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법서설 -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재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평점 :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서설
17세기 사람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1637년 네덜란드의 레이던에서 출판됐다. 당시, 갈릴레이는 유죄 선고를 받았던 만큼 자연학적 진리들을 공개한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일이었기에. 옮긴이의 해제는 “휴머니티의 원리를 새롭게 사유하는 하나의 길, <방법서설>이란 제목이다.
서설을 다 읽을 수 없다면 여섯 개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학문과 관련된 다양한 고찰을, 두 번째에서는 데카르트가 찾는 방법의 주요한 규칙을, 세 번째에서는 데카르트가 방법에서 끌어낸 몇 가지 도덕 규칙을, 네 번째에서는 그가 형이상학의 토대인 신의 현존과 인간의 영혼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 근거들을, 다섯 번째 그가 찾은 자연학에 관한 질문의 순서를, 인간의 영혼과 짐승의 영혼 사이의 차이를, 마지막으로 자연의 탐구에서 더 전진하려고 그가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를, 왜 방법서설을 쓰게 됐는지를, 각각 담고 있다.
6부 체재인 방법서설, 당대는 신의 세계다. 이 책은 종교나 신학적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을 소재로 쓴 책이면서, 새로운 과학도 다루며 프랑스어로 쓰였다. 학문의 언어라는 라틴어 대신에 말이다. 이 역시 전통과의 단절이라 할 수 있어, ”새로움“이다. 방법서설의 의미는 새로운 과학과 휴머니티에 대한 철학을 새로운 형이상학적 토대를 세우려는 작업이었다.
방법서설 4부 “생각하는 나를 곧바로 생각하는 실체로 정의”
나,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나를 기체 혹은 주체로 정의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이 용어가 인간 정신을 지시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봤다. 나는 “생각하고 말하는 나를 의미한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철학의 제일 원리에서 다른 진리 혹은 원리를 끌어낸다. 정신이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모두 ‘참’이라는 일반 규칙은 이 제일 원리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파악된다고.
방법서설 5부 “과학과 인류의 공공선”
당대, 코페르니쿠스적 지동설은 금기다.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불경이기에, 데카르트는 지동설을 지지해 유죄 선고를 받은 갈릴레이의 형 선고가 취소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5부의 내용은 그가 출판을 포기한 <세계>에 실린 내용의 요약이다. 여기서는 심장운동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심장 이론은 기계론적 방법으로 생명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간 신체를 영혼과 결합한 것으로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영혼과 신체의 결합체로서의 인간을 참된 혹은 전체로서 인간이라 부른다.
방법서설 6부 “자연학 탐구의 유용성”
건강과 인류의 공공선을 위해서는 자연에 관한 탐구와 기술로 자연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윤리의 조건인 ‘건강’을 위해서다. 데카르트는 윤리와 지혜를 위해서는 건강이 필요하고 의학과 기계의 발명 그리고 기술이 인간의 첫 번째 신인 건강한 삶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이 우리를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처럼” 만드는 것은 건강의 보존과 의학과 관련해서다.
데카르트는 신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의 분리를, 인간의 완전성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일들’이며 중세 신학의 초자연적 계시에서 독립적이다. 그는 철학은 종교와 스콜라철학의 권위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순수하고 종교나 철학으로부터 도움받지 않는 자연의 빛에 의한 진리 탐구”를 의미한다. 이는 철학자에게는 인간을 현재 그의 자연적 상태 그대로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학과 구분되는 철학은 몽테뉴와 샤롱의 생각이기도 하다.
신학적 절대주의에서 휴머니티에 관한 철학으로
근대 철학은 위기에 대한 자각과 함께 생겨났다. 중세의 붕괴, 근대인은 옛 질서 안에서 자신이 차지했던 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근대의 기계론적 자연이 과거의 의미 있는 장소를 대신한다. 이제 사물들은 기계론적 인과관계에 종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는 의미의 장소가 아니라 사물들의 우연적이고 중립적인 상호 관련의 공간으로, 인간은 옛 질서가 보증하던 자신의 고유한 자리와 내용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됐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기술로 자연을 전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 지성이 자연의 법칙 전부를 인식할 수 없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관점에 따라 진행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지금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어야 할까, 그 이유는 위와 같다. 특히, 현대 기술적 절대주의에 맞서 휴머니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 이것이 현대 철학적 과제다. 기후위기라는 현실 상황, 인류세라는 아주 특별하고도 기막힌 지질시대, 지구의 절반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생태, 다양성 등 오늘날 제기되는 문제에 관한 새로운 인식으로서 우리는 <방법서설>을 다시 읽어야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