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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세계 -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이소임 지음 / 시공사 / 2024년 1월
평점 :
삶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습관적으로 정답을 찾는 우리
삶에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정답을 찾는 자신을 발견하면 어떨까, 웃음부터 나온다. 습관은 무서운 거라며, 우리 사회가 우리 체제가 ‘습관’을 강요한다. 질문하지 말고, 정해진 답을 외우라고, 수학 문제처럼 그 안에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
린디 엘킨스탠턴의 <젊은 여성 과학자의 초상>(흐름출판, 2023)에서 그는 80년대 MIT 대학에서 질문하는 건 내가 무식한 사람임을 떠벌리고 다는 것과 같다고, 이곳에서 질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돋보기가 아니라 누군가를 찌르는 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질문에 천착했다. 질문을 해야 또 다른 세계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무지의 증명이라고, 어쩌면 무지하기에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질문의 또 다른 효과는 아무리 똑똑해도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 에세이<질문하는 세계>의 지은이 이소임, 수시로 좌절하지만 어찌 됐든 명랑하다고 한다. 허무주의에 허덕이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워킹맘으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에세이집은 4부로 나뉘어 있다. 각각 대표적인 글을 보면(뭔가 있어 보이는 글) 불균형에서 균형 찾기(1부), 죄송합니다만 당신은 정의가 아닙니다(2부),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과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3부), 무서운 프로크루스테스(4부) 등, 51개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이글들은 질문의 세계로 가는 질문들이다. 한국이 망해도 지구는 멀쩡할 것이며, 지구가 망해도 우주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다 표현해버린 시사인의 장일호 기자의 추천사, 이 책 덕분에 “보통과 평범이 얼마나 다채롭고 개별적이며 구체적인지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어디로든 통하는 모양이다. 위의 린디 엘킨스탠턴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불균형의 가능성을 안고 태어나 살아가면서 점차 불균형을 발현해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식적으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더 불균형해지니, 균형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하면서 골반 균형, 삶의 균형, 식단의 균형, 감정의 균형, 호르몬의 균형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잡아야 할 균형이, 사회는 부의 균형, 지역발전의 균형, 세대의 균형, 기회의 균형, 이 균형이 무너지면. 그러나 자연의 본질은 불균형이다. 엔트로피 균형에서 혼돈인 불균형으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우리는 늘 불균형 상태라는 보통으로 되돌아버린다.
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글 속에서 질문하는 세계를 느낀다. 사고법을 배운다. 균형, 내가 아는 모든 것에는 다 균형이 존재할까, 불균형 상태란 본디 어떤 상태일까, 지금 내 상태는 불균형이 보통, 정상인 상태일까, 이것이 사회로 확장되면 계급사회 역시 불균형이지만, 자연스러운 것인가, 애써서 균형을 회복해야 하는가, 질문의 끈을 놓치는 순간, 생각이란 것을 안 하게 되는 순간, 생각의 균형도, 마음의 균형도, 생활과 삶의 균형도 모두 놓치고 마는 것인가,
죄송하지만 당신은 정의가 아닙니다
TV 드라마 비질란테(자경단)와 국민사형투표의 주제 “사적제재”, MBC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에 소개된 “사적제재”, 이는 정의인가, 지은이는 죄송하지만 정의가 아니라고 한다. SNS는 기본이 익명이다. 메아리방도 많다. 유유상종인가, 뭔가 이슈가 터지면 한쪽 편에서 서서 응원한다. 이른바 편을 먹고, 반대진영 혹은 의견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우리가 판단을 신중하게 해야 할 이유는 오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사적제재, 식당 주인이 뻔뻔해서 좌표 찍고, 유튜브에 올려서 벌점 테러하고, 학폭 의혹이 제기되면 낙인부터 찍고 방송 출연이 취소되고, 피해자가 자살하면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의 신상을 턴다. 아주 탈탈, 마녀사냥이다. 군중심리를 이용하면, 돈을 벌 수 있다. 클릭 수만큼 돈이 들어온다면 뭐라도 파우스트도 될 수 있다. 클릭 수로 돈을 버는 언론(도 아니지만)이 사실 확인도 없이 의혹을 보도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명 배우의 죽음, 진실의 누구도 모른다. 다만, 수사절차가 범상치 않다. 범죄의 종류에 따라 수사방식이 다를 텐데, 일부러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마치 거대한 무슨 판을 덮어버리는 듯한 인상, 이슈는 이슈로 덮듯이 말이다.
사법부의 정의는 죽었다.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바꾸면 된다. 믿을 수 없는 불균형을 언제까지 참고 견딜 것인가, 누구를 욕하는데 클릭하듯, 시스템 바꾸기 운동에 참여하면 된다. 클릭하라. 클릭.
글쓴이가 어떤 사상과 믿음, 신조를 지녔던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은 아마도 그의 생각의 깊이만큼이나 글에 녹아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사회비평을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이렇다.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허점투성이다. 열등감도 있고, 허무주의에 헤매기도 하는 보통 사람임을, 하지만 그의 글은 전혀 반대다. 냉정한 이성 속에 녹아있는 따듯한 배려처럼, 이 책은 열쇳말은 “질문”과 “균형”이다. 추천사처럼 보통과 평범이 얼마나 다양하고 구체적인지 느낄 수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