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역사를 만나다 - 역사에 정도를 묻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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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정도(政道)를 묻다


이 책은 사마천 연구에 천착해온 김영수 한국사마천학회장이 2015년부터 2016년 3월까지 <신동아>에 14차례 연재했던 역사칼럼을 다시 손을 보고, “정치와 정치가의 언어-유머와 언격”을 더한 15편의 글이 실려있다. 그는 10년 상황이나 지금이나 놀랄만큼 한치의 다름도 없다고, 정치는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조금 빠를 수 있고, 늦을수도 있지만, 반드시 받게된다고 말한다. 강태공이 했다는 말을 더듬어보자 "백성을 힘들게 하는 통치자는 누가 되었건 벌을 받아야 한다"고, 


2024.7.2. 한 정당이 그 전날 국회운영위원회에서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한심한 작태와 후안무치한 언행을 보고 ‘지록위마’를 사자성어를 빌려 논평했는데 이를 계기로 이 책을 펴낼 마음을 먹었다고 적고 있다. 


지은이는 역사공부는 ‘역사의 법정’에 서는 행위라고 생각하면서 이 책의 제목을<정치, 역사를 만나다>로 달고, “역사에 정도를 묻는다”는 부제를 달았다. 정도(政道)란 정치의 방침을 뜻한다. 역사는 인간활동의 총화다. 정치는 인간활동의 집약이다. 집약된 활동이 모여 총화가 되고, 총화가 곧 역사다. 그릇된 정치의 집약은 총화가 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정치의 정(政)은 바를 정正+ 칠복?, 쳐서 바로잡는다는 게 정치인데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우치(愚癡)할 뿐이다. 


여기에 실린 15편의 역사칼럼은 10년 전의 상황을 아울러 짐작해 볼 수 있어, 기대치 않게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정도(政道)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재상의 현대적 의미”를 비롯하여 “비리, 부패척결의 전제조건”, 왜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여불위의 야먕-야망의 질적 차이는 안목의 차이에서”, “동양정치사에서 권력의 견제장치”, 권력자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언제, 어떻게 탈이 날지도 모르는 잠재적 위험과 불안요소다. 중국의 십상시의 난으로 유명한 역사적 교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록위마의 정치”, “아부의 기술(타락한 정치판의 ABC)”, “생존의 수단, 불패의 전략으로서 외교(외교의A~Z까지)”, “항장무검, 의재패공”, “민심을 얻는자 공천을 얻는다?-위로 붙을 것인가, 아래로 내려갈 것인가” “역사는 그 자체로 뒤끝이다.” “사실소세-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 “혼용과 무도의 정치- 나라 망치기로는 혼군 하나면 충분하다.” “소통의 정치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인재를 부른다-위 아래가 막히는 나라가 망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와 정치가의 언어”


내용의 흐름은 인재와 권력, 법의 적용, 공평무사, 지록위마, 아부, 외교, 팩트, 민심과 공천, 사실소세, 혼군정치, 소통의 정치가 열쇳말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실린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 하나 결말을 적어둔다. 물론 결말은 늘 불행으로 끝난다. 


첫 번째 글은 재상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인재 등용에 관한 것이다. 촉의 제갈량이나, 당태종의 ‘위징’, 관포지교의 ‘관중’을 떠올린다. 가슴에 배 한척이 들어가고도 남는 재상은 이제 볼 수 없는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제2인자, 재상론의 현재적 의의를 논한다. 기실 우리 정부의 체제나 직제가 우습기는 하다. 대통령제이면서도 국무총리를 두고 있으니, 마치 제왕적 대통령에 영의정 국무총리, 부통령정도의 업무일까, 그것도 아닌 듯하고. 


부패나 아부, 권력집중과 견제없는 권력행사는 시한폭탄, 어디로 튈지 모를 불규칙성, 전 정권이나 현 정권의 진보냐 보수냐는 성향을 떠나서, 권력을 둘러싼 끊이없는 작용과 반작용의 역사다. 복지부동이 시작되면, 레임덕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성나면 뒤엎어버리기도 한다. 촛불정국이 바로 그런 것이다. 힘이 주어졌을 때, 부패사슬과 시스템을 향해 가차없이 칼날을 휘두르면 개혁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국가폭력이다. 같은 행위이지만 역사적 평가는 달라진다. 민심은 잠복한 채 상황을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누구에게 벌을 내릴 것인가 판단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은 늘 세겨두어야 한다. 


소통부재는 망국의 지름길


위아래가 통하지 않으면 병통이 생긴다. 장기에 폐색이 일어나 썩어들어가게 되어 마침내는 목숨을 잃게 된다. 현재 여,야당을 싸잡이 패거리 정치로 몰아붙이는 양비론은 별의미가 없다. 정당의 간신 정간(政奸), 검찰의 간신(檢奸), 역사를 기록하는 언론조차 부패하여 아부하고 권력자에 빌붙은 이른바 언간(言奸)까지 권력을 견제해야 할 기구마저도 한 통속이 되니, 혼군(昏君)의 나라상태를 어찌 벗어날꼬, 


최근에 말말말, 말의 잔치를 보면서


정치와 정치가의 언어는 이른바 언격은 곧 품격이요. 인격이라는 지은이 평가, 문사철의 인문학 공부가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미래 비전을 얻을 수 없다. 언어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 옛 사람들은 무척 신경을 썼다. 말로 한 약속의 중요성 ‘한 번 의 약속이 백금이나 천금보다 더 중요하다’고, 


무조건 명령이라고 따라서는 안 된다. 안영의 지혜, ‘안자어록’


권력자의 통치가 제대로 시행될 때는 그 명령을 따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명령의 옳고 그름을 가려 실행했던 안영, 그는 통치자의 그릇된 행동이나 명령을 절묘한 충고로 멈추거나 고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좋다. 정치가는 인문학적 소양이 없이는 품격있는 유머도 쓰지 못한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차원 높은 유머감각을 갖춘다면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말은 화술이 아니다. 한나라 때 학자 양웅은<법언>과<문신>편에서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은 마음의 그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소리(말)와 그림을 보면 군자와 소인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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