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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기후위기 시대 펜, 보그, 스웜프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8월
평점 :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불타는 아마존, 지구의 폐였던 그곳에 사람들은 불을 놓는다. 생존을 위한 불이 아니라, 욕망과 성장을 남들보다 더 그리고 빨리 얻기 위해서 쓸데없이 불을 놓는다. 이 불기운이 북극의 하늘을 치솟아 올라 태양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주는 보호막 오존을 찢어놓는다. 불은 태양의 강렬함으로 땅을 태우고, 산림을 말리고, 물도 가져가 버린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 애니 프루는 습지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 시작은 어릴 적 추억과 눈에 보이는 것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예전에 습지에 살던 물살이와 나비, 아름답던 황금 거미도 이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의 생각은 점차로 습지 환경으로 동심원으로 그려가며 기후 위기의 첨예한 경계선까지, 그는 이 책에 펜(Fen), 보그(Bog), 스웜프(Swamp), 이른바 조금씩 모양을 달리해 제각각의 다른 이름이 붙은 “습지”를, 기후 위기 시대의 작은 희망을 담았다. 습지(wetland)란 낱말은 1950~60년대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사냥관련법 개정과 철새 이동에서 나온 것이라고(옥스포드 영어사전은 이렇게 쓰고 있다), 토탄은 낙엽이나 갈대 등의 천연자원이 땅속에 묻혀 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 혹은 이끼나 벼 따위의 식물이 습한 땅에 쌓이어 분해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연료로도 쓰이고, 미생물에게는 영양분 공급원이 되기도.
인간이 만든 재앙
코로나19의 대유행기에 전 세계 사람들은 안녕치 못했다. 호들갑스러운 언론은 중국의 우안의 재래시장 철장 안에 갇힌 천산갑이 주범이라고 난리를 쳤다. 결국에는 천산갑은 중간 매개체가 아님이 밝혀졌다. 바이러스 기원에 관한 논문을 낸 연구자들은 한결같은 견해는 유행병을 불러일으킨 진정한 원인 사회조직,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인간과 동물의 접촉, 현대 인간 사회가 제공하는 증폭 구조라고 지적했다. 농업과 생태계가 서로 뒤섞인 상황에서 아마존의 불처럼, 미지의 생물이 사는 고대의 숲을 공격함으로써 바이러스와 접촉하게 된다. 서식처를 잃어버린 박쥐는 도시의 으슥한 곳에 있는 헛간과 다락방으로 옮겨와 살게 된다. 즉, 접촉, 개간, 시장, 국제무역, 이동 등, 인간의 무한한 성장 욕구가 부메랑이 돼, 인간 사회의 재앙을 일으킨다. 환경오염복구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듯,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됐다.
습지, 펜, 보그, 스웜프
습지의 역사는 습지 파괴의 역사다. 세계 습지의 대부분은 마지막 빙하기 때 빙하가 녹아 쏟아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펜(토탄 생성 습지 중에서 개울, 강처럼 광물이 함유된 토양과 접촉한 물이 흘러드는 곳으로 수심이 깊은 곳), 보그(펜에서 말한 습지 중 강우가 수원인 곳으로 수심은 펜보다 얕다), 스웜프(토탄(土炭) 생성 습지 중 광물을 함유하며 나무와 덤불이 무성한 곳, 펜이나 보그보다 수심이 얕다), 바다로 흘러가는 길목에 있는 풍부한 자원 저장고였기에 수많은 생물을 먹여 살렸다. 습지의 다양성은 그저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그 무엇이었을 뿐이었다. 맹그로브 숲도 습지처럼 여겨진다.
지은이가 습지, 토탄의 관계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탄소를 가두어두는 습지, 툰드라 지역 특유의 보그는 영구동토층 위에 자리를 잡고 수천 년 동안 탄소를 가두어두는 역할을 했지만, 기후 온난화로 동토층이 풀리면서 온실가스가 빠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세계 토탄지대 이니셔티브(2016년 마라케시에서 열린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토탄을 보존하고 대기 배출을 막기 위해 구성된 전문가와 기관들의 모임)의 목적은 토탄지대 국가들이 전 세계 육지의 3퍼센트를 차지하는 습지를 보존,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침묵의 봄"에서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화학물질사용금지에서 자연 복원에 이르기까지
환경보호론자들의 논의는 생태 자본주의를 넘어 생태복지국가까지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형국이다. “탈성장”을 넘어서자고, 레이첼 카슨이 쓴<침묵의 봄>(인디고서원, 2019) 제초제와 화학물질 사용을 경고한 생태계 분야의 고전을 비롯하여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김영사, 2020), 조너선 밸컴의<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이도스, 2017), 발렌틴 투른과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의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코리브르, 2017), 마이클 셀런버거의<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 2021)에서 다루는 주제와 내용을 애니 프루는 습지에 함축시키고 있는 듯하다. 지은이는 많은 보고서와 책들을 참고하고 또 인용하면서 설득력 있게 다가선다.
한국의 "람사르 등록 습지"와 세계문화유산 “한국 갯벌”
1997년부터 21년까지 람사르 등록 습지는 24곳이다. 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 평창군 대관령 오대산 국립공원 습지, 영월의 한반도 습지, 전남 신안 흑산의 장도습지, 순천만, 보성 갯벌, 무안갯벌, 전북 고창, 부안 갯벌, 운곡습지 등이다. 이곳이 담수와 관련 있다면, 해수, 즉 바다 생태계와 관련해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 순천 등 4곳에 이어, 무안과 고흥도 등재 절차를 밟는 중인데, 이곳에는 2,000여 종의 생물이 사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멸종 위기에 놓인 철새의 기착지로 보존 가치가 아주 높은 곳이다.
신안 한 곳에서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기 설치로 물살이와 땅의 생물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앞바다는 생태계 보고인 세계문화유산의 갯벌이 놓여있네, 보존과 파괴가 공존하는 섬 지역, 이것이 아마 한국의 환경 현실이 아닌가 싶다. 갯벌 끝 바다 위를 흘러 다니는 연간 2만7천 여 톤의 쓰레기, 가장 많은 곳은 역설적이게도 전남 신안군의 고이도다.
기후 위기 시대, 습지에서 찾는 조용한 희망,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다. 람사르 습지의 의미와 한국 갯벌의 의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삼을 만큼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를 돌이켜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게 바로 이 책이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