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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경제적 결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박만섭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1929년부터 시작 10여 년에 걸친 미증유의 경제 대공황을 경험하게 된 미국, 케인스는 고전 경제학 이론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정부는 완전고용을 위해 소비와 투자,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직접 나서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택, 도로나 댐 건설 등 공공사업을 추진하면 가계는 상품을 소비할 여력이 생기고 기업에서도 투자와 고용을 증가시킨다. 즉, ‘균형’으로 복귀를 돕자는 것인데, 곧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주장했다.
이 책<평화의 경제적 결과>은 1차 세계대전 후 1919.1. 파리에서 시작된 평화회의에 영국의 재무성 수석대표로 1919.6.7.까지 참여했던 케인스가 국제 정세를 평가한 것이다. 그는 연합국의 징벌적 배상 요구가 독일을 비롯한 패전국 국민에게 모멸감을 안겨줄 것이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경제 체계를 무너뜨릴 것이기에, 세계 전체의 번영을 위해 모두 적개심을 버리고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1918년 중반 이후, 종전 후 배상 문제를 자세히 다룬 재무성 정책 보고서들을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종전 후 유럽 재건에 대한 케인스의 거대한 계획을 담고 있었고, 평화회의에 참석하면서 연합국의 대표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거대한 계획은 승자에게 주어진 관대함에 따라 지켜져야 할 것이었다. 케인스는 파리평화회의의 임무는 약속을 존중하고 정의를 충족하는 것이었으며, 사람들의 삶을 다시 세우고 보듬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평화회의는 승자의 덕망이나 아량, 관대함과 같은 피상적, 추상적인 바람과는 정반대로 각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케인스는 1919.12. 이 책을 출간한다. 책은 7장 구성이며, 1장은 “서론”으로 파리평화에 관한 케인스의 평가 요약이다. 파리는 악몽이었다. 회의에서 내려지는 결정의 중요성과 비현실성, 경솔함, 맹목성, 오만함 등 모든 비극적인 요소가 담겨있음을 전문가라는 위치에서 책을 썼음을 밝힌다.
2장에서는 “전쟁 전의 유럽”의 모습을 소개한다. 1870년 이후 역사상 최고의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 이런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독일, 케인스는 유럽 전체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독일의 역할이 전쟁 후에도 지속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3장 “파리평화회의”는 이 책의 중심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후세에도 자주 언급된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 클레망소 프랑스 수상,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가 평화회의에서 보인 태도를 신랄한 필치로 묘사한다. 프랑스를 유럽 강국으로 만들려는 클레망소를 페리클레스로, 국내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위선자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 노련한 이 둘이 전략에 휘말려든 원리만을 고집하며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어수룩한 윌슨 미국 대통령.
4장 “평화조약” 중에서 경제에 관한 내용을 살핀다. 핵심은 독일 경제의 체계적인 파괴를 목적으로 작성됐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케인스는 전쟁 전 독일 경제 체계가 세 축을 지탱됐다고 봤다. 첫째는 상선, 식민지, 외국투자, 수출, 독일 상인들의 국외 네트워크 등으로 대표되는 무역이고, 둘째는 석탄, 철강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셋째, 수송과 관세 제도인데, 모든 상선과 외국 자산을 연합국에 양도하고, 알자스-로렌 지역을 프랑스에 다시 합병, 이 지역이 독일 자산 전부 몰수, 자르 분지의 탄광을 프랑스에 양도, 연간 4천만 톤의 석탄을 일정 기간에 걸쳐 해마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에 공급, 고지 실레시아를 신생 국가인 폴란드에 잠정적으로 귀속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최종 귀속국가를 결정, 연합국에는 최혜국 지위를 부여하나 독일에는 최혜국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관세 제도, 모든 철도 차량을 연합국에 양도, 철도로 독일에 수송되는 연합국 상품에 대해 수혜적 관계 부과, 이는 독일이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들이었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석탄 생산량은 연간 1억 톤가량이며, 수요량은 1억 1천만 톤이었는데, 해마다 4천만 톤을 프랑스에 공급해야 한다면, 독일 사람들은 혹독한 추위 속에 겨울을 보내야 하고, 산업은 가동을 멈출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5장 “배상”에 관한 여러 문제, 즉 배상받을 피해의 범위, 배상 조건, 독일의 배상 능력 등을 논한다. 조약은 전쟁으로 입은 직접적인 군사적 피해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 준 피해”까지도 배상 범위에 포함하고 전쟁 동안 군대에 동원된 사람들의 가족에게 지급한 별거 수당, 전투 중 다치거나 죽은 군인과 관련해 해당 정부들이 현재와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과 보상금을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 케인스의 계산으로는 독일이 30년 동안 배상해야 할 금액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17억 파운드 정도였으나, 연합국은 80억 파운드를 요구한 것이었다.
6장 “비관주의로 가득 찬” 장이다. 조약의 요구는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비논리적이었다. 독일이 배상을 실현하려면 국내 경제의 회복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조약의 요구에 따르면 독일은 자국의 자산 대부분을 배상에 사용해야 한다. 독일의 수출증가는 연합국의 수입증가를 뜻하는데 과연 연합국이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렇다면 과연 해법은 있는 것인가?, 케인스는 7장 “처방”에서 제안을 한다. 그는 국제연맹창설과 주요국의 가입을 확정하는 한편, 독일의 배상액을 20억 파운드로 정하고, 유럽 석탄 문제를 재조정할 석탄 위원회를 국제연맹 산하에 두고, 상호 평등 원리를 바탕으로 관세 장벽을 낮출 자유무역 연합을 설립하는 등의 내용을 담도록 평화조약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다. 연합국의 부채 문제는 복잡하지만, 승전국 미국의 “관용”이 전제될 때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전쟁 수행으로 발생한 연합국 사이의 채무를 모두 소멸하는 것인데, 이로 인해 미국은 20억 파운드, 영국은 9억 파운드를 포기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관용은 유럽인들의 마음에서 빚 상환의 불안감을 줄여주고, 유럽의 금융 안정성을 보장, 연합국 사이의 연대강화로 미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왜 독일이 피폐해지면 안 되는지를 밝힌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움직임을 본 것이다. ‘혁명’이라는 사회적 불안정을 유럽 전역에 퍼트릴 위험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질서는 민주주의 퇴보, 약화 속에서 점차 확산하는 전체주의, 권위주의 정권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국제사회, 러-우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헤즈볼라의 참여로 중동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등, 어지러운 모습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전개될 외교전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는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여전히 그의 견해가 유효한지는 별론으로 하고, 전쟁이 끝나면 시작되는 정치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여전히 유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