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가 남다른 과학고전
조숙경 지음 / 타임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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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생각해 볼 12가지 과학 이슈, "미래와 교양을 위해"

 

지은이 조숙경 선생은 물리학에서 과학사 과학철학이라는 비교적 신생 학문영역 가운데서도 과학문화를 전공,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학제 간 융합부문에서 줄 곳,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켄텍(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수로 연구 활동을 하는 여성학자다. 여성학자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그는 결혼과 함께 영국 유학을 떠났고, 줄 곳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는 이중, 삼중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연구 활동을 계속해왔다는 점 때문이다.

 

지은이는 영국에서 과학사 과학철학 석사를 마치고 귀국하여, 국내 대학 박사과정을 진학할 때, 지도교수가 그에게 물었다. 왜 공부를 하려느냐고, 그는 당시에는 대답을 제대로 못 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글쓰기를 하려고,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진학목적을 생각하게 됐다고,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 40여 년 동안 과학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계기와 꾸준히 꺾이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동력이자 힘을 불어넣어 준 "12권의 과학 고전"을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이 책을 썼다.

 

12권의 책을 소개하는 데만도 꽤 많은 분량이 될 것이고, 개념도 생소한 과학의 영역만을 다루는 것도 가독성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그는 12가지의 질문에 12권의 책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엮었다. 물론 그의 인생과정을 녹여 어느 순간에 이들 저자의 말에서 힘을 얻었는지도 밝히고 있어,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다.

 

말로만 듣던, 과학철학자, "열린 우리 사회의 적"이란 책을 썼던 칼포퍼의 저작과 지은이가 남편과 함께 5년에 걸쳐 번역했다는 대우학술총서(1990년 당시)로 나온 노우드 리셀 핸슨<과학적 발견의 패턴> 등을 포함한 12명의 저작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은이의 책을 따라가다 보면, 소개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책은 꽤 잘 썼다는 말이다. 12가지 질문 중, 과학의 조건(칼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 과학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는 책 토머스 쿤의<과학혁명의 구조>, 관철은 객관적인가에 답을 하는 노우드 러셀 핸슨의 <과학적 발견의 패턴>, 그리고 양자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발견이 대참사(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로 이어졌을 때 그 책임을 누구에게 있는가?를 보자.

 

과학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에 대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에서 과학자가 그 책임을 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한다. 그는 과학발전은 세계적인 역사 과정의 일부이며, 과학자는 커다란 연관성 속에서 사물을 생각해야 하기에, 과학은 과학이라는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를테면, 혁명과 전쟁, 극단적인 가치 전도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한 과학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을 인류 전체라는 통합적 문맥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 소식을 들은 과학자들은 핵 사용금지를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들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과학적 발견의 양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요즘 상식이다. 탄소배출 저감을 국제적으로 약속하고, 온도 1도 낮추기 운동을 펼치는데, 1960년대, 인류 생활의 편의성으로 화학물질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된 데 경종을 울리며, "환경보호" "생태 보존적" 방법을 고민하게 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DNA라고, 제임스 왓슨의<이중나선> 발견으로 그 비밀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과학은 유토피아를 가져오는가? 글쎄다 적어도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이 있다. 조지오웰<1984년>처럼, 지은이는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에서 찾는다. 과유불급이다.

 

과학과 인문학은 만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영국학계의 풍토를 예로 든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을 모르면 지성인이라 할 수 없다고 과학자들을 깎아내리기도, 과학자들은 지성인들에게 묻는다. 열역학 제2 법칙을 아느냐고,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여기에 관한 답은 찰스 스노의<두 문화>속에 답이 들어있다. 영국으로 대변되는 서구 선진 사회 고발적 성격의 이글은 스노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한 리드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스노는 두 문화 현상은 영국에서 두드러지게 나 타는가를 진단한다. 하나는 교육의 전문화를 지나칠 정도로 확고하게 믿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사회 형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보수적 성향 때문이라고, 이는 어릴 적부터 분야를 나누어 교육한 때문에 문화의 단절이 가속화됐다. 인문학과 과학 분야를 일찍부터 분리해서 교육하다 보니 가장 기초적인 문학 서적조차 읽지 않는 과학적 문화에 속한 사람과, 가장 초보적인 과학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인문학적 문화에 속한 사람이 생겨났다고.

 

지은이의 전공 과학문화는 바로 이런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분야다. 그가 일을 해왔던 분야에서 제기했던 STEAM(사이언스,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 아트, 매시매틱스,-과학기술에 학생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고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통합적 사고력과 실생활 문제 해결력을 배양하는)교육이다.

 

인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는가? 에 관한 답을 제러미 리프킨의<엔트로피>에서 찾는다. 희망이다. 지은이는 현대 문명의 중심에 에너지가 있다면 현대 문명 비판서 중심에 <엔트로피>가 있다고 지나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류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적어도 인류가 자제력을 발휘한다면, 생물 다양성을 존중하고 지구의 절반 세계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겸손한 생각을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단 하나, 과학과 인문학, 인문학과 과학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전을 통해 과학을 읽고, 과학을 통해 인문학적 사고, 즉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통합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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