, 성적 접촉을 통해 옮기는 병, 그리고 시대마다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에 꼭 끼는 게 성병이었다. 15세기의 매독, 그리고 한동안 동성애의 천형이라고 불렀던 HIV는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IDS, 에이즈)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바이러스이다. 이 또한 정복돼가는 것이니, 아무튼 은밀한 침실의 세계에서 열린 세계에서도 다른 질병과 다르게 늘 수치스럽게 여겨야 했던 질병 성병이 제대로 된 시민권을 얻고, 공개적으로 우리가 살다 보면 당연히 걸리거나 전파되는 병인데, 왜 수치로 여겨야 하는가, 이런 의미에서는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병리학적으로는 특별한 내용을 더해주지는 않지만, 환자가 왜 수치스러워해야 하느냐며 환자에게 당당하게 나서라고 말하는 대목은 이 책의 의미를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