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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의 정의론 ㅣ 정치연구총서 5
조계원 지음 / 버니온더문 / 2024년 2월
평점 :
갑을관계의 정의론
"갑과 을 사이의 정의"는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아주 간단한 의문에 관한 답은 꽤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노예제에서 비롯된 권력관계, 힘의 논리, 파워, 공화제, 공동체의 이익 등 아주 다양한 각도의 논의와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생각들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민음사, 2015)을 번역한 지은이 조계원은 이 책<갑을관계의 정의론>은 신 공화주의(Neo-republicanism) 관점에 따라 공화주의 사상과 이론의 “지배” 개념을 한국 사회의 갑을관계 문제에 적용하여 이 안에 담긴 부정의를 이론적 경험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모든 시민이 공적, 사적 권력의 지배에 노출돼 있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보고 이러한 비지배의 자유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조건을 형성하는 데 관심을 두는 사상적 이론적 견해를 따른다.
2013년 이후 ‘갑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자, 당시 민주당은 “대리점 거래의 공정에 관한 법률”을 개정 계약서에서 우월적 지위를 암시하는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빼기로 했다. 이후 계약서에서 갑과 을이란 명시적인 단어는 사라졌지만, 전통적으로 힘의 우위 표현을 삭제하고 공정을 강조하는 평등한 계약관계를 지향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여전히 누가 ‘갑’이냐는 인식이 여전히 그리고 엄연히 존재한다. 사용자와 노동자, 임대인과 임차인(주거든 상가든), 가맹본부와 가맹점 등에서 갑의 횡포는 권리남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는 선택지의 양보다는 질에 중심으로 둔다. 제아무리 선택지가 많아도 그 질이 문제라는 태도다. 우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갑을관계와 그 대상은 지배를 수반한 갑을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론(正義,justis)은 사법적 정의가 아닌 정치적 정의요. 이론적 검토다. 계약론에 바탕을 둔 정의론(존 롤스)과는 또 다른 공화주의론에 바탕을 둔 정의론이기도 한데, 지은이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정의"다. 규범적 정치이론이 현실이 관한 경험,정책적 연구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전망하는 데 이 책의 특징이라할 수 있겠다.
갑을관계의 특징
지은이는 갑을관계의 특징을 지배 개념으로 분석한다. 갑을관계는 전형적인 형태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갑을관계의 특징은 첫째 갑을관계가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개인 혹은 집단을 뜻한다. 둘째, 갑은 지위나 권력상의 우위에 있어 을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할 수 있는 갑과 을의 공통인식이 존재한다. 셋째, 관계 의존도에서 을이 갑보다 크기에 을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이 갑이라 생각하고, 을은 기본생계와 같은 기본적인 이익을 위해 갑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수용한다. 갑의 행동과는 별개로 말이다. 넷째, 직간접적으로 착취 발생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4장 체제이며 1장과 2장에서 위의 갑을관계의 특징과 내용을 지배 개념으로 분석하고(정치 이론적 분석), 구체적인 갑을관계 사례(3장과 4장)에 적용한다(규범적 정책 분석). 3~4장은 지은이가 <민주주의와 인권> 19권 2호 “직장 내 괴롭힘 방지와 일터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각”과 <인문과학연구> 43집 “갑을관계와 젠트리피케이션:공화주의 이론의 ‘지배’ 개념으로 중심으로”라는 제목을 발표한 논문을 각각 담았다.
갑을관계 “지배”, 특별한 권력 관계, 파워해러스먼트 등으로, 결국에는 비지배의 자유 보장
갑을관계는 법적으로 보면 특별한 권력 관계라 할 수 있고, 이를 정치적으로 보면, 지배 관계라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계급이 사라졌더라도 그 유사한 무엇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보이는 현상이 이해관계라는 세계에 갇히게 되면 우열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 안에서는 갑질이 발생할 잠재적 위험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관계설명을 위해 고대 로마 사회의 노예제를 끌어온다. 갑질이란 현상은 마치 사고 발생이론 “하인리히 법칙”처럼, 위험 수위를 넘어 수면 위로 넘칠 때 갑질이라는 문제로 처음으로 누군가의 관심을 끌게 되는 구조를 설명한다. 예전에는 성폭력, 성희롱 관계에서 자주 논의되던 섹슈얼해러스먼트와 갑질인 파워해러스먼트는 같은 바탕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랄까,
이 두 주제는 대학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라는 장면을 두고 설명하는 예가 많다(일본의 섹슈얼해러스먼트의 선행사례들이 주로 대학의 사례를 다뤘기에 아마도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는 듯하지만, 이 책 역시 교수-대학원생이라는 특별한 권력(파워)관계, 즉 지배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런 듯하지만, 아무튼 이 책의 열쇳말인 “지배”와 “비지배의 자유”다.
공화주의에 관한 관심 증가는 계약론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시각에 대한 불만의 반증
정의론의 존 롤스는 계약론적 시각이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한 협력체제의 불편부당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공동체주의, 페미니즘, 숙의 민주주의, 다문화주의 이론 등의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계약론에 기초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서 공화주의 역시 만능은 아니어서 공화주의 이론의 문제의식이 적절한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존재한다. 갑을관계가 바로 그런 것인데, 아무튼 지배가 불러오는 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도급관계(원도급인-하도급인)의 지배력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이에 관한 고민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갑을관계라는 왜곡된 유교질서 혹은 전통적인 힘과 권력 그리고 지배의 관계와 공화주의로서 물질적 평등을 위한 분배적 정의보다는 보다는 사회적 관계에서 행위자 사이의 권력의 차이가 불러올 지배 가능성을 줄여, 시민들의 동등한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갑을관계에 관한 논의의 장을 넓혀주고 있다.
이 책은 버니온더문 정치연구총서05로 발간된 것이며, 교육부와 연구재단 2017연구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