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엄마로 늙을 뻔했다 - 인생 쫌 아는 여자들의 공감 수다
조금희 지음 / 행복한작업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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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쫌 아는 여자들의 수다를 “공감”한다


이 책<하마터면 엄마로 늙을 뻔했다> 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전통적인 “엄마”라는 관념은 돌봄의 아이콘이다. 유독 자식을 껴안고 사는 한국 사회, 성인이 되어 엄마 품을 떠나 독립하더라도 결혼할 때까지, 이런 기준도 점차 깨져, 결혼적령기란 말도 사라지고, 만혼화, 길어진 청년 시대에, 엄마 되기도 어렵지만, 엄마 노릇, 역할에서 벗어나는 졸업도 해방도 힘든 세상이 됐다. 거기에 손자들까지 봐야 할 처지가 된다면 언제까지 엄마로 늙으라고, 이제 엄마라는 닻을 걷어 올리고, 다시 내 인생의 나의 것 모드로 돌아와 항해를 시작하자고.


지은이 조금희는 일러스트 작가라서 그런가, 책 속에 실린 그림도, 글도 푸근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50대,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핵가족구성 4인 가족도 있고, 돌싱도, 보험회사 모집인으로 일하는 사람, 모두 학창 시절 친구들이다.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은이는 아직은 빈 페이지로 남아있는 인생의 여백에 내 이야기를 그려볼까 한다고. 가장 아름다운 날은 희망의 날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그 어떤 날일까?


지은이는 내 인생이 잠시, “결혼”이란 항구에 정박해 있는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종기착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길을 나선다. 기 드 모파상의 소설<여자의 일생>의 주인공 잔느처럼, 딸, 아내, 엄마…. 물론 한국 사회의 빼놓을 수 없는 “고부(姑婦)로 시작되는 시집)”에 관해서는 미뤄두자. 이 이야기만으로도 한국사회의 특징으로서의 “시(媤)”는 책 한 두 권도 모자랄 판이라서, 아무튼 지은이는 나이 들면서 시집(媤家)과 허물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편해진다고. 아무튼 딸, 아내, 며느리, 엄마를 지나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수다를 들어보자. 


책 속 이야기는 8꼭지다. 2박 3일 우리끼리 제주도 여행, 평생 엄마로 살아야 할까?, 누구에게나 가보지 않은 길이 있다. 여행하기 딱 좋을 나이, 가슴에 담아둔 저마다의 사연, 모든 것이 허용되는 시간, 추하지 않고 아름답게 나이 먹기.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하기, 그냥 훌쩍 떠날 수 없다. 가정 울타리가 걱정이다. 혼자 지낼 남편을 위해 늘 하던 대로 냉장고에 반찬을 만들어 넣어두고, 남편에게 아내의 부재 동안의 행동 지침을 일러둔다. 이쯤이면 애정이 아닌 의리로 사는 것이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남편을 뒤로하고 화려하게 변신한 모습으로 공항으로 향해가는데, 공항 맞이방에서도 걱정이다. 천상 어쩔 수 없는 수다다. 조건반사가 아니라 무의식 수준의 걱정들….


평생 엄마로 살아야 할까? 


반창회, 건전한 모임이라면 가끔이라도 반창회에 참가하잔다. 학생 때의 친구를 만나면 속절없이 흘러 가버린 시간과 마주하게 되지만, 까맣게 잊고 산 ‘나’를 만난다. 엄마 노릇의 모순과 역설, 사랑스럽고 인자한 모습은 그저 이미지고 현실의 엄마는 악역과 악당이다. 참으로 딱 이 대목이다 싶을 만큼, 핵심을 찌른다. 

“엄마라는 역할의 가장 지독한 점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악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순된 배역의 가장 주의할 점은 지금 잠시 악역을 맡고 있을 뿐임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확인시켜야 한다는 것. 감정에 휘말리는 순간, 진짜 악당이 되고 만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엄마 되기의 어려움, 세라 놋의 책 <엄마의 역사>(나무옆의자,2024)의 추천사를 쓴 정희진은 인간의 역사는 엄마의 역사이고, 인간의 조건은 엄마의 조건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엄마 이후의 삶에 관하여


무언가를 잃어야만 그 반대로, 무언가를 찾아야만 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엄마가 되느라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다. 이제 엄마 이후의 삶을 위해 무엇을 회복하고 찾을지 계획해야 한다. 여정이란 것도, 부부라는 것도, 얼굴이라는 것도 결혼생활이란 것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루라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시적 표현들은 이 책을 아주 입체적으로 만들어놓았다. 에세이이면서, 엄마에서 이제는 나를 찾는 연습을 시작하자고, 남은 인생의 여백에 당신은 어떤 그림, 혹은 글을 써 내려갈 생각이냐고 묻는 대목은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의 색깔 풍경 의 삽화처럼, ‘내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모두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처럼, 시와 그림 그리고 글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지은이는 엄마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아직은 뚜렷한 답을 못 찾은 듯, 그래서 여정과 얼굴, 그리고 부부, 결혼생활 이런 배경과 거기에 남은 흔적들을 세심히 들여다본다. 과거 젊은 날의 초상에서 현재를 찾고, 미래를 그려가려는 듯.


이 책은 우선 제목이 맘에 들었다. 이야기도 시원하다. 솔직하다. 거기에 어울리는 색깔이 있어 또 마음에 들었다. 지은이가 읽는 이를 위해 생각의 여백을 마련해두었다는 점까지 마음에 든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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