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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 전쟁 전야, 천재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의 운명 속으로
더글러스 브런트 지음, 이승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작가 더글러스 브런트는 디젤의 발명한 루돌프 디젤 실종을 미스터리로 본다. 작품 탈고 후 다음 작품 준비를 위해 소재를 찾던 중 우연히 선상 실종이란 키워드로 알게 된 미스터리한 루돌프 디젤의 사망사건. 아마도 작가의 머릿속은 이렇지 않았을까,
1913년 9월 29일 밤 디젤은 선상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죽음으로 위장해 몸을 숨긴 것인가, 디젤기관이 연합국 측 무기의 동력원이 된 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죽었다면 자살일까, 아니면 자살을 위장한 타살, 타살이라면 누가 그를 죽인 것인가 왜 무엇 때문에, 왜 그때 그 시기에 죽어야 했던 것일까? 작가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루돌프의 흔적을 좇는다.
세계 1차 대전이 터지기 몇 개월 전 디젤기관을 만들어 무기의 동력을 사용될 이른바 전쟁의 승운을 점칠 중요 요인 중 하나가 된 동력이 갖춰진 셈이다. 1913년 9월 29일, 런던행 여객선 트레스덴호는 벨기에와 영국 사이의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이 배가 런던항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사라졌다. 외투를 벗어 개어놓고, 증발해버린 것이다. 2주 바다에 떠오른 시체, 지나가던 배가 그 시체가 누구인지 알려줄 단서 몇 가지를 수습하고 다시 바로 시체를 던져버린다. 세기의 인물로 주목받던 백만장자자 디젤이라는 내연기관, 당대에는 첨단기술을 개발해낸 유명인사가 유서도 없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바다로 사라진 것이다.
당대 미디어는 앞다퉈 1면에 루돌프 디젤의 죽음을 크게 보도했고, 이윽고 음모론이 제기됐다. 누군가에 의해 루돌프가 살해됐다. 이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보이지 않은 손으로 작용했다고,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와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다. 전자는 첨단기술의 영국 유출을 막기 위해 그를 암살한 것이고, 후자는 디젤은 석유가 아닌 다른 연료로도 움직일 수 있는 내연기관의 공급이 확산하면 석유산업의 운명이 위태로 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를 찾던 수색도 흐지부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이들에게 디젤기관이 앞으로 세상이 미칠 영향력을 예견한 것인가, 디젤을 죽일 수 있는 동기가 충분한 것인가,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작가는 당대의 세기의 인물들, 발명왕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등은 널리 그 이름이 알려졌는데, 루돌프 디젤만은 어찌 된 영문인지, 그 흔적이 지워졌다고. 누군가가 그의 이름이 세상에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였을까?
루돌프 디젤(1858~1913)이 열두 살 때인 1870년, 유럽 세계는 출렁인다. 당시 파리지엔이었던 루돌프 가족은 프랑스가 독일과 전쟁을 하면서 적성 국민을 자국에 쫓아냈기에 영국으로 갔던 가족, 그는 산업혁명기의 공장노동, 노예노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로 가게 됐고 기술학교에. 그리고 그는 독일에서 디젤기관을 만들어내고, 사업 또한 성공을 거두는데,
작가는 루돌프와 가족들의 삶의 기록을 좇아 죽음에 이른 경위를 밝힌다. 디젤기관이 이후 역사, 자동차를 물론 선박과 공장 등 산업 전반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디젤을 기억하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왜 역사에서 루돌프 디젤이 철저히 사라졌는가, 어떤 일이든 시간이 가면 잊히기 마련이지만, 그는 루돌프는 지워졌다고 생각한 듯하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패전국 독일에서 만들어진 디젤,
루돌프 디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나
음모론에 따르면 루돌프의 측은지심, 보편적 인류애가 과학자의 역사적 책임이 그를 죽게 했다. 루돌프는 권력과 지배체제에 충성을 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노동자들이 보였고 이들이 수월하게 일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오로지 독일을 위해서만 써야 할 그의 능력을 적들에게도 나눠주려는 그는 빌헬름 2세에게는 적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록펠러에게도 마찬가지다.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디젤이라니 이것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루돌프 디젤은 죽을 운명이었다.
그날 밤 런던행 여객선 드레스덴호 선상에서 죽음으로 위장
루돌프 디젤은 빌헴름과 록펠러에게 위협이 되기에 독일을 떠나 캐나다에서 제 일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디젤은 가정, 가족, 신분과 유산까지 포기해야 했다. 1913년 그가 윈스턴 처칠의 자산이 됨으로써 그의 옛 삶은 끝났다. 진보와 역사의 발전은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건 아니다. 독일의 기술력 때문에 결국 전 세계는 독일에 형편없이 뒤떨어질 위험에 처했다. 디젤은 비독어권을 돕기로 했던 루돌프는 공적 생활에서 사라지면서 디젤은 자진해서 처칠과 연합군에게 자신의 귀중한 지식을 선물로 주었다. 이건 모순이 아닌가, 전쟁을 막는 게 아니고, 차악을 선택하는 건 또 무슨 생각이었을까?, 처질의 이 말에 모든 게 들어있다. "전시에 진실은 너무나 귀중해서 거짓말이라는 경호원을 두어야 한다." 라는 말을 남기며, 루돌프 디젤의 캐나다행과 그가 했던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다. 1세기도 더 지나서 이 경호원들이 사라지자 진실이 드러났다.
루돌프의 아들 오이겐 디젤이 1960년에 출간한 아버지에 관한 책에는 “우리는 기계, 기술과 협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으로 무슨 일을 할지 아직 모른다. 우리는 이제 겨우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장래성으로 가득한 새 시대에 들어섰을 뿐이다.”라고, 혹시 그는 아버지가 살이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을까?
루돌프 디젤은 자신에게 묻는다. 디젤기관이 가져다준 놀라운 진보는 인류를 더 향상하기 위한 것인가? 역설적으로 디젤이 만든 기적의 기관이 가져온 거의 모든 효과는 그의 의도와 상충했고, 그는 과학자의 책임을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에 대해 양자역학의 문을 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서커스, 2023)에서 과학자가 그 책임을 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과학발전은 세계적인 역사 과정의 일부이며, 과학자는 커다란 연관성 속에서 사물을 생각해야 하기에, 과학은 과학이라는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를테면, 혁명과 전쟁, 극단적인 가치 전도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한 과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을 인류 전체라는 통합적 문맥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소식을 들은 과학자들은 핵 사용금지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과학적 발견의 양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