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빛, 청자 1
정찬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깨달음의 빛, 청자


작가 정찬주는 1983년 <한국문학>신인상으로 등단,  법정 대선사의 재가 제자(법명, 무염(無染))로 불교에 정통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큰 스승 성철 스님 이야기<자기를 속이지 말라>, <다산의 사랑>, <아소까대왕>, <이순신의 7년>, <소설 무소유> 등 많은 유불선의 시대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그려냈다. 

 

이 소설<깨달음의 빛, 청자>은 비색(翡色) 고려청자가 주인공이다. 2권 체제이며, 1권은 당구(당나라 출신의 해적)와 싸우려는 궁복, 탐진(옛 강진의 지명)의 가리포소의 군관이 되기 위해서 대구소의 무예 시합에 참여하면서 시작된다. 궁복과 대구소의 족장인 정 씨의 아들 정년과의 만남, 그리고 산둥반도의 신라소 촌장인 신라왕가출신 김시방 등과의 연으로 출중한 활 솜씨에 더해 검술과 말타기를 익히는 과정을 그린다. 이후 당나라로 들어간 장보고와 정년은 당시 고구려의 후예 이정기와 그 후손이 절도사로 당 황제에 도전하는 것 막기 위한 군사조직인 무령군에 들어가 무예실력을 인정 받아 군관을 거쳐 군중소장이 되어 조정에 반기를 드는 세력을 소탕하는데. 무령군은 정규군이 아닌 토벌을 위한 임시군대로 해산될 상황, 장보고는 신라사람들의 추대로 신라소 대사가 되고...


월구청자에서 얻어온 비색.


당구에게 끌려가 노예로 팔린 신라인들은 당 황실에서 사용하는 월구청자 가마에서 일하기도…. 탐진의 토기, 큰 장사꾼이 되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장보고의 눈에 월구청자를 탐진에서 만들 수 있다면 이란 생각이 미치게 되고….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월구청자가마의 도공으로 일했던 최녹천을 데려와 청해진을 만들고 탐진 가마에서 청자를 구워내기 시작하는데. 결국, 역사에서 보듯, 장보고는 염장에게 죽고, 청해진 사람들은 노비로 김제로 가게 되고, 200여 년이 흐른 뒤, 10세기 고려 광종의 노비안검법으로 해방된 청해진 사람들은 다시 탐진으로 되돌아와서, 청자를 빚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의 청자는 단순히 강진 땅에서 갑자기 어느 순간 태어난 게 아니었다. 당나라의 황실에서만 썼다는 최고의 색 푸른(翡)빛 감도는 청자(靑瓷)는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하늘과 닿는, 하늘을 대신에 천하를 다스린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썼던, 청동기 대신에 월구청자를. 월구를 빚는 장인들은 청자의 유약 제조비법을 신라 출신 도공들에게는 비밀에 부쳤다. 


2권은 수많은 무명의 도공이 강진 청자를 빚어내는 탄생의 역사를 그린다. 걸출한 몇몇 도공들이 순전히 개인기로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수많은 도공과 강진이라는 지역의 환경과 자연이 만들어 낸 고려의 독특한 예술품이었다고, 중국은 비색(秘色)과 다른 고려의 비색(翡色), 송나라대에는 도기는 고려청자가 으뜸이었다고 평할 정도였다. 당시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며 중국에서 천하제일로 쳤다면 당대 최고라는 말이다. 


보통 소설은 주인공과 주요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청자”다. 장보고가 나오는 것은 아마도 당대의 시대 흐름과 정세 왜구 대신에 당구(당나라 해적)들이 설치던 상황과 월구청자가 신라로의 도입을 흥미 있게 다루기 위한 요소였던 듯하다. 당대의 고려 국교였던 불교의 승려들을 통해서 개성으로 퍼져갔던 청자, 찻잔으로, 술잔으로…. 그리고 무신정권의 정치자금줄이 됐던 청자공급. 아무튼, 청자는 문화예술품이라는 이미지가 아닌 화폐 대체기능도 했던 점 또한 흥미롭다. 


신라의 에밀리 종의 탄생 배경처럼 신화적 요소는 없지만, 장마다 이름 없는 도공들의 궁리와 지혜로 빚어낸 독창적인 “청자”, 후대에 이르면 상감청자가 나오지만.


작가는 고려청자의 천년 비원을 품은 역사를 K-컬쳐의 원조, 한류의 시초라고 평한다. 보통 한반도의 문화교류나 전래, 전파의 경로는 동북아로 보는데, 작가는 북방은 물론 남방까지 K-컬쳐가 퍼져나갔다고, 세계적인 도자기예술품으로서 “고려청자”가 아닌 강진 청자가 만들어지게 된 기나긴 여정,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 그리고 꿈이 서려 있는 하나의 “문화”였다고, “한류의 시초 강진 청자”라는 말은 작가가 지어진 말이 아니라, 미국 위스콘신주에 살면서 동아시아 고대 역사를 가르쳤던 SNS 친구 메티 베게하우프트 선생이 한 말이라고. 우리보다 먼저 강진 청자를 이해했던 외국인 연구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깨달음의 빛” 이란 비밀스러운 색(秘色)은 비밀을 품고 있는 색,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이를 비색(翡色)으로 만들어 낸 것이 깨달음의 빛이었다는 것일 거다. 색 자체를 만들어내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탓도 있겠지만, 지혜로 빚어낸 색이란 의미로 새겨두련다.


작품해설을 한 문학평론가 이경철은 우리 민족 특유의 심성과 자연에서 우러난 청자를 주인으로 한 최초의 본격소설로 청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더욱 고조시켜줬으면 한다고. 자칫 국수주의로 이해될 수도 있는 강진 청자 이야기는 이름 없는 민초들이 온 힘을 다해 만들어 낸 문화의 결정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달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다. 아쉽게도 지금은 강진 청자라는 문화적 존재가 미미한 듯하여 씁쓸하지만….


작가의 손 끝에서 새롭게 태어난 강진 청자, 그저 국보급, 세계적인 예술품이란 대상으로서만 봤던 청자가 살아서 걸어온다. 천년세월을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