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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여기에서 실린 작품들 19세기 말에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롯하여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등 7편이 실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는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물음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묻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의 자유로움, 함께 하는 나눔, 공동체의 삶의 이상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기독교적 인간애와 자기완성이라는 이른바 ‘톨스토이주의’가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아마도 톨스토이 단편선 자체를 내놓은 이유는 각박하다 못해 초 개인주의로 흐르는 변화 속에서 사회라는 공동체가 적어도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보인다.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세태에 전하는 사랑과 용서, 구원의 목소리를 19세기의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지주로서의 삶이란 당연한 질서, 농노제가 기반이었던 사회, 기득권층의 상징인 지주, 그가 땀 흘리며 살아가는 농부로 의식 전환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글쓰기 또한 눈높이에 낮춰,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내용이 되도록. 문학의 힘이 발현되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민담들을 톨스토이가 소설로 썼다.
조선이라하여 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선 말기 정조의 신망을 받던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당대 양민들의 신산한 삶과 세태를 그린 시 “교지를 받아 암행 감찰해 적성촌 객사에 들어 쓰다”[奉旨廉察到積城村舍作 (봉지염찰도적성촌사작)]에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중략) 큰아이 다섯 살에 기병으로 등록되고, 작은애도 세 살 때 군적에 올라있네, 두 아들 세금으로 오백 전을 바치고 나니, 어서 죽길 바라는데 베옷 입을 형편이라니, 갓 난 강아지 세 마리는 애들과 같이 자고, 호랑이는 밤마다 울타리 밖에서 으르렁거려, 사내는 산에 머물며 나무하고 아내는 절구질 품팔러 가, 한낮에도 문 닫혀 있어 애처롭고, 낮에는 두 끼를 거르고 밤에야 돌아와 밥을 짓네, 여름에는 매일 가죽옷을, 겨울에는 갈포 옷 입고, 들 냉이 캐려고 땅 녹기를 오래 기다리지, 동네 용수에서 술지게미 나오려면 오직 술이 익어야 하고, 비축미를 봄이 오기 전에 다섯 되나 꿔 먹어, 이 일로 올해도 정작 살길 막막하네(생략)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갖춘 양반계급이 노비들의 삶과 소작농의 고단한 삶, 이것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다는 자각, 하지만 개혁을 넘어 혁명에 이르는 움직임은 없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가난한 구둣방 부부 세몬과 마트료나와 천사(미하일)의 만남, 하느님은 세 가지의 지혜를 깨닫게 했다. 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내부에는 ‘사랑’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지식’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모든 인간은 자신을 살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이어지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라는 소설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내가 어떤 형상과 모습으로 나타나든지, 사랑으로 대하면 그것이 곧 신이며,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 헌금하는 것 모두 자신을 살피는 마음이지 남을 살피는 마음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인간의 한 없는 욕심의 끝은 결국 자신이 죽어 누울 자리 하나 겨우 얻을 뿐이라는 교훈을 일러주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의 형제들 군인인 세몬 큰형, 배불뚝이 타라스 둘째 형, 그리고 귀머거리 여동생 말라냐와 부유한 농부인 아버지, 이들을 유혹하고 욕망으로 유혹하는 도깨비들의 농간에도 바보 이반은 부동의 신념이 있었다. 어서 와 같이 살아. 위도 아래도 없고, 하라고 괴롭히는 사람도 하지 말라는 사람도 없는 그런 곳이야, 다만, 손에 못이 박인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있지만, 못이 박이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반 왕국의 관습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 일이 어떤 의미와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는 몰라도, 공동체에 유지하고 서로 돕고 돕는 관계가 아니라면 이 또한 이반 왕국에서는 별 가치도 의미도 없다.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의 실천행으로 그가 가진 철학과 신념을 보여주었고, 세상에 작은 돌을 던져 잔잔하면서도 널리 파문을 일으키는 이미지다. 1882년 모스크바의 빈민굴을 돌아보면서 그는 종교, 윤리적 문제에 대한 사상을 사회제도로까지 확대, 사유재산을 부정하게 됐고, 이때부터 부인과의 불화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 요즘도 사회운동가들에게 듣는 이야기이니...모처럼만에 톨스토이가 들려주는 어른을 위한 “우화”를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21세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힌트를 19세기의 톨스토이 작품에세 힌트를 찾는다. 지금 우리 앞에 톨스토이를 소환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