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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선수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이유미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4년 11월
평점 :
한 세대를 훌쩍 뛰어넘은 여성들의 고군분투
지은이 이유미는 스포츠 전문가다. 리포터로 스포츠계에 발을 딛어 작가로, 스포츠 평론가로 현장에서 한 세대를 뛰고 달렸다. 그의 눈에 비친 여자 선수들의 모습은 격세지감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일까, 파리 올림픽의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은 갑자기 배드민턴 협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흥분에 들떠 있던 장중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꼭 그렇게 현장에서 직격발언을 해야했었느냐며 나무라기도 했지만, 안 선수의 처지에서 보면 못할 말도 아닌 것 같고, 올림픽 폐막과 함께 사그러드는 분위기를 잘 아는터라 귀국해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쩌고 저쩌고는 그의 궁박하고 절실한 사정을 모르기에 하는 헛소리, 개같은 소리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은이는 이 책으로 지난 40년 동안 여성 스포츠선수들의 이슈와 토픽, 깜짝쇼, 아,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한편의 영화처럼 우리의 기억을 소환해낸다. 1998년 신인으로 당당히 챔피언을 먹었던 골프의 박세리의 명승부를 비롯하여 당대 TV 순간 시청률을 기록했던 역사적 장면들을 말이다. 이름 석자는 아직도 기억나는 박세리, 그의 LGPA개척기와 분투기, 얼음판의 요정 김연아, 라면만 먹고 운동했던 마라톤의 임춘애, 난데 없이 짧은 머리를 했던 양궁의 3관왕 스물살짜리 안산을 페미니스트니라며 공격했던 사람들, 이들은 운동만 잘해서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는 게 아니다. 실력이야 군계일학이요, 출중 탁월하여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선수들, 종목별로 다르겠지만 이들에게는 국가대표가 되고 안 되고에 따라 이후 생활이 달라질 수도 있다. 좋아서 하는 활동이 아닌 의무와 노동으로, 경제활동으로 먹고살아야하니 하는 고된 일이 되서는 안되겠지만,
나는 어쩐지 <한국에서 선수라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이 부자유스럽게 여겨진다. 한국에서 선수하는 여자들, 선수에 성별을 왜 하나 싶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스포츠는 남자의 공간, 영역이며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온 관념 때문일까, 자, 사회의 모습을 보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사는 당연히 남자라는 인식 때문에 “여”의사라고 부르고, 안타깝게도 산과 부인과에서는 일부러 여의사임을 강조하는 문구를 넣어 홍보하기도 하지만, 사법분야에서 검사나 판사, 연구분야에서 대학의 교수, 교육현장의 교사, 모든 직업은 남성 중심이다. 여검사, 여판사, 여교수, 여교사다. 이런 구분법은 글쎄다. 아무튼 스포츠 판에서는 여자농구, 여자축구 하는 건 남녀의 구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여기서는 여자냐 남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왜 하필 스포츠선수냐, 다리 굵어지고 피부검어지고... 여기에 젠더의 왜곡이 여성비하의 태도가 여자는 안 돼, 아마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지은이는 일부러 책 제목을 < 한국에서 선수하는 여자들>이라고 방점을 찍은 것인가,
선수들 인생에서 저마다 한 개씩 있는 ‘섬’은 사람에 따라 절해고도가 되고, 이상향이 되기도 하는데,
사람마다 한 개씩 섬을 가진다. 갇힘이든 자유든 내 안에 섬이 있다는 말인데, 이는 소설<흑산도 하늘길>을 쓴 한승원 작가의 말이다. 스포츠계 안팎의 사연들, 밖으로는 안산 선수를 공격하는 모습을, 내부에서는 스포츠선수의 인권을,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죽어간다. 힘들고 괴로워서, 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훈련이랍시고 술시중들게 하고 두들겨 패고, 성폭행하는 것, 원래 운동판 운동의 세계는 다 그런 거라고, 애써 제 편 감싸기, 오죽하면 스포츠인권센터가 생겼을까, 편견을 극복하고, 한계를 넘어 기록의 벽을 두들겨 부수고 우뚝 올라선 의지와 투지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인생 주기마다 혹은 늘 뭔가를 결정해야 할 이들에게 책 속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극복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이는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특히 여자 선수들이기에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차별, 부당한 처사들... 할말은 많겠지만, 이 책 밖의 사정은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이슈가 된 적이 여러 차례 있기에, 생략한 듯하다. 책 밖의 여백으로 남겨놓았을 듯....
여자 선수들의 분투기, 나는 끝까지 이 길을 가련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이야기를 5장으로 나눴다. 1장은 신화가 된 이들, 한국에 희망을 모든 국민이 한순간 공중부양을 했을 정도로 뭔가 번쩍였다. 골프에 박세리와 김연아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2장은 세계를 40년 동안 제패한 양궁, 이들 역시 감동이다. 84년 올림픽에서 김진호, 서향순, 꽃돼지 김수녕, 기보배, 안산, 임시현, 농구의 박찬숙, 전주원, 정선민, 박지수, 탁구의 이에리사, 현정화, 신유빈을 배드민턴의 방수현과 안세영, 쇼트트랙의 전이경에서 최민정에 이르기까지, 3장은 새 시대를 연 이들의 활동, 프로농구의 김연경,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상화, 유도의 올림픽 첫 금메달 김미정, 스포츠클라이밍 개척자 김자인, 여자축구 유럽의 문을 연 지소연, 4장에서는 역사가 된 선수들을 다루고 있는데, 문광부 차관을 했던 유도의 장미란과 수영의 최윤희, 마라톤의 임춘애,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이채원, 이들 모두 새롭게 역사를 쓴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장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에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던 핸드볼 국가대표팀과 2018년 평창의 컬링 국가대표팀
여기에 등장하는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성장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선수들, 우리 기억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별이 있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스포츠계의 별들, 글을 읽다보면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왜곡된 젠더의 역할, 남녀차별의 역사 등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많다. 왜 굳이 남자들이나 하는 스포츠선수가 되려 하느냐. 여자가 축구는 무슨, 그 나이면 결혼해야지, 결혼했으면 애 낳아야지, 여자 지도자가 웬 말이냐는 19세기 20세 초의 사고가 엄연히 존재하며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생각들, 그래서 이 책이, 이런 책들이 필요한 것이다. "여자"가 아니라 00선수는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섰는가,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가 우선이다.
이 책 속의 선수들, 좌절의 순간과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날개를 펼치는 순간, 그리고 지금의 삶, 후회와 선택의 옳고 그름, 선수들 모두에게 닥쳤던 시련의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목표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저절로 이르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스포츠 엘리트주의가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든 못 땄든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어떤 연유로 떨어졌든 그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들이 모든 순간순간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택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려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