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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하늘길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1월
평점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흑산도 하늘길
한승원 작가가 2005년에 내놓은 장편소설 손암(巽庵) 정약전의 사유와 종교와 학문 속 내적 갈등을 그렸다. 2005년에 청소년 문학 선으로 문이당에서 출판했고, 다시 2024년에 동생 정약용이 검은 산 흑산이지만 그윽하고 또 그윽한 땅 현산(玆山),이곳이 나의 식읍이고 안양이다. 그저 아무말말고 신선처럼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는 그것이라는 약전의 말을 상징하는 듯 구름에 쌓인 흑산의 사진으로 표지가 바뀌었다. 2021년 이준익 감독의 14번째 작품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창대야로 시작되는 흑백필림의 영화다. 정약전이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로 어족조사를 함께했던 장창대와 홍어 장수 문순득이 등장한다. 흑산으로 들어가면서 호를 손암으로 손(巽)은 들어(入)간다는 뜻이다. 나올 기약도 없는 그의 절해고도의 생활.
소설의 장면과 영화 자산어보의 흑백필름의 영상이 겹치면서, 입체적으로 다가오기도, 물론 영화를 안 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순조 1년(1801) 300여 명이 죽었던 천주교 박해사건(신유사옥)으로 정약전 형제[일사이적(一死二謫) 정약종은 순교했고, 약전과 약용은 유배를]와 매부 이벽, 윤지충, 남인의 지도자 이가환과 권철신 등이 죽었다. 정조 치세의 버팀목이었던 남인 세력(시파)은 그 대척점에 서 있던 노론(벽파)에게는 눈엣가시였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죽여야 했다. 두 형제는 무죄였기에 유배에 그친 것인가 아니면 학문으로서 ‘서학’을 접했고, 종교로서 천주교는 믿지 않았기에 그런 것인가. 아무래도 좋다. 약전은 밤마다 꿈에 시달려야 했다. 천주가 주는 시련이 이런 것인가, 배교하고 신을 부정했기에 받는 벌인가, 신이 있다면 왜 이가환, 권철신 등이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하룻밤에 예수를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 자기기만과 자기성찰을 반복하는데.
당대 승지였던 정약용은 강진으로, 그는 우이도로(당시 지금의 흑산은 대흑산, 우이도는 소흑산이라 했고, 유배지는 “흑산”으로 대, 소 어느 쪽에서 생활하던 자유다), 자산은 일설에 의하면 그의 또 다른 호이기도 하고, 검다는 뜻의 “자(玆)를 써 흑산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16년을 살다 59살에 우이도에서 죽었다. 애초 동생보다 늦게 과거에 장원급제했던 정약전은 과거 시험답안지가 문제가 됐다. 오행설과 서양의 사행설을 응용하여 독특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오행론을 진술했다. 결론은 어짊(仁)에 있었다. 하나, 노론 벽파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서학의 사행을 들먹이며 이런 사고는 서양의 천주학에서 온 것이라. 이때부터 정약전의 벼슬길은 트이지 않았다.
소흑산(우이도)의 정약전
소설은 두 곳의 장소에서 각기 다른 삶을, 그리고 이른 시기에 유배에서 풀릴 수 있다는 기대는 점차 희미해지고, 수군 진과 아전들이 있는 소흑산에서는 유배된 유력 관료 병조정랑 출신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중심은 성리학으로 다져진 데다가 서양의<천주경>, 천주실의, 칠극의 중심찾기, 기하학으로 실증하기가 보태져 있었다. 그는 유배살이를 하면서도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민들은 그런 정약전과 거리를 두었고, 그 또한 주민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녹아들지 못했다. 아이들을 모아 서당을 열고 하늘천따지를 가르치면서도 혹여 천지가 곧 천주라는 식의 신을 믿으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주변인들의 감시 속에서, 천주교 신자인 거무를 만나는데, 약전이 천주교 신자임을 알고 그와 함께하려는데, 이 역시 감시자인지 못내 의심을 저버리지 못한 갈등, 혹여 자식이 태어난다면 불쌍하게도 미래보장이 없는 서얼이다. 이 역시 못 할 짓이다. 대저 사람이 평등한데 위, 아래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생각, 그의 가치다.
대흑산으로 옮기다
이중적인 인간들 두 개의 얼굴을 하는 인간들한테서 멀어지자. 관은 늘 감시하고, 마을 주민들마저 그 감시체계 속에서 가두고 약전을 눈여겨본다. 그들에게 약전은 한데 어울려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였다. 자, 이제 탈출이다. 대흑산으로, 사리에 서당을 열고 또다시 학동을 가르친다. 어족에도 관심을 둔다. 소흑산의 삶이 양반의 삶이었다면, 대흑산은 이웃하는 삶이다. 인간다운 삶이다. 약전도 그 무리 속에 한데 섞여서 함께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
인간의 모든 죄악은 교만에서 온다. 근엄한 표정 대신에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지 말고 숙여야 한다. 섬사람 뱃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이 많은 자들에게 함부로 말을 낮추어서 하지 않아야 한다. 유배형이 나를 거듭나게 하려는 천주님의 뜻이다.
아우를 그리워하며, 자식을 먼저 보내고, 한양에 있는 아내를 그리며, 첩 거무와 또 그렇게 함께 사는 거다. 흑산에서 아들 둘을 낳고, 그렇게 살다가 죽었노라. 흑산이 무릉도원임을 그가 그리워하던 한양은 지옥이다. 현산에서 그렇게 살다가 자유로이 떠났노라.
이 소설 끝에는 작가가 손암선생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실려있다. 한승원과 정약전이 묻고 답하는 ”흰 구름 한 장이 지나가고 있었다. “또한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손암은 어찌할 수 없이 이 섬에서 갇혀 살긴 했지만, 사실은 갇혀 살지 않았노라고, 사람도 한 개의 섬이야, 아니 혼자 있는 것들은 다 섬이야.
몸은 흑산에 살았지만, 마음은 현산에 살았다네. 흑(黑)자도 현(玆)자도 모두 검음을 뜻하지만, 전자는 일차원적인 더러움과 무서움, 어두움을 뜻하고, 후자는 흑과는 다르다네. 현은 대명사‘이’로 쓰일 때나 ‘흐리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자’로 읽는다. 현산어보를 자산어보로 오독하고 있다고. 현산(玆山)이란 말에서는 하늘 현(玄)자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그 현산은 깊고 드높고 드높은 하늘에 있는 산이다. 결국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 현산이라는 것인가,
약전의 내면 갈등, 먼저 떠나보낸 지인들, 절해고도에 갇혀있지만, 본디 사람은 섬이라는 사유, 자유, 천주, 거무, 서얼의 자식들, 도대체 정약전은 흑산에 무얼 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