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복
리샤르 콜라스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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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복, 세푸쿠


할복은 잔인한 예술이다. 누군가는 탐미적이라고 했지만, 단장의 고통, 깊이 찌르면 장이 터져 나오게 되니, 깨끗하게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는 실패한다. 피비린내보다 더 역한 몸 안의 것들이 밀려 나와 풍기는 악취는 고통의 또 다른 상징일지도, 주인공 에밀 몽루아 아니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 그는 어렸을 때 집에 자주 왔던 일본인 의사이자 군인인 겐소쿠의 할복 장면을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배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도, 가족들이 살던 곳이 미군의 폭격으로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린 볼프강에게 명상법을 가르쳐준 뒤, 내 아들을 만나면 전해달라며 금화를 남기고,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의 서막.


지은이는 일본에서 한 세대를 산 프랑스 출신으로 20여 년 동안 샤넬 재팬 사장을 맡아 온 명품브랜드 전문가이자 작가다. 이 소설<할복>은 어릴 때 세계 1차대전 겪었던 프랑스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진 독일의 의대생, 이 들 사이에 1931.7.8.에 독일인으로 태어난 볼프강 모리스 폰 슈페너, 2차 대 독일패전 후 프랑스로 간 그는 독일에서 유대인을 잡아들일 때 어머니가 숨겨준 에밀의 이름을 따고, 프랑스에서 만난 몽루아의 성을 따, 전후 혼란을 속에 만든 가짜 신분증의 에밀 몽루아로 살아간다. 프랑스 프레스-랑트랑지장 신문사에 입사, 기자로, 한국전쟁이 터지자 영국군 군함에 타고 한국으로 특파원으로 살다가, 사랑하는 여인 선희와 배 안에 든 태아를 잃고, 일본으로 도피, 1965.1.1. 일본의 상징 “황거”부근 언덕 공원에서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다.


65.1.1 새해 첫날, 주일본 프랑스 대사관에서 15년 동안 일했던 R.C 앞으로 몽루아가 보낸 물건이 도착한다. 그의 35년 생애만큼의 자신의 기록을 담은 수첩 36권과 작은 함 속에 들어있는 금화와 함께 들어있는 메모, R.C는 수첩을 신정 휴가 동안 다 읽었다. 수첩 22부터 나오는 낙동강 전투, 몽루아는 전쟁터로 미군과 함께 움직인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한국말을 잘하는 J.T,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종군기자와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에게는 삶의 끈을 끈질기게 놓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전쟁은 악마를 만든다


독일 나치군의 생체실험에 깊이 관련됐던 의사인 아버지, 전쟁이 그를 악마로 독일의 생체실험을 보고 간 일본군 장성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에 관여하다 주독 일본대사관으로 온 켄소쿠, 그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의미를 되새기며, 갈등을 겪는데, 이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던 친구이며, 2차 대전의 동맹국 군인이자 의사였다. 하지만 이들은 세계관과 가치관은 상반된 것이었는데, 


볼프강의 아버지는 패색이 짙어지자, 피아노를 치던 어머니를 권총으로 쏴 죽이고, 지하대피소를 숨은 볼프강을 죽이려다, 끝내 죽이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무작정 집을 나와 남으로 남으로 몇 개월 동안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라 그렇게 살아남은 볼프강, 외할아버지를 찾지만, 그는 독일군에게 레지스탕스의 정보를 넘기지 않고 죽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형처럼 멘토 역할을 해주던 유대인 소년 에밀도 같이 오다 독일군인지 소련군인지 몰라도 그들이 설치해놓은 폭탄에 걸려 죽었다. 또 볼프강만 살아남았다. 차마 죽지도 못하고, 또다시 죽음의 도사리는 한국으로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 속에서도 끝내 살아났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평소 그를 지켜봤다는 사팔뜨기 여관주인이 선희를 죽인 자들의 앞잡이였을지도 모른다고 그에게 분풀이한다. 칼로 숨통을 끊었다. 그렇게 자신 안에 쌓였던 분을 풀어버리고 일본으로. 그 순간 그는 악마가 돼버렸다. 악마처럼 변해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에게 나타난다. 죄가 있든 없든, 자신을 향한 분노를 누군가에게로 돌려놓는 순간 악마가 그를 삼켜버린 것이다. 선불교의 명상으로도 그 안에 잠재된 악마를 끄집어낼 수 없다면, 다스릴 수 없다면, 그를 죽이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그가 할복을 선택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2차 대전의 참상을 겪은 독일인 볼프강, 프랑스에서 새로 태어난 에밀 몽루아, 그에게 전쟁이란 질곡과 고통은 트라우마로 남았을까, 얼마나 고통을 받아야 사람은 죽는가, 스스로 배를 가르며 전해지는 고통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고, 공산당에게 그를 대신해 죽어간 선희와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그리며, 표지에 쓰인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에서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한국전쟁 특파원 에밀 몽루아의 비극이란 동떨어진 표현이다. 그에게는 안정과 포근함 그리고 평화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풍경,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모두 악마로 변해간다. 이성적이든 그렇지 않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한때 찾아온 행복감도 전쟁이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린다. 행복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그렇게 증오했던 악마가 돼간다. 결국 내 안의 악마를 잠재우는 방법은 함께 죽는 할복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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