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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 역사, 형식, 이론 ㅣ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1
한스 포어랜더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3년 9월
평점 :
이 시대에 읽어야 할 책 "도대체 민주주의는 뭐야"
지은이 한스 포어랜더는 민주주의는 항상 위협과 도전을 받았으며 늘 쟁취되고 유지되어야만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번뜩이는 생각은 변증법이다. 정반합이라는 순환고리로 늘 균형을 유지하기에 민주주의는 동태적이며,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과 모순이 부딪치면서 좌우의 수렴으로 또, 중용으로, 하지만 이런 균형상태는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고. 누군가는 이를 불안정한 생태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民)이 주인이 되는 것이기에 늘, 의견대립과 갈등, 그리고 상호이해와 조정의 영속적 과정이다. 특정 시점(정태적)에서 보면 바람직한 상태일지도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변화한 것이기에, 늘 긴장 상태다.
지은이는 독일의 드레스덴공과대학에서 정치학(정치이론과 이념사)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그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굳이 고대 그리스 사회의 그것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가, 왜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대의민주주의가 당연한 시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지금 민주주의는 어디로 향해가는지, 민주주의 역사를 톺아보면서 형식과 이론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지금 우리 시대의 입법, 행정, 사법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를 연상시키면서 보면 훨씬 더 깊이 와 닿는 듯….
80년대 말 프랜시스 후쿠시마는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린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자유민주주의 승리”를 단언,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그의 책<역사의 종말>(한마음사,1997). 이 역시 정태적이랄까, 왜 독재국가의 출현과 교묘하게 민주주의 질서를 짓밟고 깨는 지도자가 늘어나는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은 당선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민주주의 퇴보를 지적했다. 민주주의 퇴보란 무슨 의미인가? 무늬만 민주주의이지 실제로는 전체, 전제주의로의 회귀를 우려한 지은이는 민주주의 이론과 형식을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의해야 함을 환기하고 있다.
아테나의 민주주의
규모가 작은 도시국가라서 가능한 거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뭐라고 답할지, 아테네는 특별한 관료층이 없었다. 민회로부터의 독립이나 기능적 분화를 주장할 공직엘리트가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교대 통치다. 시민이면 누구나 관직을 맡을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보는 것이 민주주의 이념의 일부였다. 엄격한 임기 제한, 직무와 책임에 대한 빈틈없는 통제 등의 원칙이 관직에 적용됐다. 재무관리, 도시 건설, 수도, 외교, 군사 등 특수한 지식이 필요한 자리만 선거를 통해 선발했고, 나머지는 모두 추첨으로, 약 1200명의 공직자 중 1100명은 추첨으로 나머지 100명은 선거로, 자, 그럼 플라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민회에는 가진 것 없고 교육받지 못한 천민들만 모여든다고. 그의 정치철학은 철인정치였으니, 당연히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옹호한다. 그런데 지금의 엘리트 정치와는 근본이 다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현을 주장하는데, 예를 들자면 왕의 사유재산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공유해야 한다), 물론 귀족 모두에게 이런 의무를 부담하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회질서가 형성되면 자연스레 이런 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라고 본 것이다.
정치이론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의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그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유, 평등, 평화를 어떻게 유지해 나아갈 것인가…. 18세기 북아메리카와 프랑스에서 혁명의 시대가 찾아오고 나서 다시 부상한 민주주의 개념, 혁명도 어떤 형태의 질서이든 간에 민주주의를 벗어나는 순간,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기에. 미국의 혁명가 토머스 페인은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인민의’, ‘인민을 위한 정부’라고 표현했고, 100년 후 링컨이 이를 받아들였다.
집회 민주주의
그렇다면 인민의 지배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까? 모든 시민의 포괄적 참여는 언제나 그리고 어느 분야에서건 보장되어야 할까?, 결정이 얼마나 민주적이었나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로 불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아테네의 집회 민주주의는 정당성과 효율성, 제도적 구조, 정치적 참여, 형식적 절차와 내용적 결정 등의 구조적 문제들이 민주주의 내용만이 아니라 민주적 질서의 구체적 형태와 실천을 결정했다.
이 책은 작지만, 크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주의 담론을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다. 정치사상의 전통에서 민주주의만큼이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개념은 거의 없다. 민주주의가 단지 경험적 혹은 서술적 개념으로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규범적 이상을 고쳐 써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를 되묻게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