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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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의 두 번째 장편소설<홈랜드 엘레지>은 자전적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옮긴이 민승남은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가족과 친척,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이미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너희 나라로 가버리라는 말을 듣고 산 지 오래, 내가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내 고향이 여기 미국인 것을, “고국의 애가” 조국의 비통한 노래라는 제목으로 통하는 것일까, 


화자인 아야드 아버지 시칸데르 악타르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의료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제3세계 출신 의사들에게 특혜를 줘가면서 영입하던 시기에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이민왔다. 그의 무한 애정의 대상, 미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자 위대한 기대의 땅이었다. 부정부패가 곳곳에서 넘쳐나는 아수라장 파키스탄을 탈출했다는 안도감, 자신만 성실하게 일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50년이 지나도록 인종적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한데다가 의사의 자부심마저 무너져 그렇게도 얕잡아보던 고국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게 되니, 그의 아메리칸드림은 한낮의 꿈이 돼버린 것이다. 결국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되는 건 있는가보다. 




아야드의 어머니 역시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나왔다. 처음에는 남편 시칸데르처럼 미국 신화에 젖었다가, 금세 식민주의, 약탈 식민주의, 즉 미국은 천생 남의 나라를 약탈하면서 몸집을 불려 나가는 그 무엇임을 깨닫게 되면서 미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고 몇 차례 재발한 암과 투병하다 세상을 뜬다. 


소설 도입부터 쏟아져 나오는 악타르 집안 이야기는 아야드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해 못 할 만큼 맹목적인 미국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는 심장외과의로서 희귀성 심장질환인 부리가다 증후군 관련 미국 최고의 의사로 인정받고, 트럼프의 심장 주치의가 되어 몇 년 동안 트럼프와 개인적 친분을 쌓았지만, 트럼프가 부리가다 증후군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면서, 그와의 관계가 끊어지지만 트럼프의 강한 자아와 화려한 성공을 보며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 시칸데르, 아마도 그에게는 트럼프가 우상이었는지 모른다. 18년 후, 2016년에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하자 남몰래 그를 지지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이슬람등록법이 시행돼도 자신은 등록대상이 되지 않을 거라며 내 아들인 너도 마찬가지로 그럴 것이라고, 무슬림을 관리하고 감독하겠다는 것인데, 시칸데르는 뼈속까지 미국을 사랑하며 무슬림도 아니기에 그럴리가 없다고 믿는 것인가,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꽤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야드는 미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해 본 적 없는 미국태생의 파키스탄이민 2세다. 그러나 이민자는 어디까지나 이민자, 911 이후 무슬림을 향한 미국 사회의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이 시작되면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극작가로 활동, 작품 속에 미국을 냉철하게 보고 비판을 가하자, “너의 정체성은 뭐지, 반미주의자” 기독교 땅에 사는 무슬림의 미국적 딜레마와 고통을 글에 담아 퓰리처상을 받고 명성을 얻지만, 그의 눈에 비친 무슬림의 배타성과 폭력성,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 모두 비판의 대상이었다(오십보 백보), 거침없이 그의 비판행보는 양쪽으로부터 배척당한다. 아무래도 미국시민인 무슬림에게 적용하는 잣대와 백인에게 적용하는 잣대, 아시안, 아프리카, 히스패닉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제 각각 존재한다. 





아버지와 함께 미국행을 택했던 리티프 아완, 아야드 어머니가 가슴에 품었던 사람, 하지만 이미 약혼한 터라, 아버지를 택했던 그런 과거가... 리티프의 이야기는 곧 911이 왜 일어났는지를 말해준다.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대항하도록 빈라딘에게 무기를 공급하던 미국은 돌연 태도를 바꿔, 손을 떼버리자 ‘토사구팽’의 처지로 전락했던 전사집단(무자헤딘)은 미국을 공격하는데, 이때 누군가의 손에 살해당한 리티프, 당시에는 엄연한 미국시민이었지만, 누구도 그를 미국시민이라 부르지 않았다. 소설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911의 배경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에 이르는 일련의 미국의 약탈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해준다. 작가는 글로 말하고, 세상의 불의에 글로 항거한다. 인종의 용광로, 샐러드볼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적극적(긍정적)조치, 어퍼머티브 액션은 60년만에 위헌판결이 나오고, 2021년 대선에 불복한 트럼프, 그의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으로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리는 초유의 헌정질서가 유린된,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클린턴과 아들 부시가 어떻게 국내 정치에서 몰리는 상황에서 국면을 전환하는지, 단골 메뉴가 무엇인지, 바로 약탈이다.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빼앗고 죽이는 것으로 미국 시민의 눈을 가린다. 이 소설은 미국의 어두운 면을 다 까발린다. 중동이 왜 화약고일까, 미국의 짜놓은 시나리오라는 점을 꼬집고, 무슬림 또한 꾸짖는다. 




아야드가 이모에게 극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그의 이모는 몇 권의 책을 가져다 주면서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꼭 읽으라는 대목이 있다. 이 때,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오리엔탈리즘>을 반드시 읽으라 추천했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읽는다는 아야드에게 이모는 그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대목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이 소설 속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헤처보면 또 다른 담론과 서사로이어질 듯하다.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론까지, 그가 군중을 어디로 몰아가는지까지, 한편의 역사라 할까, 미국이 필요해서 불러들인 사람들, 이민자 2세대에게 인종차별을 하며, 덧씌운 종교적 주술, 여러 코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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