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 감정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 훈련 필사 노트
김한수 지음 / 하늘아래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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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감정의 상처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지은이 김한수는 마음 훈련 필사(베끼어 씀) 노트<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에 온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며, 또 일하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생겨난 고단함, 이 속에 담긴 감정의 찌꺼기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종종 행복을 방해하는 감정들을 필연,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마음의 큰 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천연 치료 효과가 있다. 심리학에서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권장하기도 하는데, 필사 또한 그러하다. 위인들의 아포리즘을 읽고 문장 속 의미를 되뇌며 적는 과정에서 쌓인 감정들을 내려놓는다. 


이 책에 실린 14개의 문장, 교만함, 부정적인 생각, 증오와 분노, 많은 걱정,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기, 불필요한 경쟁과 비교, 불평과 불만, 고정관념과 고집, 이기심과 개인주의, 거짓으로 나를 포장, 욕심과 탐욕, 과거에 대한 후회, 나는 몇 개나 해당할까, 위에 적은 키워드는 종교적이거나 철학적, 심리적 믿음일 수도 있다. 여기에 실린 14개는 예시다. 자신의 주변에서 버려야 할 것들을 적어놓고 생각해보고, 문장을 필사해 봄으로써 맑은 정신과 행복한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거만(倨慢)함에 관하여 


거만이란 뜻은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다. 한자를 보자 사람의 마음에 만연하게 자리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들어있는 ‘거만’ ”이알이 곤두선다“ 가난하던 사람이 조금 잘살게 됐다고 큰소리를 치거나 거만하게 굶을 비꼬는 말이다. 거만 피우는 모양을 ”꼭뒤가 세 뼘“, ”배가 남산만 하다. “저는 잘난 백정으로 알고 남은 헌 정승으로 안다, 대신 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는 등, 여러 장면에서 쓰인다. 


거만은 인간이 자기를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에서 생기는 기쁨이다. (B. 스피노자)


거만은 자신을 남보다 위대하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겸손과 성찰만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윤리와 도덕적 삶에 관한 사상으로 유명한 스위스 법률가, 철학자인 카를 힐티는 “거만은 항상 상당량의 어리석음에 결부돼 있다고, 거만은 항상 파멸의 한 걸음 앞에 나타나며, 거만해지는 사람은 이미 승부에 지고 있다고, 거만함은 단순한 자만이 아니라 가장 교묘한 착각, 높은 곳에 오를수록 발밑을 조심해야 하듯 거만함을 경계하는 자만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 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거만“에 관한 아포리즘을 소개하고 있다. 또 허영에 관한 버트런드 러셀의 아포리즘 ”허영은 어떤 한계성을 넘으면 온갖 활동의 기쁨을 말살한다. 그래서 반드시 우울과 권태로 끝난다. 대체로 자신이 없는 데서 허영이 생긴다.”라고,


우리가 버려야 할 감정들에 관하여


거만이나 허영, 그리고 오만과 교만은 모두 한 틀 안에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 본능에서 비롯되고, 러셀의 지적처럼 자신이 없음에서 누군가에 기대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동물의 세계에서도 왜소하게 보이면 먹이가 될 수 있기에 공기를 몸 안에 넣고 부풀리는 개구리처럼, 다만, “한계, 적절함, 균형”을 아는 게 어렵다. 러셀의 말처럼 허영의 끝에 남는 건 우울과 권태뿐이다. 


부정적인 시각과 연결된다. ‘인지 왜곡’ 사람들은 가끔 사소한 실패를 확대하거나, 특정 사건만으로 자신 전체를 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인지 왜곡은 하루아침에 버릴 수 없기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하다. 긍정심리학적인 접근이다. 우울, 불안,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카프카, 에리히 프롬 등의 아포리즘이 실려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도전해야 우리 삶은 더 깊어질 수 있다. 조선 시대 소학 동자 김굉필은 <소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모든 학문의 입문이며 동시에 인간교육의 절대적 원리가 됨을 역설, 자신의 일생 <소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했다. 김종직의 문하였으며, 나중에 조광조의 스승이 되는데, 소학 속에서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이른바 자기성찰과 감정의 찌꺼기를 버리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필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지은이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계기라고, 하지만 또 다른 효과도 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자식부부에게 자신의 작품 필사를 시켰다고, 소설을 읽는 것과 필사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목적의식이 있었다. 그가 소설을 쓸 때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며, 후일 저작권수입 또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지대를 받는 것, 그저 재산으로서 인식은 자식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방하(放下:마음 내려놓기, 지위든 권력이든 기득권이든 모두 내려놓는 것)의 마음을 담아 적는다는 것 등을 다짐하는 것들 또한 필사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필사를 그저 베끼어 씀이라는 단순함으로 이해하지 말기를, 


아무튼 자신의 사고를 확장해나갈 수도 있는 이 책의 사용법, 자신의 감정에 따라 더 넓게도 더 깊게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는 한계도 규정도 없으니. 이 책을 바탕삼아 하나씩 늘려나가는 것도, 365일 명상을 안내하며, 필사할 수 있는 여러 권의 책이 나와 있으니, 한 번 실천해보는 것도 좋겠다. 요즘 필사 노트가 붙은 책들이 유행이다. 그저 읽는 책에서 실천의 길라잡이로 책과 하나 되는 필사다. 읽고 의미를 되새기고, 쓰는 과정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지은이 말이 성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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