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
지은이 신복룡 선생은 원로 정치학자. 주된 연구 분야는 정치사상사로, 구체적으로 구한말의 동학과 전봉준의 일생에 몰두해있다. 1985년 40 나이에 미국 유학을 계기로 현대사로 눈길을 돌렸다. 해방정국의 자료 1만 5천여 쪽을 복사하여 돌아온 후, 2001년 <한국분단사연구:1943~1953>, 대한민국 광복군이 설립되고 3년이 지난 시점부터 한국전쟁의 정전까지를 담아냈다.
이후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이<주간 조선>에 연재했던 글이 이 책의 바탕을 이룬다. 좌, 우로부터 보수신문에 기생하는 사람으로, 우파 쪽에서는 빨갱이라고, 오도 가도 못 하는 사면초가의 상태가 됐다. 아무튼, 이 책은 2017년 학교를 떠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해방정국사를 정리한 역사와 절반의 구술사로 엮어냈다. 노학자는 주간 조선에 연재하려고 2016년부터 썼던 원고를 2024년 광복절을 앞두고 마무리했다. 실로 9년 동안을, 자신이 세상에 내놓는 마지막 책이자, 지금까지 속 시원하게 자기 생각을 떨어놓을 수 없었던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쓴 글이다. 이 책은 3판으로 중앙북스에서 펴냈다.

신복룡 선생은 이 책의 곳곳에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자신의 주장과 견해가 지지받지 못함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눈에 띈다. 선생은 6.25 전쟁이라는 용어에 민감하다. 3년 동안의 전쟁을 발발 일을 기준으로 이름 붙이는 예는 없다. “한국전쟁”이란 표현이 적합하고, 국내에서 벌어진 전쟁이라 내전이라는 부른다고, 전 성신여대 교수로 통일부 장관인 김영호(87년 녹두비평사건으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유죄판결을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는 그의 책<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 과정>(두레, 1998, 성신여대출판사에서 2006. 다시 출간)에서 한국전쟁이 미, 소 냉전의 소산이었지 김일성의 결심이 아니었고, 김일성은 서울만 점령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남한 전역을 공산화하려 했다고 하여, 신복룡의 내전설 즉, 김일성의 개전 의지에 따른 전쟁이었다는 논리보다는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미, 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은 한낱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일성에게 더 강한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겠냐고….
와다 하루키는 한국전쟁의 개전 의지는 김일성의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썼다(<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남상구,조윤수 역, 청아출판사,2023), 현상의 원인은 하나가 아니기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 책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전 6권, 한길사, 2004년 25주년 재출간, 한국의 근현대사연구 발전과 역사관에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송건호, 백기완, 강만길, 최장집, 김윤식 등이 저술에 참여했다) 중 1~3권 해방 3년사(1948년 정부 수립)와 4권 해방 8년사(한국전쟁 종전까지)에서 언급된 내용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해방정국, 한국전쟁을 살펴보고 있어, 결이 다르다. 곳곳에 인용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아포리즘과 사상, 이것이 어떻게 미군지휘부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다룬 총 32장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