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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평점 :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지은이 최평순 PD, 예능, 드라마 PD를 마다하고 다큐멘터리에 천착한 방송인 보다는 언론인이다. 언론인과 방송인의 차이는 별론으로 하고, 지은이 자신이 언론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생각을 존중한다. 이 책<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위기감과 긴장감을 한껏 불러일으키는 제목의 에세이로 지은이는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열쇳말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류세라는 지질시대의 명칭은 공식적이지 않다.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로서만 바라보는 학자들은 인류세, 즉, 지질학, 대기화학, 생물학 등 다분야와 연관된 통합적인 개념이라 학계의 장벽을 넘어 학제 간 융합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장벽이 존재하기에.
지은이는 한국 사회는 이른바 공인된 개념이 아니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2000년 인간세라는 지질시대의 개념을 제안했던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출신의 파울 크뤼천은 왜 이런 레디칼한 표현을 썼는지 그 이유랄까 배경을, 인간이 지구환경을 바꾼 규모가 소행성 충돌과 비견될 수준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즉, 인간의 자연환경 파괴 때문에 지구의 환경체계가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게 된 시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지구의 지질시대는 공식적으로 1만 1700년 전에 시작된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이 용어가 공인되는 데만도 50년의 세월이 필요했듯이 인류세가 공인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인류세”의 우리 모습을 돌이켜 본다는 것
2018년에 만들어진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인류세 연구로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빠를 것이라고 한다. 크뤼천이 서울대학교에서 2009년부터 3년간 석좌교수로 머물던 때, 씨앗을 뿌린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은이도 객원 연구원으로 이 센터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위기 시대를 위기로 느끼도록 경각심을
지은이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않는 시대에 “위기”의 시대라는 경각심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순위는 무엇인가,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달 후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남은 시간 한 달을 어떻게 보낼 건가라고 묻는다. 글쎄다. 만약 당신이 암에 걸려 여명이 한 달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이 시간을 쓰고 싶나요? 라고 묻는 것과 같다. ~만약은, 만일일 뿐이다. 기후위기의 진짜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자. <지구를 구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부키, 2021), <지구를 구한다는 거짓말>(스티븐, E.쿠닌, 한국경제신문사, 2022)
이 책들은 지은이가 과학불신의 시대라는 맥락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나 꽤 다르다는 내용이 실린 책들이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대하는 두 가지의 흐름, 절망론과 낙관론인데, 지은이는 절망론을 지지하는 듯싶다. 하지만, 인류세라는 지질시대임을 세상에 알리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도록 기후위기가 인간욕망의 결과라는 점을 명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군사문제도 무기사용,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기후위기의 주범이란 점도 드러내야 할 듯하다. 북극곰, 남극곰, 빙산이 녹아내리고 온난화가 지속하고, 이런 논리에도 상대적 차별이 존재한다. 선진국그룹이 환경 파괴하면서 제 욕망을 채울 때는 괜찮고, 개발도상국에서 개발을 위한 자연훼손은 안 된다는 논리의 접근으로 빠질 수 있음을.
인류세를 어떻게 살아야하나, 거창한 담론이나 보다 효과적인 “환경습관”
아무튼, 지은이는 “인류세”라는 담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한국이 인류세 논의를 상징적으로 시작했던 곳이라는 말 또한 사족인 듯. 아무튼, 지구위기에 대응하는 저널리즘 운동을 목적 의식적으로 펼쳐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 얼마이든 인간의 지구환경 파괴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반성하고 깊은 통찰을 통해서 생물 다양성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인류세”는 지질시대로서 적절한가 싶기도 하다. 땅속에 묻힌 플라스틱과 폐건축자재, 무기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형상을 유지하며 남을 것인가,
오히려 “인류세”는 정치적이며 문화적이라는 성격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인간이 환경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환경이 인간에게 반격하는 상황을 “인간세”라고 한다면, 인간세를 살아가는 방법은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추수밭, 2023)에서 말하는 지구를 구한다는 착각이나 거짓말 이런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우아하게 지구를 지키는 법은 종말론보다 가능하고 친환경 제품보다 효과적인 환경습관이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곱씹어볼 만하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 “인류세”의 담론을 시작하자고 제안하는 것만으로 훌륭하다고, 외롭고 어려운 일임은 그의 글에 묻어있다. 변경의 마이너리티다.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돌풍을 몰고 올 수 있을까, 그 시발점, 그 계기가 이 책이 됐으면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