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버전
그레이스 챈 지음, 성수지 옮김 / 그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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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된다는 건 뭐지


2088년, 한국식으로 말하면 1988년 서울올림픽 후 100년이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온갖 과학기술이 동원되기에, 개최국의 경제효과는 물론 관광지로서 세계인을 향한 국가마케팅의 결정판이다. 100년 후의 과학기술은 인간세의 끝자락일는지는 모르겠지만, AI는 이미 AGI단계를 넘어서 전인미답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이 소설의 무대 역시 대충 이 정도 시기일 듯싶다. 앞으로 두 세대 후의 현실일지도. 주인공 타오이, 네이빈 등. 타오이는 인공수정으로 태어났고, 네이빈은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지 않아, 줄기세포로 분화 등으로 얻은 신장은 자기면역결함 때문에 사용할 수 없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만큼, 인간의 몸 또한 같이 미묘한 변화가 큰 질적 차이를 가져오기도. 아무튼 작가가 의사이라서 그런지 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인드 업로딩, 아바타, 코드로 감각을 조작하는 세계, 그곳에서 여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적 존재론인가, 2009년에 나온 영화<써로게이트> 대리 혹은 대행자란 의미, 인간의 존엄성과 기계의 무한 능력을 결합하여 만든 대리 로봇(써로게이트), 혹은 아바타를 통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게 사이의 갈등과 역설,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고 본질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아바타> 시리즈 또한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영화<터 미 네이트 5>는 기계군단과 싸우는 인간해방군의 지도자 존이 기계와 융합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마인드 업로딩이다. 정신 전송(마인드 트랜스퍼, 마인드 카핑)으로 마음이 인공육체에 주입되어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신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한쪽 팔이 없더라도 다리 한쪽이 없더라도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정신(마음)만으로 모든 걸 움직일 수 있으니. 영생불사의 몸, 


이런 현실과 가상, 지구 밖의 또 다른 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거나, 시간여행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왕래할 수 있는 환경이든 그 무대와 배경은 아무래도 좋다. “인간의 미래”와 “미래 인간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는가, 또 변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소설, 


“가이아”라는 가상 시뮬레이션 세계와 현실, 가이아를 만든 뉴로네티카-솜너스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개발, 아바타의 몸으로 늙거나 병들지 않는 새로운 인류의 시대를….


몸이 사라진 뒤 정신 혹은 마음만 남은 세계에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가, 


...“그녀가 비명을 지른다. 사람들이 수술실로 급하게 들어온다, 그 혼돈 속에서 바늘 하나가 네이빈의 혈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다.”(중략) 미안해요. 타오이 연결 오류가 있었어요. 그의 정신을 가이아로 이전하지 못했고, 그의 두뇌에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290쪽


아주 오래전에 느낀 공포가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다.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정신을 분리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 정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 안에 있는 톱니바퀴가 어설프게나마 손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신이 된다. 


타오이는 뇌졸중을 한 차례 겪었다. 뇌가 줄어든다. 인지기능저하가... 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던, 어머니가 불멸을 포기했던 어두운 마음이, 이제 그 그림자가 타오이에게 와 있는 걸까? 


타오이는 네이빈을 사이보그라 농담스레 부른다. 네이빈은 타오이에게 요즘 나한테 '자기야'하고 안 부르더라고... 

이들 사이에서도 타오이와 네이빈은 한계를 극복해보려 하는데...


생과 사, 현대의 난치병, 육신의 고통으로부터 과학기술은 마음을 육체 로봇으로 옮아가게 할 수는 있지만, 온전한 인간성까지 고스란히 아바타한테로 옮겨갈 수는 없을 듯, 영화<아바타>야 옮겨갔다지만. 작가는 인간성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무엇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인류세의 미래비전,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한계와 두 방향, 하나는 소름끼치게도 이천 여년전 불멸, 불사를 위해 불로초를 찾아 세상을 뒤지게 했던 진시황처럼 늙지않고 지 않는 인간을 향한 욕망, 또 하나는 인간성을 지키는 길이란 무엇인지, 아바타든 무엇이든 간에 살아있다는 감각, 픔의 고통을 느끼는 편이 낫다는 생각,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너의 모든 버전, 고통받는 현실의 인간이든, 고통없이 지내는 가상세계의 아바타이든, 때때로 어느 버전을 그리워할 때가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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