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상계엄 ㅣ 삼사재 기획선 10
이용호 지음 / 삼사재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비상계엄
작가 이용호의 소설집<비상계엄>은 386세대, 지금은 686세대라고 해야 하나, 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창고 안 구석에 쌓여있는 뻬치카가 등장하는 쌍팔년 이전의 군대 이야기인 ‘세면장’에서 ‘그 남자의 시대’, ‘1987년, 성대 앞’까지, 그의 자화상이다. 지금도 한 창 시끌벅적한 12.3 내란의 비상계엄이 성공한 깜깜한 세상을 그린 “비상계엄”, 현실, 중소도시의, 아마 중규모 정도의 시장실의 일상을 그대로 무대로 옮겨놓은 듯한 “시장질 프롤로그”와 “퐁당퐁당 시장님의 몽님신서”는 서사구조가 탄탄하다. 읽으면서, 정물화처럼 제대로 찍은 사진처럼, 시골 영화관의 오래된 영사 필름처럼, 각각의 기억을 소환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며, 옆에서 지켜본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멋진 소설 여덟 편이 실려있다.
비상계엄은 성공했다.
1980.5.18.에서 45년을 훌쩍 뛰어넘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2024.12.3. 비상계엄령 아래 특수부대 군인들에게 장악됐다. 항의하는 시민들은 80.5년 그날처럼 자, 가자, 전남도청 앞으로 와 겹쳐지는 자, 가자 국회의사당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사수하자. 45년 광주처럼 포도에는 피가 튀었다. 국민의 군대가 국민을 향해 조준 쏴 한 것이다. 주인공의 딸은 12.3. 그날 여의도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왜 찔렀지, 왜 죽었느냐고 어디 물어볼 곳도 없이 그저 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아내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 만신창이가 됐다. 광주에서 큰처남이 올라왔다. 아내 병원비에 보태쓰라고, 가게 문을 닫은 지 얼마나 된지 모르겠다. 집주인의 월세 독촉, 가깝게 지낸 지인이 가게의 노인이 지인과 다툰다. 가서 말리는 순간, 노인은 너희를 가만히 안 둘 거야. 그리고 며칠 후, 군인들이 집에 쳐들어왔다. 포고령 위반이라고, 12.3. 비상계엄 선포 후, 발표된 45년 전과 같은 글자 한 자도 안 틀린 그 포고령을 위반했다고, 노인은 잡혀가는 우리를 보고, 집도 없는 거지새끼들, 이 나라 대한민국은 너희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야,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건물주를 위한 나라인게지. 비상계엄의 성공은 이런 효과가 있었다.
시장실의 프롤로그와 퐁당퐁당 시장님의 몽님신서
1991년 부활한 지방자치단체, 선출직 시장, 당의 공천만 받으면 떼놓은 당상, 지역 토호인 후원회장 적당히 이용하고 버리는 카드, 용인술이다. 마키아벨리 3원칙(능력이 있어야 찾아온 운도 제대로 쓸 수 있다. 정치와 윤리는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처럼, 결과 층위가 다르다, 이미지 만들기, 남들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내 지금 진심 백 퍼센트라고 할 필요 없다. 우는 흉내를 얼마나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게 관건이다)에 충실한 작중 주요 인물인 시장, 그리고 정무비서로 시장을 따라 들어온 인물, 캐릭터의 묘사나 대화 내용, 그리고 시 인사까지 아주 흡사하다. 지방공무원의 세계 또한 사실적이다.
자 배짱과 실력은 딱 6급까지만 반영, 뭐 조금 더 봐줘서 팀장, 하지만 그 이상 5급 사무관은 다른 세상이다. 간부다. 몸을 바치고, 돈을 바치고 간과 쓸개까지 내놓아야 갈 수 있는 곳, 실력은 말 그대로 덤이고, 우리의 시장님은 이를 몽님신서, 그가 좋아하고 못내 존경해마지 않는다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몽님신서(夢任新書:환상대로 상상대로 새로 쓰다)로 읽는, 시장, 그는 퐁당퐁당, 떨어지고 붙고, 낙선하고 당선되고는 모두 내 맘에 달려있다고 굳게 믿는다. 사람을 이용할 만큼, 그리고 다시 선거를 준비할 때면 믿습니다로 일관하면 당선은 환상이나 상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소신으로 “시” 주민공동체 시민은 다 밥이다. 일용한 양식으로 여기니, 이것이 현대판 다산(多産, 多算)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낳는다는 것이다.
어느 시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현실감이 넘쳐난다. 죽어라 열심히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말 그대로 공복(公僕)은 주소를 잘못 찾았다. 시민의 공복이 아닌 시장의 공복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꼬집고 있다. 촌철살인으로 아주 쉽게.
종태가 출마했다
이 소설은 허구지만, 실현 가능한 현실이다. 대중들의 정치 불신, 도대체 정치가 뭐지, 진짜 필요한 것 맞아? 라는 회의감이 팽배해진 작은 도시, 학벌은 쥐뿔, 나이 마흔에 나 홀로 생활, 거기에 별 볼 일 없는 직장도 집이라고는 컨테이너 한 개, 주인공 종태는 장례식장에서 호기를 부리며, 시의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그리고 당선됐다. 역설이다. 학벌과 재산, 가정을 가진 안정된 남성, 전문직이든 자수성가든 잘나가는 중소기업쯤은 거느린 사람이 여러모로 후보 적격으로 여겨지는 시의원이라는 이미지에 영화 <군수와 이장>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소설,
“종태가 드디어 남양주시의 시의원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후보자보다는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과 다른 후보들의 조직력과 또 다른 사람들의 빈정거림과 종태의 선거 자원봉사자들마저도 반신반의하던 선거였다. 그런데 종태가 이겼다.”
과연 이 선거가 대다수 조용한 민심을 ‘종태’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인간을 통해 표출한 것인지, 아니면 ‘종태’라는 만만한 인물을 내세워 풍양면이라는 지역사회 주도권을 쥐고 행세하려는 것인지, ‘내 동네 사랑’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진정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종태’라는 자연인을 우리는 나무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지 이제야 번쩍 정신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종태로 상징된 조용한 반란인가, 상대가 떨어질 만큼 질이 안 좋아 종태가 된 것인가, 트럼프는 왜 당선됐을까를 생각하는 것과 뭐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자치단체, 시장과 시의원을 향한 일갈이다. 너희들 진짜 자격 있냐고, 왕년에라는 소리는 지금 열패감에 차 있거나 별 볼 일 없음을 에둘러서 하는 말 앞에 붙는 접두어다. 마치 ~라떼는 말과 같다. 소설은 시원하다. 답답하고 가슴 묵직한 요즘, 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