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천
이매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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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매자의 소설 <음천>의 원제는 “The Voices of Heaven”이며 영어로 쓰인 것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한글판으로 냈다. 주인공 음천(音天, 천상의, 하늘의 소리)과 남편 귀용, 그리고 그의 둘째 아내(첩) 수영, 업둥이 미나의 인생 이야기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정국의 한국, 한국 전쟁 전후, 그리고 미나의 금의환향.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기 드 모파상의<여자의 일생> 이 겹쳐오는 이 소설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여성사다. 모두들 그렇게 살았을까,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그런 관습은 고정된 관념으로 자리하고 다들 겉으로는 별 탈없이 그렇게 살았으니, “첩”으로 사는 여성의 일생 또한 늘 불안하고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여성 모두에게 고통을 안기는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주인공은 늘 남성이었기에, 여성의 피폐해져가는 마음, 심적 고통은 사회문제로 화두가 된 적도 없었다. 


지은이는 60년대 대학 영문학과를 나와 70년에 결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갔다. 늦깎이 작가로 작품활동, 한국의 근대와 현대라 할 것도 없지만, 남존여비, 남아선호사상의 사회문화의 희생자로서의 여성을 그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음천, 수영, 미나, 그리고 이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존재인 귀용, 당대 결혼은 중매, 이른바 집안 간에 조건을 맞춰 혼사를 치렀던 게 일반적이었다. 음천은 쉽게 유산하는 체질, 집안의 대를 잇고 조상제사를 모실 사내아이도 못 낳는 여인, 15년의 혼인 생활을 하면서 아이가 없다. 미나 역시 제 속으로 나은 자식이 아닌 업둥이다. 수영, 어린 신랑에게 소박맞고, 아버지의 일터에서 일하는 귀용의 첩으로 들어가는데, 귀용모, 음천의 시어머니 역시 고루한 습속에 메어 살기는 마찬가지. 


한 지붕 아래, 심적으로 고통받는 두 여인의 정신세계


수영이 집에 들어오고, 남편 귀용이 수영과 첫날밤을 보내는데, 갑자기, 함께 자자고, 한 남자에 여자 둘이 한 방에서. 그날 밤 음천은 심하게 아팠다. 여성으로서의 수치, 아들을 못 낳는다는 자괴감, 남편과 첩의 몸을 섞는 소리까지. 이렇게 시작된 음천과 수영의 일생, 당대의 첩은, 자식을 생산만 할 뿐, 씨받이(?) 역할 외에 또 뭐가 있을까, 제 속으로 나은 자식이지만, 호적의 부와 모란에 수영의 이름은 들어갈 곳이 없다. 이른바 첫째 부인에 대한 질투가 일 수밖에, 음천 역시 여성의 참고 살아야 할 족쇄에 묶여, 수영에 관한 양가감정들, 전근대적인 가족, 남아선호, 여성에 관한 구조적 차별, 이러한 가치관은 경제발전으로 급성장한 한국 사회는 경제와 문화와 법과 관습의 변화는 제각각. 그렇게 수영은 자식 사남이녀는 낳고 살았다. 공문서 어디에도 흔적도 없이 여전히 미혼자로 친정 호적에 얹혀있는 유령이다. 유령의 삶, 그 자식들은 귀용의 둘째 부인으로 호적에 올리려 해도 안 된다는 말만 들었을 뿐….


남성우월주의 한국을 떠나, 금의환향? 미나, 그녀에게도 아픔의 굴레가 


미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을 몇 번이고 망설였던 이유는 뭘까, 남성우월주의 사상 때문에 여성에겐 사자굴 같았던 한국, 그녀가 한국을 떠나올 때, 아니 그 이전 부모 세대 당시의 사회와 사상들에 대해서도 좀 더 유기적, 건설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으로 귀국을 결심한 것이다. 지긋지긋한 집을 몰래 도망쳐 나왔다, 오랫동안이 흐른 후, 다시 찾은 것처럼, 중년의 미나, 꽤 성공적인 삶이다. 이 넘었다. 미국 남성을 배우자로 택한 미나는 남편이 ‘어떤 사람이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에서였다. 작은엄마 수영을 찾아가는 택시 안에서 미나는 “다시 태어나면 우리 아빠하고 또 살 것 같아요?”라고, 작은엄마 수영을 만나 왜 우리 아빠한테 오게 된 건가요. 라고 묻는다. 어릴 적 엄마 음천의 고통 기억하면서, 작은엄마는 뜻밖의 이야기를, 너는 업으로 들어왔단다고…. 한국 사회의 가난 때문에 버려진걸까, 고루한 습속 때문에 버려진 걸까... 똑똑한 미나도 한국사회에서는 여자 아이일뿐이었다. 남자아이가 아닌.


작가는 청소녀시기를 보냈던 한국 사회를 벗어나고 싶어 성인이 되자 도망치듯 미국으로, 중년이 되어 현대화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여성이란 굴레는 망령처럼 사회를 휘감고 있는데. 미 나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 구석구석에 남겨진 작가의 표현은 오랫동안 고심하고 깎고 또 깎은 장인의 작품처럼. 서술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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