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는 기술 - 영혼의 고귀함,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경이로움에 관한 고찰
롭 리멘 지음, 김현지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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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되는 기술이란 예술의 경지?


공공지식인이라는 생소한 표현, 지식은 공공의 자원으로 여기고, 공유하는 활동인가 싶다. 혹여 “고도원의 아침 편지”처럼 가볍고도 잔잔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 해주는 그런 활동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지은이는 문사철 즉, 인문학의 부흥, 철학,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활동을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를 확산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각자도생,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공동체 안에서 연대 또한 경쟁구도로 내몰리면서 “함께 평화”로운 사회라는 말은 일상에서 사라지고 박제화된 구호로 박물관에 내걸릴 판이다. 예전에 이런 시대가 있었노라고, 지은이는 이 책<인간이 되는 기술>에서 “인간이 되는 것은 기술”이라는 말의 의미를 거듭 설명하고 있는데, 우선 인간이 되는 기술은 학문이 아니다. 이론으로 연마하는 게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게 보이는 건 속임수 일뿐이라고, 우선 사람이 돼라는 말처럼 들린다. 또 보자. 인간이 되는 기술이란 우리 존재에 내재도니 모든 욕망과 불확실함, 의심, 두려움, 실패를 품은 개개인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자중자애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싫은 내 모습이라도 내 자신임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인간이 되는 것은 기술이다. 우리는 올바른 삶의 방식과 좋은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지만 이에 설득력있는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답이 없기에 누구도 그 답을 알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네 가지 고찰의 주제는 파스칼의 다음과 같은 경고에 관한 답이다. 


“인간이라는 자신으로 돌아가, 모든 존재와 비교했을 때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 멀리 떨어진 자연의 외딴곳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그가 갇힌 우조라는 작은 방에 갇혀 지구와 세계, 도시,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매겨보자. 무한함 속의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긴 문장을 톺아보면서 책 속에 이 경고에 대한 답으로 네 가지 고찰을 하고 있다. 


첫 번째 고찰은 전쟁에서 배우는 삶(니체의 편지), 두 번째 고찰은 어리석음과 거짓에 대하여, 세 번째 고찰은 용기와 연민에 대하여, 네 번째 고찰은 불안과 몽상이다. 


중요한 첫 번 째 고찰 “전쟁에서 배우는 삶” -니체의 편지


19세기 말인 1874년 니체 나이 서른에 그가 살던 시대 현상에 관한 글을 썼다.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를바 없다. 종교의 바다는 점차 사라져 늪이나 고인 웅덩이를 남긴다(물신숭배의 견고함을 지탱해주려 밤새 주변을 밝히는 십자기처럼) 국가들은 가장 적대적인 방법으로 다시금 멀어지고, 서로 산산조각내고자 한다. 어쩌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 전쟁처럼 말이다. 척도나 규칙이 없는 맹목적인 자유방임주의 정신에 따르는 과학은 사람들이 확고하게 믿었던 모든 것을 부수고 위태롭게 한다. 


또 보자, 놀랍게도 오늘날의 그것과 전혀 차이가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지식층과 국가는 비열하기 그지없는 화폐 경제에 끌려가고 있다. 세상이 이보다 세속적이었던 적이 없으며, 사랑과 선함이 이보다 간난했던 적도 없다. 이런 혼란스러운 세속화 속에서 지식층은 더 이상 등대나 보호처가 되지 못한다. 그들 스스로도 날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무심하며, 사랑이 없어지고 있다. 현대 예술과 과학을 포함 모든 것이 다가오는 야만성을 키우고 있다.”라고,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의 일상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지 않는가, 아울러 도덕 교육자가 이렇게 필요했던 적이 없었다는 파스칼의 말, 전염병이 돌고 가장 의사가 필요할 때, 그들 역시 역시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다. 


이렇게 시작된 고찰은 어리석음과 거짓이 판치는 사회와 현상 역시 첫 번째 고찰과 같은 맥락이며 연쇄다. 세 번째로 이어지는 고찰은 용기와 연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교묘하게 있는 자들의 지배는 정당한 것이며, 너 또한 그런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정직하게 살지말고, 약삭빠르게 남의 약점을 잡고 흔들 수 있어야 내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라고, 내가 악해져야 안전한 사회라고. 결국 이런 인간의 모습은 네 번째 고찰에서 보는 불안과 몽상의 이중적 상태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질까 불안하고, 뭘 열심히 하다보면 내가 이러다 어떻게 되는게 아닌가, 여전히 시계추처럼 중심을 잡지못하고 양옆으로 흔들리는 것, 그래서 인간이 되는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닌가,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기술은 거의 예술의 경지가 아닐까 싶을정도다. 영혼의 고귀함을 되찾고,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경이로움을 확인해보는 의미로서 이 책, 일독을 권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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