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살인의 시대와 법 - 중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와 독일 형사법 박사가 직접 겪고 정리한 명예훼손, 모욕, 스토킹범죄의 모든 것
류여해.정준길 지음 / 실레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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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살인의 시대와 법

 

지은이는 류여해는 독일에서 법학을 연구한 정치인이고, 정준길은 중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다. 이 책은 단순히 명예훼손, 모욕을 다룬 학술서가 아닌 두 사람의 깊은 사연이 깃든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관한 책이다. 도대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 들었다 하는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SNS에서 익명으로 아무에게나 마구잡이식으로 막말에 욕설해대더라도 익명성의 보장되는 곳이라서 범죄의 구성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단에 지은이들은 혀를 끌끌 찬다. 어찌 보면 성문법 체제에서 법보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 사회현상이고, 법은 그 뒤를 쫓아가서 규제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당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라면 법이 있다면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지 않겠냐고, 억울하지만,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니,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이 책은 “명예훼손 모욕 스토킹 범죄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중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와 독일 형사법 박사가 직접 겪고 정리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와 형사법 박사가 겪고 당한 일이라는 것, 보통 사람은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 짐작이 가느냐는 에두른 표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 구성은 4부 체제이며 1부에서는 이른바 손가락 살인 사건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3년간 지은이들이 겪은 사이버 명예훼손 유식하게 말하면 인터넷 공간에서 아주 무식하게 얻어터졌다는 소리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인터넷 세계에서의 명예훼손과 모욕, 스토킹 범죄의 문제를 짚었다. 2부에서는 사례로 알아보는 명예훼손과 모역의 모든 것에서는 죽은 사람에게도 명예훼손을 할 수 있나, 그럼 태야에게는, 상식을 넘어 모호한 곳을 짚어, 설명해준다. 3부 명예훼손과 모욕이 스토킹과 보복 범죄로 이어질 때를, 4부는 내가 피해자일 때 혹은 내가 가해자일 때 대응 방법을 싣고 있는데, 바로 4부가 결론이다. 지은이 정준길이 3년 동안 200장이 넘는 고소장을 쓰고, 60여건의 피고소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의 체험이 여기에 녹아있다.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은 정치인들이 자주 쓴다. 댓글이며, 페북이며 SNS 여러 가지 이름을 불리는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들, 때로는 선 밖으로 나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직접 살인도 있지만, 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의 볼거리는 딱딱한 이론을 풀어서 설명하는 대목도 그렇지만, 따끈따끈 최신판례라는 코너다. 연예인 수지가 “국민호텔녀”가 모욕? 모욕이다. 대법원은 그렇게 판단했다. 1심은 유죄, 항소심(2심) 무죄, 대법원(3심)에서는 유죄취지로 파기 환송되어 2심법원으로 돌아간 사건,

 

호텔녀, 개, 이런 표현은 모욕인가? 모욕이 아닌가? 그 판단 기준은

 

호텔녀사건(수지를 두고 한 폄훼발언)의 함의, 호텔녀가 듣는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만드는가?, 문구만으로는 가치 중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통념상 “호텔녀”는 무엇의 은어처럼,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연상하게 하는 낱말이 돼버렸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의미로 통용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암묵지”다. (120쪽에서 사정을 다룬다)

 

개 못생겼다. 개 사진에 사람 얼굴을 합성한 영상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1심에서 대법까지 “개”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불쾌할 수도 있으나,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다. 혹시 주심 판사들 집에서 개를 키우나. 특정 지역에서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에게 대뜸, 이 개XX라고 욕을 한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모욕적 언사일 수도, 하지만, 그 지방에서는 정다움의 표현이라고, 개XX라는 발성의 강약과 악센트에 따라 미묘하게, 욕과 정다움. 이런 게 문화라면, AI 판사는 뭐라 판단할까? 아주 궁금하다.

 

진화하는 범죄, 뒤를 쫓기 바쁜 법, 헷갈리는 재판부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글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일벌백계라는 말은 가당치 않을 만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날마다 또 새롭다)이다. 지은이들은 명예훼손과 모욕 특히 인터넷 공간에 벌어지는 음습한 공격에 대한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시 보이지 않는 상대와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의 목소리와 성량, 사용하는 단어나 발음 등으로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상을 짐작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올라온 글(손가락질)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니 말이다.

 

예전에는 말 한마디로 사람이 죽고 산다고 했지만, 요즘은 손가락질 한두 번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을 사전에 보태야할 듯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미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었으니, 사멸하지 않는 한 여전히 유통될 말이기에.

 

이 책은 법률 관련 사건을 다루다 보니, 전문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뒤쪽에 실린 용어집을 참조하면서 뭐 보지 않아도 문맥으로 때려잡을 수 있으니. 아무튼 SNS에서 손가락질을 당했거나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이들이 우선 먼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한 박자 늦춰서 행동해도 좋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상대일수록 예의를 갖추는 것이 좋겠다. 너도나도 언제 가해가될지 또 피해자가 될지 모를 일이기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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