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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회 - 뜨거운 젊은 피를 태양에 힘껏 뿌려
최산 지음 / 목선재 / 2024년 10월
평점 :
감춰진 여순 항쟁의 그날 이야기
소설<김지회> 1948.6.~1049.11.5. 76년 전 엊그제 주요 등장인물 열 아홉 나이의 조경진이 형장의 이슬로, 아니 50년 발발과 함께 당시 마포형무소에 갇혀있던 그녀를 풀어 월북했다는 이야기도, 이후 살아남았지만, 이승만이 남으로 피난 가면서 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 좌익세력을 모조리 처단할 때 그녀도 함께 죽었을 것이란 이야기도 “뜨거운 젊은 피를 태양에 힘껏 뿌려”놓고 간 젊은이들, 당시 스물셋이던 김지회, 문상기, 이기주, 홍순혁은 47년 1월 조선경비사관학교 3기로 3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소위로, 여기에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군 사냥꾼으로 유명했던 일본군 출신의 김창룡이 김창복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해방정국이 되자, 약삭빠르게 빨갱이 사냥꾼으로 옷을 갈아입고, 남로당이건, 사민주의건 모두 이승만 정권에 방해되는 것들은 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의 상징의 한 축, 이렇게 두 축이랄까,
작가는 몽양 여운형과 그의 사랑을 그린 2021년 소설 <파란 나비>에 이어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사 세력의 군대, 그의 비서였던 김지회, 김구와 함께 북으로 갔다가 그곳에 남은 김원봉, 일본 육군에서도 보기 드문 천재 김종서 중령, 오일규 등과 이승만과 일본육사, 만주국육군 군관학교 출신의 친일 장교들, 독립군 사냥꾼으로 간도특설대에서 활약했던 이들이 빨갱이 사냥으로 여기에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밀어붙이는 이승만 일파와 그 대척에 사민주의를 지지하며 이를 지향하는 양심적 군인들, 김달수의 소설 <태백산맥>이 도덕적이면서 외로운 지식인 이현상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스물 세 살의 청년 김지회와 열아홉의 조경진을 그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염상진과 염상구 형제로 상징되는 그런 구도는 아니다.
해방된 조국의 인민을 지키는 것은 군인의 길, 같은 민족을 쏴 죽이라는 명령은 따를 수 없다
건국 당시로서는 드물게 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굳건한 신념을 지녔던 여운형은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대중에게 묻고 선거를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1945.10.1.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사촌 아니다”라고, 적색이 어디있냐,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오늘날 민주주의의 조선을 건설하는 데 공산주의자를 배제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 다 같이 되어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면 그만이 아니냐. 많고 적은 것은 결국 인민투표로 결정할 것이다. 영국을 보라. 6, 7년간 전쟁 공로자 처칠이 물러나고 노동당이 승리했다. 그러나 적색은 아니다. (이기형 지음<여운형 평전>, 실천문학사, 2004)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는 김지회와 조경진이 중심에 있다. 1948.7. 여운형이 피살되고, 그의 장례를 치르던 날, 김원붕(김원봉을 가리킨다), 김종서, 오일규와 김지회, 문상기, 윤차돌, 이기주, 최남구, 홍순혁 등이 모여 이상국가 “남도 인공”건설 결의를 하는데.
여?순의 시원은 제주 4?3
1948.4. 3.1운동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미군정통치반대 시위에 참여한 도민을 향한 발포, 미군정, 경비사령부, 서북청년단과 1948.4.3. 일어난 남로당, 민족민주의전선과의 무장 충돌을 시작으로 10.19. 여수주둔 향토연대인 14연대에 제주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이를 거부한 사민주의의 김지회 중위와 남로당원 지창준(지창수를 가리킨다)상사 등이 봉기했다. 48년 짧은 몇 개월 동안에 문상기 중위가 빨갱이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고, 김창복은 대위, 소령, 중령으로 초고속 진급을 하고, 진짜 빨갱이가 있기나 한 건가. 등장인물 박모 소령은 박정희다. 그가 군내 남로당, 사민주의자들을 얼마나 팔았는가, 파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조작하기까지…. 여기서 군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김종서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더해지면서, 한편의 마키아벨리 전술을 보는 듯.
여수와 순천, 구례, 산청, 함양 일대 지리산의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
48.4. 김지회는 광주의대 부속병원 입원 중 간호사 조경진과 만났다. 6. 광주 4연대에서 분리돼 여수 14연대가 만들어질 때 여수로 간다. 빨갱이 사냥꾼 김창복은 남도 인공 구성원들을 주시, 이들을 내사하고, 10.19. 터진 여수 14연대의 봉기군은 10.20. 순천장악, 10.21. 봉기군 3개 지대로 나누어 전주, 광주, 진주를 향하고, 정부는 광주에 반군토벌 전투사령부를 설치, 밀고 당기는 공방전이 11월이 되자 봉기군은 지리산으로, 구례 일대에서 크고 작은 공방전이, 49.1. 지창준 토벌대에 체포, 49.3. 남원, 구례, 함양, 산청, 거창 등 지리산자락을 누비며 전투를 벌인다. 4.9 토벌대의 봉기군사령부급습. 4.13. 조경진 토벌대에 체포, 4.23 조경진, 김지회 사체 확인.
여순특별법(21.6.29 제정),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위원회(여순사건 위원회)의 의결을 실행하기 위한 전남도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실무위원회도 구성, 22년부터 24년 8월 말 기준, 피해 신고 7,465건 중 40.17% 중앙위원회 계류, 조사 만료에도 6,577건 처리 안 돼, 신고접수 기간이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사건 처리율 9.5%다. 조사를 제대로 안 하는 것인지.
김지회와 조경진 이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버린 1년, 이 동안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 국가폭력의 전형을 보여주는 제주 4.3과 여순 10.19. 한국 전쟁 동안의 학살을 뛰어넘어 5.18. 그리고 6.10으로 이어진 현대 한국의 굴곡진 역사, 작가는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사건 중심에 김지회와 애틋함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조경진에게서 다윗 이야기를 전해 듣고 흥미로워하는 김지회, 술을 마시면 가끔 폭발하는 그의 심리상태까지, 불안 회피, 안정 갈구, 인정 욕구까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이십 대 청년이 구국의 일념으로 봉기했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 조경진과 동지들에 대한 애정과 미안함, 복잡미묘한 심경의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린 소설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