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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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이야기 


조소연 작가의 제11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태어나는 말들>은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때로는 수치심과 혐오마저 드는 구석을 감추지 않고 다 떨어낸다. 마음속 어느 구석에 안 들어갈 만큼 꾹꾹 눌러 켜켜이 쌓아둔 묵은 이야기들을, 내 삶 속에서 지워지고, 떠나간 이야기처럼 여겨졌던 이야기들이 내 뒷덜미를, 내 발목을 잡는 순간들, 여전히 씌워진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트라우마이든 히스테리이든, 내 어머니라는 존재, 이 책의 표지에 적힌 글 “어머니의 고통을 끌어안고 슬픔과 막막함으로부터 다시 삶을 써 내려가는 자기 해방의 기록” 


이 책은 무겁다, 너무 무거워 읽는 내내 어떤 중압감을 작용한다. 마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겹쳐지는 듯한, 드 보부와르의 <제2의 성>을 연상케 하는…. 1부 애도와 기억’이 어머니에 대한 회고라면, ‘2부 여성은 왜 아픈가?’ 어머니의 살아온 삶과 자신의 삶을, 3부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제주 4.3,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약자의 이야기, 모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생애에 어머니만큼 깊이 엮인 존재가 또 있을까?


아버지는 육신이 상해갔지만, 어머니는 정신이 황폐해져 갔다. 흔하디흔한 클리셰,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고 늙어가 죽는 정형된 삶이라도 제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은밀한 이야기가. 부모의 만남, 혼인, 임신과 출산, 아이들 키우고 뒷바라지가 생의 목표이자 즐거움인 듯했던 어머니는 첫째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자식 셋을 대학에 보내고, 늘그막의 부부는 여생을 기댈 공적 연금 하나도 없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대가리 굵어진 큰아들은 교사가 되고 어머니에게서 더 멀어져갔다. 그렇게들, 어머니라는 희생적 돌봄의 장치는 허무하게, 기대할 것 없는 남편보다 희망이 되어준 아들, 기대고 비빌 언덕이 되어줄 것을 바랐던 아들은 다른 누군가의 딸과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떠났다. 


어머니는 술을 마셨고, 청소일도 했다. 눈치 볼 필요 없는 나만의 자유로운 금전이 필요했을까. 그렇게 청소일을 마치고 등산을 가서, 남자를 만났다. 어머니는 정신이 그리고 죽었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누가 그녀를 죽인 것인가? 그녀의 고통이 딸을 통해 언어가 될 때, 그래 세상이 바뀌었나?


작가는 묻는다. 어머니에 대한 이 글쓰기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윤리 너머의 진실, 지상에서 사라진 한 인간의 생애에 어둠의 장막을 거둬내어 진실의 빛을 비추는 일이 아닐까, 글쎄다. 원치 않았던 아버지와의 혼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는 굴레에 여성들은 속박을 당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조금은 나아진 듯, 하지만 본질은 부동이다. 어머니의 “열망”은 인간의 열망이기 전에 아내요, 어머니라는 치장 앞에서 여지없이 감춰야 했다. 


어머니의 고통, 그 긴 시간을 마주하며


여성의 굴레, 집 밖으로 탈출을 결행했지만, 혼인이란 인습의 포로가 되고, 자식 대로 이어지고, 가부장, 젠더…. 남동생은 내가 가족들 몰래 남자 친구를 방 안에 들였다는 이유로 ‘더러운 창녀’라고 했다. 남과 여와 만나면 혼인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친구상태면 창녀?, 이분법적인 사고의 원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모성이란 또 무엇인가, 


“모성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지독한 감상적 헛소리들에 파묻혀 있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지시하는 징벌적 규율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날에도 문화적 구속복으로 남아있다.”(73쪽) “

  어머니다움이 정체된 관념이 될 때, 그리하여 무한한 희생적 돌봄이라는 환상이 될 때, 모성은 야성적이라고 인지되는 어머니들을 벌주는 도덕적 무기로 사용된다. 그 제도는 집단생활 그 자체의 일부인 존재 양식이기에, 수치심이나 죄책감이 되어 내면으로부터 어머니들을 때라는 무기이기도 하다.”(시리 허스트베트<어머니의 기원>(2023, 뮤진트리) 48쪽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작가는 현기형의 제주 4.3을 배경으로 유가족의 삶을 그린 소설<순이 삼촌> 안에서 그날의 일에 대해, 그날의 진실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 과정은 곧 언어의 진실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고통으로 발견한 언어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아로새겨진다. 개인의 언어가 공통의 언어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바로 말하기의 순간에 개인의 삶은 역사가 된다. 진혼이다. 큰 역사든 작은 역사든 사람의 역사다. 나는 내 어머니와 같은 시간 속에 있었고 그 시간 속에 내가 봐왔던 것을 여기에 기록한다. 그녀에게 언어를 되돌려 주는 것. 죽은 자를 위해 살아있는 자가 대신 말하는 것, 그 과정에 개인의 상처가 역사가 되는 길 위에 선다고 믿는다. 나는 개인의 전쟁을 치른 내 어머니와 집에 갇혀 죽은 다른 어머니들을 위한 진혼비를 세울 것이다. 그녀들의 영혼이 더는 시커먼 절망 속에 있지 않도록, 그녀들의 삶이 곧 역사가 되도록….


어머니를 복원하면서 스스로 삶을 수렁에서 건져낸 자기 해방의 글쓰기, 긴 여운을 남긴다. 여성학적인 접근과 페미니즘 시점 혹은 관점에서도 보면, 글쎄다. “어머니”, “여성” “가부장적 사회문화”와 그 굴레에서 여성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어갔는지,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를 때, 우리는 여성이 아닌 어머니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그런 ‘어머니상”의 희생적 돌봄을 강요하고 있다는 자각도 인식도 없다. 아니 있다. 애써 외면할 뿐인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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