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의 나라 - 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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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적 정체성? "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


혼종성이라는 단어는 익숙지 않다. 차라리 하이브리드라면 얼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이브리드 승용차지만, 혼종하면 혼혈과 연결 지어지는 것은 고정관념이며, 우리 사회에서 “혼혈”이라는 사회적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일부러 “혼종”을 강조하는 듯하다. “순혈”이니 “순수”는 상상의 산물이며, 끊임없이 섞이고 융화되고, 거기서 또 새롭게 뭔가가 탄생하는 일련의 과정은 혼종성이 없이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진, 지은이 문소영은 언론사 문화부장을 지낸 현직 문화전문기사이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비상임이사로도 활동한다. 미술에서 영화까지, 중앙일보에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칼럼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지은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세계의 보편적인 자본주의 현실이 잘 결합한 이야기라고 평한다. 그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영국이라는 새로운 공간적, 문화적 맥락에서 <기생충>의 흥미로운 지점들을, 그리고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접하면서 기생충과의 연결점을 보게 됐다고. 이른바 한국의 혼종적 정체성을 봤다는 말이다. 


이 책은 한국의 혼종적 상황과 특질을 7가지 주제, 즉 돈, 손절과 리셋, 반지성주의, 하이브리드, 한류, 신개념 전통, 일상의 마이크로 정치, 포스트 코로나와 인공지능으로 풀어본다. 이른바 사회문화평론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돈은 소인배들이나 탐내는거야,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들, 


“돈”은 유교 등의 전통 가치관을 자본주의가 대체하는 상황에 관한 것으로 지은이는 <기생충>에서 나오는 대사 “부자니까 착한거야”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세뇌하며, 금수저 셀럽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종교화된 자본주의 성자가 되어 소셜미디어에 내다 판다.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구독자는 곧 돈으로 이어진다. 천박한 물신주의가 종교로 변하는 순간이다. 조선의 국가이념이 유학을 종교적 지위인 “유교”로, 돈은 불가근 불원근이라고 입으로는 떠들지만, 몸과 마음은 영 딴판이다. 고관대작으로 역사책에 실린 위인 중 꽤 많은 사람이 고리대금업자였던 시대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대놓고 매관매직을 하지만.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오늘의 현실을 보면 또 그것을 기생충을 통해 보면 확연하게 보일 것이다. 


손절과 리셋, 또 가족


이 역시 유교, 아무래도 왜곡된 유교라고 하자, 지배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유교적 집단적주의적 가치 체계는 그 자체가 유학의 왜곡이다. 아무튼, 이를 전통이라치면, 자유주의, 개인주의가 혼재된 상황에서 인간관계를 둘러싼 논쟁, 장유유서, 예의가 물구나무섰다는 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문화 또한 그러하다. 


지은이는 오늘날 분열과 붕괴일로에 서 있는 가족 문제를 들었다. 가족 화해와 봉합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쓰면서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세상을 관찰한다고, 상담한다는 예능프로그램을 마구 욕하면서도 즐겨 보지 않는가, 지은이는 “구하라 법”을 들어 가족이란 도대체 뭐란 말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생물적 부모면 법적으로 상속권이 생긴다. 물론 직계존비속의 순위는 정해지지만, 문제는 양육하고, 교육받게 하고,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 단지 낳아주었다는 것만으로 재산을 나눠주는 게 맞나. 


반지성주의에서 인공지능까지 


지은이는 혼종의 상황과 질서 속에서 다양성의 긍정 에너지 대신에 혼란을 부추기는 반지성주의를 정확히 보고, 짚어낸다. 우리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선동 같은 단문 ‘진실’에 유혹된다.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별하지 못한다. 왜일까?, 민주주의와 평등이 중요하지만, 무지와 지식의 평등, 모든 정보의 질적 평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떠들면 민주주의요,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가짜뉴스와 좋아요…. 눌러, 이른바 메아리 방에 갇힌 이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말 그대로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정보의 바다, 정보의 홍수 속에 진실을 가려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지은이는 재난과 희생양이라는 대목에서 이태원 참사를 들어 말한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나라 그리고 정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혼종적 정체성을


지은이가 주제 삼아 펼치는 이야기의 논리 구조의 문제나 반박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전체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담론이며 이를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으로 이해하면 우선 그의 이야기를 충분히 귀담아듣는 게 우선일 듯하다. 모두 28개의 소주제에 관한 글은 흥미롭다. 치킨과 오징어 게임과 피지컬100, 조선백자의 탄식을 다루는 하이브리드 한류는 촌철살인이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에서는 선의의 표현이 정치적 올바름과 충돌할 때에서 소개하는 “유기견은 키우기 어렵다”라는 누군가의 발언을 두고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논쟁, 유기견을 일반화시키지 말라는 등. 아마도 발화의 배경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유기견은 키우기 어렵다는 단문 자체를 놓고, 갑론을박이니, 정치적 올바름이 부족하다는 등으로 논의가 번지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라고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가짜 참고문헌까지 만드는 인공지능, 글쎄다, 동전의 양면, 빛의 밝음과 어둠, 즉 양면적이라는 점은 늘 한국 사회에서는 실종, 떴다 하면 일방통행이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늘 아쉬운 대목이지만, 그래서 혼종성이라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엔트로피라 할까,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이슈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뭔가를 구상하는, 이 역시 자본주의적 사고라고 해야 할까, 참으로 씁쓸하지만, 지은이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논쟁거리를 이 책에 묶어 놓았다.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새롭게 제기한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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