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페스 네페세
아이셰 쿨린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숨막히고, 긴박한 “탈출” 


애커사 크리스트의 1934년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떠오른다.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튀르키예 정부의 TEDA(튀르키예 문화, 예술, 문학작품의 외국 진출 지원사업)에 선정된 아이셰 쿨린의 소설 <네페스 네페세>는 2016년 이탈리아 프레미오 로마 최우수 외국 소설상을 수상, 34개국에서 출간됐다. 아이셰 쿨린은 잡지사 기사를 시작으로 편집장, 신문기자, TV 광고와 드라마 감독,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등 전방위적인 활동, 말 그대로 전천후다. 주로 사회파 소설을 썼다. 그를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작가라고는 평도 있다.


“내 나라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정권은 왜곡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긴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게 작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라며 작가론을 펼치는 한편 “내 취향과 기분에 따라 작품을 쓸 만큼 한가하지 않다”라는 대목, 역사의 기록자로서 사회파소설가로서 깨어있는 지성으로서의 면목이 이 소설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역사적 소명이란 그의 말처럼, ?역사적 집단적 광기, 아우슈비치로 상징되는 나치독일의 유대인 사냥, 학살, 모든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심한 충격을 받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소설은 600여 쪽에 이르는 장편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유대인, 튀르키예 무슬림, 튀르키예 외교부 본부 직원과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바시정권 시절 주프랑스 튀크키예 대사관, 마르세유 영사관 등에서 일하는 외교관들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당대 튀르키예 외교부 공무원들의 독일에 침략당한 프랑스의 비시정권, 문화선진국이라는 명예가 한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 당대의 드골, 영국의 처칠과 미국의 루스벨트는 철저히 자국 이기주의로 튀리키예를 쓰고 버리는 카드로 이용하고자 하고, 러시아는 튀르키예가 중립선언을 깨고 같은 편을 먹어야 독일이 튀르키예를 공격할 때, 직간접으로 개입하여 우선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이렇게 사면초가, 약육강식의 질서가 펼쳐진 전쟁터에서 튀르키예 국적의 유대인을 넘어 레바논 출신 등의 유대인을 이스탄불까지 데려오기 위한 작전에 이르기까지 저간의 사정은 법을 초월한 인류애의 발현으로 승화되는데... 


주요인물 사비하와 셀바의 아버지인 튀르키예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오스만투르크의 장군, 애국자이면서 합리주의자이지만 딸들의 아버지로서 처지는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보수적이고 완고한 인물이다. 내 딸은 유대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 자살을 시도할 만큼 싫어했을까, 아니면 당대의 튀르키예 지도층 인사의 가치였을까, 꽤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든다. 아무튼 셀바 학창시절 친구인 유대계의 라파엘과 결혼을 반대한다. 


이른바 남의 문제는 합리적으로 내 문제는 내 중심으로, 그 가치 체계 속에 담긴 튀르키예 사회의 일반적인 유대인에 대한 인식 등의 반영이기도 하다. 큰딸 사비하와 그의 남편 외교부 정치국장 마짓 등의 관계에서도 튀르키예 사회의 직업과 관계, 결혼 등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튀르키예인에 관한 인식과 감정, 유대인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다 떨어진, 땅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씨앗과도 같은 존재다. 외교공무원으로 마짓의 후배인 타륵은 주프랑스튀르키예대사관 2등 서기관, 유대인이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던 헝가리 출신 마고와의 대화 속에서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때문에 받게 될 불이익 등, 이것이 팔레스타인이 불행의 시작과 연관된 시오니즘으로 이어지기도, 


유대인 구출로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와 못지않은 오리엔트 특급을 연상시키는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유대인들이 게슈타포의 눈을 속이고 마치 등하불명의 허점을 찌르는 작전,


이 작전은 15세기부터 형성됐던 오스만튀르크의 유대인 포용정책이 배경에 깔려있다. 마리세유 영사 나즘은 독일 게쉬타포가 길거리에서 체포해 파리로 보내는 열차에 올라가 끝내 이들을 구출해낸다. 무엇이 그들 용기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셀바는 유대인 남편 라파엘을 구하려는 활동에서 점차, 유대인으로 튀리키예 국적이 아닌 유대인에게로 어린 아이들에게 튀르키예 말을 가르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돼가는 데, 또 한 축의 주요 등장인물 유대인 페릿은 프랑스의 대학에 유학 중 프랑스 여성과 결혼, 그는 유대인의 프랑스 탈출을 돕는다. 이들의 인류애로의 확장된 계기는 "측은지심"이었을지도... 


셀바는 그에게 묻는다. 왜 유대인의 탈출을 돕는 거냐고, 페릿은 “이 혼란 속에서 내가 인간이고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했어요”라고, 인생이라고 하는 게 뭘까요?, 결국엔 우리 모두 죽잖아요, 적어도 사는 동안 부끄럽지 않은 소망들로 채워야지 살아온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아이셰 쿨린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바로 대의명분,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지, 보편적 사고이며 가치다.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는다는 연대 정신, 어쩌면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이기도... 


작가는 커다란 얼개 속에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변화와 갈등까지도 다룬다. 장녀 사비하를 좋아하게 된 타륵의 가치관, 그녀의 정신건강상담을 하는 정신과와의 상담, 그 과정에서 밝혀진 동생 셀바와 그의 딸 휼나와의 관계 등까지. 결혼, 출산,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사회적 기대, 구시대의 가치에서 새로운 가치로의 전환까지를. 2차 세계대전 중 중립을 지키면서 튀르키예의 유대인을 구출하고자 했던 외교관들, 이들은 국적을 초월하여 유대인이라는 민족에 관한 인식도 버렸다. 오로지 이들에게는 유대인 사냥에 미친 나치 독일로부터 이들을 지켜내는 인류애 정신을, 이것이 문화선진국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튀르키예의 오스만튀르크의 전통 가치를…. 등장인물들은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전히 인간사랑과 연대, 약자에 관한 배려 등의 가치가 살아있다.


열차는 달린다. 우여곡절 속에 베를린을 떠나 이스탄불까지, 기나긴 여정, 독일점령지역을 뚫고 나온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어서. 몰입도가 좋다. 단숨에 600쪽에 가까운 분량을 눈 앞에 펼쳐지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편적 휴머니즘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