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되기, 엄마 노릇하기
어머니라는 정체성, 모성, 모성다움이라는 낱말, 문구 혹은 말의 맥락과 함의는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르고 계속 변화한다. 지금 우리는 엄마를, 어머니를 어떻게 정의할까?, 역사학자인 세라 놋은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를 연구한다. 우리가 모성의 위대함으로 포장하며 평생 희생을 감내하면서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다 내주는 객체로 박제된 초상화로 어머니를 그려왔다면 이 책<엄마의 역사>은 ‘일반화된’ 어머니가 아닌 파편화 된 여성의 임신, 출산, 아이 키우기를 엄마의 의무로 여겼던 역할이 미국과 영국에서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변해왔는지를 17세기부터 20세기 말 페미니스트에 이르기까지를 추적하여 쓴 책이다 놋은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면서 일인칭 시점의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된 모성의 역사, 어머니가 되어 가는 과정(matrescene)이다. 확실히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특수성 주장은 성별 차와 불평등 노선의 강조다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분리하여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이 분리된 영역에 속하게 되는 것을 승인하는 게 되며, 기존의 성별 차와 불평등의 노선을 강조하게 된다는 점에서, 동사로 복수화하고 개별화하면서 과거의 관행들이 놀랄 만큼 다양했고 다시 파악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초점을 맞춘다. 모성은 그 자체로 일화에 적합하다는 21세기의 모성 이론에 따른다. 실제로는 17세기에서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상류층과 전문가 계층에서는 어머니의 관행에 대한 기록이 드물다.
아니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기에, 큰 기록 속에 자잘한 행간을 들여다보며, 농장 사업에 대한 설명, 노예의 서술, 그리고 현대로 들어와 인류학자들이 남겨 놓은 짧은 보고서, 구술사, 사회학적 조사에 나타난 간략한 증언들, 일화는 이런 증거의 파편과 덩어리를 조망하고 부재를 존재로 바꾸는 방식이다. 지은이 놋은 파편화된 기록들을 모으고 이를 일인칭 관점에서 에세이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연구방법을 쓰게 된 것인데. 놀라울 정도로 기발하다. 자료가 없어서 뭔가를 쓸 수 없다는 말 대신에 흩어진 조각을 모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특징이랄 수 있을 것이다.
엄마 노릇하기의 여정과 일화
480여 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어머니, 하인이었고, 노예였고, 첩이었고, 17세기 영미의 이야기와 같은 시기 조선의 어머니, 여성들의 엄마 되기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21장에 걸친 이야기는 놋이 젖먹이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는 엄마 되기와 함께 글을 썼기에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어머니는 놋에게 그녀가 놋을 임신, 출생까지를 담은 서류를 가져다준다. 1970년대, 영국 사회의 풍경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숫자로 본 엄마 되기, 세대, 임신인지 알아내기 10주 차, 혹은 8주 경과와 태동, 솟아오른 앞치마, 출산이라는 것, 안녕, 아가, 눈물과 일화들, 산후조리 시기, 눅눅한 천, 방해받는 시간, 한밤중, 가득 찬 젖, 불확실성 또는 생각실험, 병원 처방과 의혹들, 아기 맡기고 찾기, 종이꽃, 오크 세탁통, 마당 아기, 무릎 아기, 그리고 시간을 항해하기, 그 밤의 끝에서,
이른바 흐름으로 전개되는데, 누군가와 만나 사랑을 하고(?), 1963년 이전의 시대구분으로 성행위는 임신을 위한 것만이었는지 등에 관한 인식을 추적해본다. 내숭 떨기, 뻣뻣하게 누워있기로 표현된 것들이 진짜일까, 피임 도구(콘돔)의 출현으로 성행위와 임신은 분리되고, 아무튼 이렇게 세대를 꾸리고, 임신하면서 산과 병원에서 요즘 같으면 초음파로 아이의 성별은 물론 장애의 유무까지 알아내는 시대는 아니었으니, 태동과 출산, 산후조리, 방해받는 시간을 쭉 따라가다 보면, 엄마 되기의 대 서사가, 과부 아기라는 표현, 엄마의 출산이다. 지금껏 요람에서 자던 아기는 동생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시기다.
젖병 물리기와 아기 카페, 육아 지원이 줄어든다는 소식을 듣고 반대 청원서 서명운동을 하는 엄마들. 레즈비언 부부에게 정자를 기증하는 게이들, 의학계는 정상적인 임신 경로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의학 생명윤리를 들먹인다. 1980년대 레즈비언과 비혼모에 대한 기존의 편견은 이들이 어머니로서 적절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명사를 동사로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엄마 노릇’하기라는 행동으로 바꿔보라고 놋은 말한다. 후기 자본주의 아래에서 모든 종류의 돌보는 이들, 입양모, 생모, 고용된 위탁모, 여성, 남성, 레즈비언, 게이, 성전환자들이 외치는 돌봄에 대한 옹호는 실제로 광범위한 연합체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책은 엄마 되기를 톺아보는 것인데, 파편화된 개인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 엄마 되기라는 커다란 역사를 구성한다. 엄마가 되기로 한 사람들, 아기를 낳을 계획이 없는 사람들,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 누구나 읽어야 할 엄마 되기는, 저출산 초고령사회, 인구절벽과 인구정책을, 인구소멸위기 대응방안, 묘책을 찾겠다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그저 일련의 행위로만 여겼던 너무 익숙한 현상과 활동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특정 시대와 사회에서 펼쳤던 출생과 돌봄에 관한 정책들을 톺아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표지에 추천사를 쓴 정희진, "이 책은 인간의 역사는 엄마의 역사이고, 인간의 조건은 엄마의 조건임을 보여준다." 어떤 맥락으로 읽히든간에 특히 인구절벽의 도래라는 미래의 불안, 이 책은 인구정책은 물론 우리 사회의 돌봄 정책, 소수자의 권리까지도 함께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